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엄마, 오늘 일기 뭐 써요?
“엄마, 오늘 일기 뭐 써요?”
숙제하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아이가 던진 이 한마디로 전세가 금방 역전되고 맙니다.
“학원에 갔던 것 써.”
“그건 어제 썼단 말이야.”
“그럼, 동생하고 놀이터에서 놀았던 것 써.”
“그건 지난주에 이미 썼는걸. 오늘은 뭐 특별한 일도 없고 쓸 게 없잖아.”
이쯤 되면 엄마도 짜증이 나긴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부모들은 아예 일기 쓸 거리를 위해 일을 일부러 만들러 다니기까지 합니다. 이쯤 되면 일기쓰기는 이미 엄마가 숙제가 되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이런 상황은 일기를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하지만 조금만 관점을 바꾸어 보면 훨씬 다르게 일기쓰기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일기는 그날 하루 자신의 느낌을 정리하고 그에 따른 생각을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예를 들어 집에 오는 길에 친구와 사탕을 나누어 먹었다고 해 봅시다. 그 사탕의 생김새, 색깔, 향기, 그리고 입 안에서 퍼지는 향까지 그 순간에 머물러서 찬찬히 감각들을 음미해보고 그것을 글로 옮겨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은 우리 가족들의 머리 스타일을 주제로 일기를 써 볼 수도 있지요. 방바닥에서 우연히 발견한 머리카락 하나. 그 주인이 누구인지 찾아보는 가운데 사람마다 머리카락의 색깔과 굵기, 길이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처음부터 아이가 혼자 이런 주제를 찾아 일기를 쓸 수는 없습니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 일상생활을 하면서 먼저 이런 팁들을 던져주고 앞에 몇 문장을 만들어 주면 아이도 그것에서부터 꼬리를 물고 자신의 생각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아이들에게 일기쓰기를 시키는 목적은 사고력을 향상하고 언어력을 키워주기 위해서입니다. 글을 쓰는 것만큼 고도의 사고력을 요하는 일도 드뭅니다. 비록 한 문장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쓰는 훈련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여덟 살 아이들의 일기는 대부분 있었던 일들을 죽 나열하고 마지막에 ‘참, 재미있었다.’로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다른 관찰력과 주제가 돋보이는 우리 아이의 일기는 학교에서도 단연 돋보이게 될 것입니다.
일기쓰기에 대해 많은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두 번째 고민! 바로 틀린 맞춤법 고쳐주기입니다. 아이의 일기를 읽다 보면 아무래도 띄어쓰기나 받침 등 틀린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어떤 부모들은 빨간 펜으로 바로 체크를 하고 고치게 합니다. 또 어떤 부모들은 그래도 일기인데 그렇게 부모가 손을 대어도 되는지 조금 망설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아이가 틀린 표현을 그대로 익히게 될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자녀에게 일기를 쓰게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서 찾아야 합니다. 일기쓰기의 목적을 아이의 사고력 향상에 둔다면 조금 틀린 맞춤법은 그냥 넘어가는 것이 맞습니다. 자꾸만 맞춤법을 지적하게 되면 아이가 일기를 쓸 때 맞춤법에 신경 쓰느라 사고의 흐름이 중단되고 자유로운 글쓰기에 방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일기쓰기의 목적을 맞춤법 공부에 둔다면 당연히 맞춤법을 고쳐주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한글 맞춤법 공부는 국어 시간에도 하고 받아쓰기 시험을 통해서도 수시로 합니다. 굳이 일기쓰기를 할 때까지 정확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한글 공부를 많이 시켜본 내 경험을 들자면 아이들의 한글 맞춤법 실력은 그때그때 지적하고 고쳐준다고 해서 금방 잡히지는 않습니다. 한번 틀리게 쓴 낱말은 알면서도 자꾸만 틀리는 경우도 있고, 빨간색으로 틀린 부분이 체크된 것을 보는 순간, 공부할 마음이 싹 사라져 오히려 학습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한글을 많이 접하게 하는 것입니다. 책도 많이 읽고, 이것저것 글로 된 자료들을 많이 보면서 올바른 표기법을 자꾸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맞춤법 실력도 좋아집니다. 실제로 초등학교 1,2학년은 받침이 있는 글자를 틀리게 쓰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3,4학년 쯤 되면 자연스럽게 그 수가 감소합니다. 물론 이 시기에도 여전히 겹받침을 잘못 쓰는 아이들은 다소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맞춤법을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게 됩니다.
아이의 일기쓰기에 대한 고민이 조금 해결되었다면, 이제 아이와 함께 소소한 일상에서의 작은 느낌들을 함께 공유할 준비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