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좋은 어린이 책 <생각의 뿌리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한국학 교수)

 

이 책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희망이야말로 생명입니다.

이 책의 본디 제목은《윤리독본》입니다. 우리의 불행 가운데 가장 큰 불행은 ‘윤리’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그 본래 의미를 잃어 각종 억압의 동의어가 됐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세계에서는 ‘명문대 입학 성공’은 윤리상의 효도 실천으로 꼽힐 셈입니다. 출세의 기반을 닦아 부모를 기쁘게 해드렸으니 효도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쉬운 질문에 답했으면 합니다. 몇 명, 몇 십 명의 효자효녀 후보자들이 입학 정원의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한 결과,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나머지들을 밟고 이겼다면, 곧 패배한 경쟁자와 그 부모 친척에게 아픔과 슬픔을 안긴 채 이겼다면, 과연 그런 ‘승리’는 윤리적일 수 있을까요?
윤리란 본디 인간의 자기중심주의를 꺾고 조율하여 모두가 상처 없는 공생공존을 가능하게 하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나의 부모를 위함이라 해도 남의 부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윤리일 수가 있을까요?
한데 ‘경쟁에서의 승리’는 대한민국의 본말전도(사물의 순서나 위치 또는 이치가 거꾸로 된 것)된 세상에서는 윤리의 극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경쟁주의와 짝을 이루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 전 과정에 걸쳐 계속 엄청난 괴력을 발휘해온 국가주의 윤리입니다.
우리는 보통 ‘국가에 공로를 세우는 것’을 윤리로 봅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는 순간 ‘국가의 모든 행동이 과연 윤리적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해 보지도 않습니다. 베트남을 침략해 상상 이상의 범죄를 벌인 미국을 ‘보조’하는 목적으로 베트남에 파병된 군대의 일원으로서 ‘국가에 공로를 세운 것’이라면 과연 진정한 의미의 윤리와 관계라도 있는 걸까요?

윤리가 괴물이 된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수호믈린스키의 이 책은 아주 색다른 윤리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수호믈린스키의 윤리는 ‘나’, ‘나’의 집단, ‘나’의 패거리를 위한 악행들을 합리화하는 짝퉁 윤리가 아니고, 진정한 의미의 자연스러움과 선(참함)의 윤리입니다. 예컨대 수호믈린스키는 부모에 대한 존경을 이야기하면서 부모와 자녀사이의 최고 덕목으로 이타성을 꼽습니다. 부모의 가장 큰 의무는, 자녀로 하여금 자신보다 먼저 타자들을 생각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가부모를 존중해주는 동시에 모든 어르신들을 두루 다 존중해주고 나아가서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주는 등, 넓은 의미의 이타적 인간이 돼야 합니다.
그러한 윤리 속에서는, 잘못되면 배타적이며 폐쇄적 패거리로 전락될 수도 있는 ‘가족’이라는 공간은 반대로 넓혀져 결국 ‘모두’를 포함하게 됩니다. 모든 인간과 동물들도 결국 ‘우리 가족’이고 나아가서는 우주 자체가 하나의 가족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비현실적’이라고 폄하할 사람도 있겠지만, 수호믈린스키의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이 스스로 맑아지고 밝아지는 것을 느끼지 않을까요? 진정한 윤리는 늘 인간에게 감동으로 와 닿아 그 감동의 힘으로 내면을 정화시킵니다.

이 책을 구성하는 수호믈린스키의 윤리 관련 일화들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놀라운 조합을 이룹니다. 일면으로는, 많은 경우에 수호믈린스키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전설, 신화, 명언, 동화의 언어를 구사합니다. 식물과 동물과 인간이 다 같이 어울려 살고 서로 대화도 하고 서로 감정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세계는 바로 이 책의 세계입니다.
또 일면으로는, 수호믈린스키는 아이가 ‘나’보다 타자를, ‘ 우리’ 소집단보다 ‘모두’의 대집단을, 인간세상의 이기적 욕구보다 자연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인간으로 성숙해야 하는 현재의 육아 문제에 그 초점을 맞추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일면으로는, 이 책은 미래를 향한 커다란 편지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아집을 극복해 나가고 자기 자신을, 그리고 나아가서는 자연의 작은 일부분일 뿐인 인간의 세상 자체를 상대화하는 기술을 배워나간 스토리들은, 지구가 멸망의 위기에 이르고 환경문제가 인류 생존의 여부를 가리는 오늘날에 와서 매우 시의적절해 보이고, 앞으로는 독자들에게 더욱 더 많이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수호믈린스키는 우리와 질 다른 사회에서 살았습니다. 관료주의의 폐단은 있어도 오늘날과 같은 ‘무한경쟁’뿐만 아니라 이윤추구의 필요성도, 강남과 노원구 사이와 같은 상상을 초월한 격차도 없었던 사회에서 살았습니다. 우리로서는 그러한 사회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만들어진 그의 책이 제시하는 윤리 실천의 방식대로만 살아가기는 아마도 힘들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수호믈린스키의 활동기 (1950~60년대) 소련보다 물질적으로는 훨씬 더 풍족하지만, 또 그만큼 개개인에게 훨씬 더 잔혹하기도 합니다.
한데 수호믈린스키의 윤리론을 읽어나가면 우리가 경쟁, 착취, 이윤추구, 개개인의 원자화 등이 없는 ‘미래’를 꿈꾸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희망이야말로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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