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좋은 어린이 책 <약속>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소윤경(그림책 작가)

 

도시에 살면서 손수 나무를 심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무의 이름을 잘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도토리 나무(참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른다. 잎 모양이 어떤지, 얼마나 높이 자라며, 언제 열매를 맺는지 알기 어렵다. 구태여 그런 것들을 배워야 할 필요도 없고 모른다고 해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곳이 도시이기 때문이다. 벚꽃 축제에 인파들이 몰리고 철마다 다른 꽃들이 피어날 때서야 사람들은 이 도시에도 이렇게 많은 나무가 살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림책 <약속>은 우리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오는 그림책이다. 황폐한 땅에 나무를 심어가는 한 노인의 감동적인 이야기인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는 사람>에서 모티브를 얻었기 때문이다. 사실, 원작 소설보다 캐나다 애니메이션의 거장 프레데릭 벡의 <나무를 심는 사람>이 먼저 떠오른다. 작가가 오랜 시간 인상파 풍의 그림들로 그려낸 이 작품은 그림책으로도 출간되어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사랑 받아오고 있다.

 

그림책 신간이 나오면 그림책 작가들은 종종 증정본을 받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그림책을 구입할 때면 나름의 선별 기준이 있다. 나는 화가라서 그림책을 고를 때 무엇보다 그림이 아름다워야 산다. 그림이 단순히 예쁘고 귀여운 것이 아니라 미술로써 예술적인 수준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글이 훌륭하고 내용이 좋아도 그림이 좋지 않으면 사지 않는 편이다.

 

<약속>은 2014년 볼로냐 라가치 상을 받았을 만큼 그림책이 가지는 아름다움에서 인정을 받은 작품이다. 도시의 풍경은 다양한 회색 톤의 회화적인 색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파스텔, 색연필 등으로 선을 입혀 경쾌한 느낌을 주었고, 다양한 구도의 변화가 돋보인다.

 

황량한 도시, 굶주린 개와 새들과 지하도로 떼 지어 몰려가는 사람들이 작고 검게 그려져 있다. 도시의 삭막하고 침울한 풍경을 원경으로 그려서 도시의 모든 생명들이 마치 작은 벌레들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아이가 자라는 도시는 더럽고 가난하고 흉측하다. 아이는 불온한 도시처럼 남의 물건을 훔치며 살아간다. 어느 날 밤, 컴컴한 길에서 아이는 한 노부인의 불룩한 가방을 낚아채려고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노부인은 가방에 든 것을 심겠다고 약속하면 가방을 넘겨주겠다고 말한다. 아이는 가방을 빼앗고 싶은 욕심에 얼떨결에 약속을 해 버리고 가방을 받아 달아난다. 가방 안에는 파란 도토리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아이는 꿈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던 자신에게 변화가 오리라는 것을 예감한다. 자신의 품 안에 거대한 도토리 숲이 들어차고 그 숲으로 아름다운 새들이 날아와 지저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다음 날부터 아이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도시 구석구석 더러운 것들을 치워가며 도토리를 심어간다. 차츰 낡고 삭막했던 도시 여기저기서 싹을 틔운 도토리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사람들도 웃음과 여유를 찾고 덩달아 식물들을 심고 가꾼다. 이제 도시는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하다. 도토리 나무와 함께 성장한 아이는 이제 다른 나라의 황폐한 도시로 떠나 계속 도토리를 심어 나간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모로코, 인도, 베트남 등의 나라가 아닐까 싶다.

 

인종과 국경을 넘어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행복을 다시금 찾아가게 되고, 아이가 지나간 도시는 푸르게 변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신처럼 메말랐던 유년을 보냈을 젊은 도둑에게 가방을 빼앗기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약속의 시작임을 알고 있다.

 

이 그림책은 도시의 건조한 삶을 부정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쉽게 도시를 떠난 삶을 선택하기 어렵다. 여전히 자연을 등진 도시의 삶은 그저 퍽퍽하기만 하다. 도시의 모습은 어느새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작가는 <나무를 심는 사람>의 도토리를 이어받아 새로운 그림책을 만들었다. 어쩌면 나무가 자라 숲을 이루고, 다양한 생명이 숨 쉬는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주인공 아이처럼 스스로 상황을 변화시키는 용기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 한 알이 싹을 틔워 세상을 푸르게 하는 것처럼, 어두운 현실에 절망하지 말고 자신의 자리에서 희망의 씨앗을 심어가라고 말이다.

 

그림과 글의 하모니가 만들어내는 어떤 특별한 공간으로 초대받는 것, 그것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의 짧은 시간을 들여 감동에 이를 수 있는 것은 그림책의 큰 매력이다. <약속>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으면 감동이 더 커지는 그림책이다. 누구나 자신의 책장에 꽂아 두고 오래도록 꺼내 봐도 손색없는 예술작품이다.

 

이제 가방을 받아 든 독자들이 도토리를 심을 차례이다.


전문가가 선택한 2월의 좋은 어린이 책 이벤트 보러 가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