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좋은 어린이 책 <안녕 크렌쇼>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정은숙(작가)

 

오랫동안 먹먹할 이름, 안녕 크렌쇼
다른 사람은 못 보는 걸 나만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글쎄, 겪어 본 경험이 없어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왕 눈앞에 나타난다면 하얀 소복에 머리를 늘어뜨린 처녀귀신보다는 파도타기를 하고 거품 목욕을 좋아하는 고양이가 괜찮지 않을까?


어느 날 잭슨 앞에 고양이 ‘크렌쇼’가 나타났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매력적으로 등장했지만 잭슨은 크렌쇼의 존재를 애써 외면한다. 사실을 중요시하는 과학자가 꿈인 잭슨에게 크렌쇼 같은 상상 친구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잭슨은 상상 친구에게 관심을 돌리기 힘든 남모를 사정도 갖고 있었다.


잭슨네 집은 형편이 어렵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던 엄마 아빠가 다섯 개나 되는 직업을 갖고 돈을 버는데도 늘 집세가 밀리고 먹을 건 부족했다. 아버지마저 희귀병을 앓고 있어 수시로 직업을 잃었다. 듣고만 있어도 절로 얼굴이 구겨질 만한 사정이었다. 다행인 건 잭슨네 가족 모두 재미있고 긍정적이었다.

 
집에서 쫓겨나 좁은 미니밴에서 지낼 때, 잭슨은 상자에 구멍을 뚫어 거기에 몸을 밀어놓고 자기 방처럼 만들었다. 동생의 몸부림과 아버지의 발 냄새를 피하려는 창의적인 방법이었다. 배가 고파 꼬르륵 소리가 날 때도 잭슨은 여동생 로빈과 목표물에 시리얼을 던져 골인해야 먹을 수 있는 게임을 하며 허기를 잊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애써도 가난과 궁핍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아끼는 물건조차 벼룩시장에 내놓아야 할 상황이 될 때면 아이들에게 가난은 고통을 넘어 공포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거실에 있던 텔레비전이 친한 친구 마리솔네 집으로 팔려갔을 때는, 그래서 응원하는 야구팀의 경기를 가전제품 매장에서 구경해야 했을 때는 잭슨의 자존심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책은 한 집의 가정 경제가 무너지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책 내용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지금 우리 이웃의 모습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힘든 상황에서도 불평 한 마디 안 하는 착한 아들이란 말을 듣지만, 사실 잭슨은 조금씩 망가지고 있었다. 상점에서 이유식을 훔치고, 개 쿠키를 몰래 주머니에 넣기도 했다.


남은 책장이 얇아질수록 잭슨네 가족은 더 어려워졌다. 그렇지만 책은 어설픈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지 않는다. 결국 집을 떠나야 했을 때, 잭슨은 마리솔을 찾아가 자신에게만 보이는 크렌쇼에 대해 고백한다. 놀림 받을 각오로 말을 꺼냈지만 오히려 마리솔은 잭슨에게 ‘즐길 수 있을 때 마법을 즐기라’는 말을 건넨다. 크렌쇼가 힘든 생활을 견딜 수 있는 마법과 같은 존재라는 걸 마리솔이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 잭슨은 진실을 털어놓으라는 크렌쇼의 말에 용기를 얻어 마음속에 쌓여 있던 불만과 절도에 대해 부모님께 편지를 쓴다. 그리고 부모 역시 잭슨에게 집안 상황에 대해 진실을 말하겠다는 약속한다. 그건 사실을 중요시 여기는 잭슨이 오래도록 기다린 말이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악기상에 취직을 하고 잭슨네 가족이 악기상 창고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책 밖의 현실이 변하지 않듯 잭슨네 가족도 계속 힘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법의 친구 크렌쇼와 우정을 나누는 잭슨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란 믿음이 생겼다.


우리 주위의 수많은 잭슨 가족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 옆에도 크렌쇼처럼 멋진 친구가 있길 바라본다. ‘안녕, 크렌쇼!’ 오랫동안 먹먹할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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