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좋은 어린이 책 <세상의 모든 속도>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오세란(어린이문학평론가)

 

감각적 그래픽 속에 담긴 이야기들
이 책의 장르는 ‘지식정보 그림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독자를 어린이로 한정짓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림책의 실제 독자는 ‘3세부터 100세까지’ 라는 말이 있는데 이 책은 그 말에 꼭 맞는다. 지식책이라는 일반적인 범주 역시 이 책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다. 이 책은 정보를 담고 있지만 그것을 선택하고 배치하면서 독자에게 많은 이야기(narrative)를 건넨다.


이 책은 많은 동물, 교통수단 그리고 여러 물건의 그림이 등장하고, 그것들이 한 시간 동안 이동할 수 있는 속도, 즉 시속을 대응시킨다. 그러나 독자는 이 단순한 그림책을 여러 번 되짚어 볼 수 있다. 일단 속도를 가진 세상의 모든 대상 중에 특별히 선택된 소재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이다. 지네는 발이 많아서인지 벌레치고는 속도가 제법 빠르다. 산책하며 걷는 사람은 한 시간에 4km를 채 가지 못한다. 여기서 나아가 같은 종 혹은 같은 대상끼리 따로 모아 견주어 볼 수도 있다. 작은 도마뱀과 큰 코끼리는 평상시 비슷한 속도로 이동한다. 교통수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비행기와 우주선을 비교할 것이다. 같은 종류끼리의 비교를 마쳤으면 이제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림을 모아서 비교해 보자. 작은 테니스공이 웬만한 동물보다 속도가 빠르고, 스키 역시 자동차에 견주어 손색없는 속도를 자랑한다.


이 책의 장점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일러스트다. 배나 비행기, 마차와 우주선, 탱크 등을 그린 미니멀한 그래픽 디자인이 우리 눈을 빼앗는다. 언뜻 보기엔 단순해 보이는 형태지만 심플한 선 안의 세부적인 모양은 정교하기 이를 데 없고 그것을 적절하게 배치한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최소 한 개에서 최대 다섯 개 까지의 그림으로 한 페이지를 채웠지만 판형이 커서 답답하지 않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속도를 표시하는 글자도 사선으로 인쇄하여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본문 뒤쪽에 자리 잡은 소재에 대한 설명은 지식정보책에서 자칫 소홀하게 여기며 읽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이 코너가 또 하나의 본문이라고 할 만큼 다채롭다. 단지 서너 문장으로 기술된 글 속 정보의 밀도가 매우 높다. 테니스를 설명하는 네 문장에 ‘테니스의 유래와 세계 3대 테니스 대회, 공의 재질과 서브할 때 공의 최고 속도’가 모두 기술된다. 속도에 관한 책이라고 속도만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참신한 발상 덕분에 독자들은 세상 이것저것에 대해 소소하게 알아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속도를 이야기하지만 어떤 관점으로 다가가도 흥미롭다.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는 그림을, 탈 것에 관심 있는 친구는 자동차와 비행기를 눈여겨 볼 것이다. 어쩌면 생텍쥐베리가 타던 비행기가 코드롱 시문이라는 사실이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던 오리엔탈 특급 기차의 생김새에 흥미를 가질 수도 있겠다. 이런 것이 바로 창의력이다. 연령이 어릴수록 아이들은 책을 장르에 맞춰 보지 않는다. 유아라면 사물과 동물을 보며 즐거워할 것이고 초등학생이라면 거리와 시간의 관계를 쉽게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과학책에도 그래픽의 미학이 있고 딱딱한 정보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단순해서 더욱 감각적이고 단정함 속에 자유로움이 돋보이는 산뜻한 그림책이 그걸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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