10월의 좋은 어린이 책 <마법에 걸린 집>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김기정(작가)
놀이가 된 이야기는 가능한가?
아들 녀석이 소파에 앉아 책을 보고 있길래,
“재밌니, 뭐야?”
하고 묻다가, 이내 그 책표지 색깔만 보곤 목을 움츠렸다.
나는 아들 녀석에게 한 번도 책의 좋고 나쁨에 대해 말한 적은 없다. 세상에 나쁜 책이 어디 있겠는가! 나 역시 그 시절 만화책에 흠뻑 빠졌던 적이 많다.
나는 아들에게 점잖게 말한다.
“음식도 골고루 먹듯이, 책도 그래야 하는 거야. 만화책 세 권 읽을 때, 동화책이나 글밥이 있는 책도 한 권씩 읽어주면 어떨까?”
그러면 아들 녀석은 시큰둥이 대답한다.
“쳇, 아빠도 만화처럼 재밌게 좀 써 보세요. 그럼 백만 번씩 읽어 드릴게요.”
그 순간 나는 절망한다. 애꿎은 만화책들에게 얼마만큼의 원망과 질투를 보내다가는 드디어 주먹을 불끈 쥐고 울부짖는다.
‘내 언젠가는 만화보다 백 배 재미난 얘기를 써 낼 테다!’
물론 속으로 그랬지만, 글쎄 그런 세월이 오기나 할까?
어쨌건, <마법에 걸린 집>(이향안. 현암주니어)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을 때, 묘하고도 복잡한 감정에 빠졌다. 책을 두고 벌이는 아들과 나 사이의 애증, 혹은 독자의 애정을 갈망하는 작가적 고민이거나 한발 더 들어가면 작가적 정체성이기도 하겠다.
첫 번째 든 생각은 ‘앗, 이렇게도 작품이 되는구나!’이다.
이야기는 마치 퍼즐 풀이처럼 시작한다. 연이어 벌어지는 문제들을 풀어가다 보면 조금씩 사건에 접근해 가고, 그 역시 하나의 놀이가 된다. 결국 놀이인지 이야기인지 뒤죽박죽 헤매고 있다. 이젠 이야기냐 놀이냐가 중요하지 않은 셈이다. 그냥 책이 마치 퍼즐북으로 변신한 듯하니까.
몇 번쯤은 이런 놀이 같은 책을 고민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게 실제 하거나 써볼 거라고까진 미치진 못 했다. 이전엔 추리기법이 적용된 서사가 있긴 했으나, 이 작품은 더 아이들처럼 노골적이다.
점점 책장을 넘겨가면서, 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고민이 깊어진다.
‘나는 왜 이야기를 짓는가!’
‘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고리타분하거나 진지한 대답을 기대하는가? 판에 박힌 대답을 할 수밖에 없겠다.
작가는 고민한다. 내가 쓴 이야기가 한낱 쓰레기처럼 읽히지도 않고 그냥 사라진다면. 그러니 작가는 독자를 유혹하는 별짓꺼리를 다 고민하는 것이다. 문학이라는 근엄함과 매혹적이고 유치한 놀이 사이에서의 줄타기.
<마법에 걸린 집>은 아마도 그런 지점에서 나온 작가의 유머러스한 대답일 테다. 정답은 없다. 알 수도 없다.
역시나 이 책을 읽다 보면, 주인공 바우에게, ‘왜’라는 플롯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어느 새 함정에 빠지고, 스스로 이야기, 아니 놀이로 포장된 덫에 걸려들고 말테니까. 바우는 아니 독자는 책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그러려면 책을 끝까지 다 읽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훗훗. 이 작가의 노림수에 당한 기분이다. 근데 기분은 왠지 말끔하다. 이야기는 가볍지만, 마지막 퍼즐과 함께 책장을 덮으면서 내 안의 고민은 한결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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