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좋은 어린이 책 <아기 장수의 꿈>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김중미(작가)

 

2016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정비 작업을 하던 열아홉 청년 노동자가 죽었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가방에 넣고 다니던 컵라면조차 먹을 새가 없었던 청년 노동자의 죽음에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아기 장수의 꿈』 리뷰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런데 자꾸만 가위로 잘려 나간 아기 장수의 날개가 어른거렸다.

 

“내외는 아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가위로 양쪽 날개를 잘라 버렸습니다. 그리고 날개가 자라 오르지 못하도록 그 자리에다 부엌 아궁이의 재를 뿌렸습니다. 물론 아들이 장수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다른 여느 사람들처럼 함께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림책 『아기 장수의 꿈』 중 가장 강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은 가위로 잘려 나가는 아기 장수의 날개가 그려진 부분이다. 아기 장수의 부모는 아들의 겨드랑이에 난 날개를 자르고, 거기에다 재까지 뿌린다. 다시 날개가 자라지 않도록 말이다. 이청준 작가는 부모가 아들의 날개를 자른 이유가 다른 여느 사람들처럼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변호해 주지만, 화가 김세현은 날개를 자르는 순간 함께 잘려 나가는 희망과 꿈, 생명을 그린다. 참담하고 슬프다.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제 날개를 잘라 제 힘과 용기를 빼앗아 버리셨습니다. 그 것은 앞날의 제 꿈과 목숨을 빼앗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기 장수는 자신의 날개를 자른 것이 부모라는 것을 알고 집을 떠난다. 그러나 아기 장수의 어머니는 그 길이 아들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었다. 적어도 이청준 작가가 그린 아기 장수의 어머니는 그랬다. 이청준 글 속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 날개를 자르고, 관군의 꼬드김에 넘어간다. 그 모습은 원본의 잔인한 어머니보다 현실의 어머니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그래서 더 참담하다. 내 아이의 안전과 평온을 위한 선택이 결코 내 아이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청준 작가가 ‘아기 장수 전설’을 동화로 낸 이유가 아기 장수의 비극이 아직도 이 땅에 살아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청준 작가의 ‘아기 장수의 꿈’이 동화로 나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그사이에도 우리는 날개가 잘린 채 죽어가는 아기 장수들을 지켜내지 못했다. 내 아이를 건강하게, 안전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은 내 아이만의 성공이 아니라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아기 장수의 꿈이 늘 비극으로 끝났음에도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간 까닭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내 아이의 안전과 평온을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 내 아이를 보호하는 길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4․16 세월호 참사를 통해 보았다. 250명의 아이들을 수장한 것은 돈이 생명보다 귀하다고 여기는 세상과 그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어른들, 그리고 권력에 기생하고 서슬에 숨죽인 어른들이었다. 기득권자들은 250명의 목숨이 자신의 부와 권력을 흔드는 도화선이라도 될까 진실을 숨기기에 전전긍긍했고, 사람들은 아기 장수 어머니가 그랬듯이 내 목숨, 내 아이 목숨이라도 살리겠다며 그 진실을 외면했다.

 

이 땅 곳곳에서 전설로 내려온 아기 장수 이야기는 아기 장수의 도래를 기다리는 민중들의 간절한 염원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기 장수가 내 아이는 아니기를, 역적으로 몰려 고난을 겪어야 할 당사자가 나는 아니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 끝내 용마의 비상을 꺾고 아기 장수의 꿈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아들딸을 잃은 세월호 어머니, 아버지들은 지난 2년 동안 “우리의 싸움은 내 아이의 죽음의 진실은 밝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다시는 내 아이와 같은 죽음이 되풀이되게 하지 않기 위한 싸움”이라고 외쳤다. 나는 그들을 보며 아기 장수의 날개가 비상할 날을 꿈꾼다.

 

김세현이 그린 『아기 장수의 꿈』에서 아기 장수와 용마, 아기 장수를 따르던 수많은 군사들이 전설 속의 그들처럼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햇볕에 촛농처럼 녹아 사라지는 아기 장수가, 용마가, 군사가 어느 순간 다시 형체를 찾고 일어설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젠가 고구려 고분 벽화 모사도 전시회를 볼 때 느꼈던 꿈틀거리는 생동감이 『아기 장수 꿈』을 넘기는 동안 되살아났다. 이청준 작가의 글은 어른들의 편에서 그린 ‘아기 장수’의 비극이지만, 김세현의 그림은 아기 장수의 편에서 그려진 씻김굿이다. 죽은 이를 저승으로 인도하고 이승에 남은 이들에게는 이별의 슬픔을 딛고 다시 살아 갈 힘을 주는 한 판 굿이다. 그래서 아기 장수의 꿈이 더 간절해지고 희망으로 다가온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은 잘려 나간 두 날개다. 그런데 그 날개가 다시 힘차게 날아오를 것만 같다. 김세현은 이청준 작가의 ‘아기 장수의 꿈’을 그림책으로 만들면서 세월호를 녹여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의 날개는 세월호 참사로 죽은 250명의 학생들 뿐 아니라, 우리가 외면했던 수많은 아기 장수의 죽음을 불러내어 이제는 다시 힘차게 날갯짓을 하자고 손짓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기 장수의 꿈’을 비극이 아닌 희망의 노래로 바꾸는 것은 용케 살아남은 이 땅의 아기 장수들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의 몫은 아기 장수 어머니 아버지의 이기심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 권력과 탐욕에 무릎 꿇지 않고, 내 아이의 겨드랑이에 있는 날개를 지켜내는 것일 것이다. ‘아기 장수의 꿈’이 훨훨 날아오를 수 있도록...

 

 


전문가가 선택한 6월의 좋은 어린이 책 이벤트 보러 가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