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좋은 어린이책 <하늘로 날아간 꼬마열차>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정제광(동화작가)

 
‘수인선 협궤 열차, 일명 꼬마열차에 얽힌 일제 강점기의 민족 수난사를 의미 깊게 다룬 역사 판타지 동화.’
작품 성격과 내용을 전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머릿속에 흔한 그림만 그려질 뿐이다. 전형적인 인물과 그의 기억, 일제 강점기의 수난에 얽힌 전형적인 사건……. 우리 문학사에 그런 이야기는 흔하다. 이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물론 이 책에는 협궤 열차도, 일제 강점기의 민족 수난사도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초점은 그것을 드러내는 데 있지 않다.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 ‘사실에 관한 기억’을 겨냥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기억은 지금 사라지고 있고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경험 역시 기억과 함께 희미해지고 있다. 작가가 일제 강점기의 수난사를 구체적으로 파고들지 않고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만 다룬 이유이다. 구체적인 사건과 사실은 뒤로 물리고 ‘사라짐’, ‘잊혀짐’,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진실을 앞세운다. 이 이야기가 기억과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 한 할아버지의 존재론적 투쟁 이야기로 읽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지금 소멸해 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절실한 문제이다.


‘그곳은 철길이면서도 철길이 아니었다. 그저 황량한 들판일 뿐이었다.’


작품의 첫 문장에서부터 작가는 ‘철길인가, 아닌가’ 즉, 그곳에 철길이 있나 없나부터 다룬다. ‘기억’과 ‘의미’ 같은 추상어뿐 아니라 철길과 꼬마열차 같은 구체적이고 단단한 물체까지도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


이 문제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다양하게 변주 확장된다. 철길도, 아이도, 열차도, 기억도, 역사도, 역사에 대한 인식도 ‘있느냐 없느냐, 사라지느냐 남느냐’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 햄릿의 저 유명한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라는 말이 떠오른다.


‘들판에 열차가 지나가거나 열차가 서는 역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14쪽)
‘마치 헛것을 본 듯 분명히 보았던 게 사라지고 보지 못했던 게 나타나기도 했다.’(15쪽)
‘봄은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만 있었다.’(39쪽)
‘눈 한 송이가 할아버지의 손바닥에 살포시 내려앉더니 금세 스르르 녹아 버렸다.’
‘우리 선조들의 땅이었잖아요. 우리가 그 땅을 잊어버려서 잃어버린 땅이 되었지만.’(82쪽)
‘그 아픔과 슬픔을 자꾸 들려주세요. 사람들이 잊어버리지 않도록.’(83쪽)
‘기억해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더 아프고 슬플 일이 생길 거예요.’(84쪽)
‘요즘 기억이 지워지면서 내가 점점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가는 걸 느낀단다. 내 기억의 박물관, 기억의 전시관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가끔 내가 잊어버린 걸 되돌아볼 수 있게.’(94쪽)
‘이러다 모든 게 꼬마열차처럼 잊히고 사라지겠지.’(111쪽)


환상을 제거하면 이 이야기에는 할아버지 한 사람만 등장할 뿐이다. 아이도, 아이의 누나도, 아이의 부모도 모두 기억과 환상 속에만 존재하니까. 그 ‘있음과 없음’ 사이를 꼬마열차가 오가며 연결해 준다.


꼬마열차는 기억뿐 아니라 할아버지를 싣고 하늘나라로 떠난다. 할아버지가 사라졌으니 할아버지가 그토록 찾던 의미도 사라졌을까? 결국 할아버지의 인생은 실패한 것일까?


아니다. 비록 지금은 운행을 중지한 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한 꼬마열차는 현재와 과거, 삶과 죽음 사이를 힘차게 오가며 의미를 실어 나를 것이다. 현재의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역사도 인생도 의미있게 만들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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