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좋은 어린이 책 <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민지숙(어린이 독서교육 전문가)


사회 비판적인, 그래서 더욱 빛나는 동화 

이렇게 요즘 세상을 강렬하게 비판하는 ‘정치적인’ 느낌을 받은 동화는 오랜만이다. 하지만 거부감은 전혀 없다. 어린이 독자의 눈높이에서 재미있고 신 나는 모험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동화 속 이야기들이 오히려 약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나쁜 회사에는 우리 우유를 팔지 않겠습니다> 제목부터 시사하는 바가 많다. 아무리 ‘나쁜 회사’라도 소농이 대기업에 공급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현실에선 힘들다. 소농은 불합리한 유통 구조에서 언제나 ‘을’이기 때문이다. 과연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이야기는 주인공 꼬마 페그가 우유 회사에 갔다 오겠다고 나섰던 민트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할아버지를 찾아 떠나면서 시작된다. 민트 할아버지는 밀리그린 마을에서 양심적으로 소를 키워 우유를 생산하는 농부이다. 그런데 밀리그린 우유를 공급 받는 몬테 피오리토라는 다국적 기업이 수상하다. 그 다국적 기업은 ‘밀리그린에서 나온 신선한 유기농 우유’라고 광고하며 우유를 팔지만 할아버지가 맛본 밀리그린 우유는 가짜였던 것이다. 분노한 민트 할아버지는 지속적으로 항의했지만 우유 회사는 무시로 일관했다. 결국 할아버지는 직접 우유 회사를 찾아갔고 실종되었다.

  

꼬마 페그는 무모하지만 할아버지를 찾으러 가장 아이답게 떠난다. 바퀴 세 개 달린 조그만 1인용 양철 자동차를 타고 커다란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고속도로를 탄 것이다. 중간에 양철 자동차 ‘투덜이’는 투덜거리며 고장이 났지만 어쨌든 페그는 갑자기 불쑥 나타만 후덕한 아줌마 모에 이모의 도움으로 도시에 갈 수 있었다.(모에 이모의 등장은 개연성이 없어 조금은 아쉬웠지만 이야기의 후반에 모에 이모와 친구들은 인간애를 발휘하는 선한 시민으로 등장한다.)


모에 이모가 살고 있는 도시는 ‘잊혀진 도시’로 불린다. 온갖 도로와 철도가 지나가지만 아무 교통수단이 서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소외된 도시다. ‘잊혀진 도시’가 실제로 존재하진 않겠지만 비슷한 사례는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온갖 개발 속에 섬처럼 남은 빈민촌이 그렇고, 고층 빌딩 숲에서 햇빛 보기 힘든 마을이 그렇다. <작은집 이야기>란 그림책의 한 장면도 떠오른다. 고층 빌딩 숲에 갇혀 밤인지 낮인지, 어느 계절인지도 못 느끼는 작은집은 점점 불행한 얼굴이 되어 가는 이야기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시작한 개발이 정도가 지나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너무나 삭막한 회색 도시가 되어 버린다.


동화는 잠시 도시의 우울한 면을 보여 주다 그에 굴하지 않는 모에 이모에 의해 다시 활기를 찾는다. 본격적으로 다국적 우유 회사를 찾아가는데 엄청난 음모와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우유 회사는 할아버지의 방문 자체를 부인한다. 방문 기록이 있는데도 할아버지가 방문한 적이 없다며 숨긴 것이다. 몬테 피오리토와 경찰은 유착 관계라 꼬마 페그는 홀로 거대한 빌딩에 숨어들기로 한다. 그 후 우유 회사 빌딩의 49층에서 비밀이 밝혀지고, 우유 회사 광고 모델인 소년을 만나고 소년과 함께 할아버지랑 탈출하기까지 빠르고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몬테 피오리토는 빌딩의 49층에서 광고 모델을 감금하고, 회사에 불만을 제기하거나 불이익이 될 것 같은 사람들을 납치해 강제로 약물 주사를 놓아 무기력하게 만드는 만행을 저질러 왔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사람의 생명이나 권리는 쉽게 무시했던 것이다. 몬테 피오리토의 이런 악행은 신자유주의 경제 체계에서 자본의 탐욕 때문에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안전사고, 인권 경시, 정보 통제, 부패 권력과의 유착 등 온갖 부정적인 현상을 곧바로 떠올리게 한다.


현실은 더 복잡하고 힘들지만 동화에선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꼬마 페그가 끝까지 용감하게 대처했고 모에 이모와 친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페그를 도와줬기 때문이다. 거대한 기업이나 세력에게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자기 이익과 직접 관련이 없지만 아픔에 공감할 줄 알고 양심껏 행동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페그처럼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페그 혼자 할아버지를 구출하는 게 불가능했듯이 시민의 연대가 없으면 사회의 부조리나 기업과 권력의 횡포에 맞서기란 힘들다.

 

어린이 독자들은 물론 이 동화책을 거대 자본과 개인의 싸움으로 읽을 필요는 전혀 없다. 그냥 용감한 꼬마 페그가 나쁜 회사로부터 할아버지를 구출하는, 긴장되지만 신 나는 모험 이야기로 읽으면 된다. 읽으면서 사람을 중시하지 않고 돈이나 권력만을 중시했을 경우에 몬테 피오리토처럼 못된 괴물이 될 수 있다고 경계심도 가지면 더욱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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