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좋은 어린이책 <한밤중 시골에서>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김지은(아동문학평론가)

 
이야기를 듣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밤, 장소로는 시골집, 계절로는 여름입니다. 제가 어릴 때도 그랬습니다. 방학을 맞아 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집에 놀러 가면 귀신 이야기를 들었어요. ‘불을 켜면 더 덥다’, ‘모기 온다, 쫓아라.’ 말하면서 어른들은 아이들을 일찍 재우려고 일찌감치 집안의 불을 다 끕니다. 부채질을 해봐도 날은 덥고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으슬으슬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창밖에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 그림자 사이로 달빛이 일렁이고요. 마루 끝에서부터 번지는 모기향 냄새가 매캐합니다. 컴컴한 곳에 누워서 할머니에게 듣는 귀신 이야기는 정말 무서웠어요. 그러다가 지나가는 소나기에 천둥이라도 내리치면 팔다리가 오싹하며 움츠러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제 여름 더위를 내쫓아준 걸로는 무서운 이야기가 일등이었습니다.

 

올여름도 참 더웠습니다. 『한밤중 시골에서』는 그 여름 끝에 잘 어울리는 무서운 동화입니다. 방학을 맞아 주인공 장우와 동생 선우는 느린 기차를 타고 한참 가야 하는 산속 끄트머리 마을의 할머니댁에 갑니다. 거기 가면 핸드폰 게임에 나오는 몬스터를 잡을 수 있을 거라며 잔뜩 흥분해서 찾아가지만 시골집은 휑하고, 몸이 아프다고 하시던 할머니는 어딘가 이상하며, 이웃집 아이 나희는 예전과 다르게 낯섭니다. 정들었던 강아지와 고양이도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밤마다 들려오는 정체 모를 발소리, 두 아이를 겨냥하며 조금씩 다가오는 흉흉한 기운은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얼른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지만, 나희의 말에 따르면 얼마 전부터 이 마을에는 오가던 버스도 끊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할머니는 선우의 생일을 앞두고 잔치를 준비합니다. ‘내 가족을 위한 잔치’라며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음식을 장만하던 할머니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장우가 찾아 헤매던 몬스터는 과연 어떤 모습이 되어 나타날까요?

 

이 책은 고전적인 공포물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익숙하지만 묘하게 고립된 공간, 의문의 이웃, 기이한 신호, 의외로 침착한 주변 사람들까지 우리를 스멀거리는 공포 속으로 데려가는 수상한 요소들이 하나하나 배치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흔한 옛이야기의 반복은 아닙니다. 두 아이는 핸드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엄마는 아이들의 안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안부문자와 문자 사이에 끼어들어 교묘하게 아이들을 벼랑으로 몰아붙입니다. 게임에서 틈만 나면 몬스터를 잡으러 다니는 친구 갑철이도 장우가 실제 괴물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결코 믿어줄 것 같지 않습니다.

 

장우와 선우처럼 우리는 어지간한 무서운 이야기쯤은 우습게 생각합니다. 위성이 우리들의 위치를 한 시도 빠짐없이 찾아내는 현란한 시대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은 잊고 있던 우리 마음속의 두려움을 슬쩍 건드립니다. 내가 믿는 사람이 원래 알던 그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공포, 불쑥 나타나는 검은 덩어리들의 섬뜩함, 여기는 위험한 곳이며 결국 구출되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아득한 감정을 건드리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대부분 우리가 괴롭혔던 것이라는 서사의 마무리까지 전통적인 공포 서사의 경험을 되살려줍니다.

 

무서운 이야기는 우리를 훌쩍 자라나게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무서운 이야기의 효과는 우리의 더위를 한달음에 식혀준다는 것입니다. 폭염이 길었지만 한동안 늦더위가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뜨겁기만 한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서늘한 시골집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요.

 

9월의 좋은 어린이책 이벤트 보러 가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