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 - 이대근 기자의 한국정치 읽기 우리시대의 논리 8
이대근 지음 / 후마니타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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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의 아침 작전은 서둘러 무리했고, 소방차 한 대 없이 무대비였습니다. 시너에 대한 정보 준비도 없어 무지하고, 좁은 데 병력을 밀어넣어 무모했습니다. 용산에서 벌어진 컨테이너형 트로이 목마 기습작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졸속 그 자체였습니다. 법과 질서라는 목표에만 쫓긴 나머지 실행 프로그램이 없었고, 특히 철거민이건 경찰이건 사람이라는 요소가 송두리째 빠져 있었습니다.” (MBC <뉴스데스크> 2009. 1. 20. 클로징 멘트)  

그날, 박혜진 앵커가 앞의 두 문장을, 신경민 앵커가 나머지 문장을 또랑또랑하게 다 읽었을 때, 나는 이미 울고 있었다. '나'와 다름없는 그들의 죽음 앞에 이보다 더 슬픈 시, 더 처절한 조사(弔詞)가 있었을까. 신경민 앵커가 직접 쓴다는 마지막 멘트는 뉴스 보기를 이젠 '두려워'하기까지 하는 나에게 가끔은 죽비가 된다. 그래서 아프지만, 기다리게 된다. 

내가 이렇게 기다리는 것이 또하나가 있다. 경향신문의 이대근 칼럼이다. 2주에 한번씩, 이분이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하실까, 유난히 큰 사건이 있는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한다. 

이대근 칼럼의 존재를 알게 된 건 2006년 11월이었다. (문제의 칼럼 날짜를 보니 그렇다.) <포용정책은 유죄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고... 울었다. (그렇다, 난 잘 운다, 우쒸.)   

" 북한의 군사적 요충지인 금강산과 개성에서 남한 사람이 북한 사람의 서비스를 받으며 온천욕과 등산을 즐기고, 북한 노동자가 남한 기업의 냄비, 시계, 신발을 만들고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포용정책 때문이다.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폭락하지 않았다면, 남한에서 사재기가 없었다면, 그것 역시 포용정책 때문이다. (...) 포용정책은 북한이 예쁘고 착해서 보상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제재와 대결이 우리에게 바로 돌아오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 포용정책은 운명이다. 북한은 우리의 일부다. 버릴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다. 봉쇄하고, 굶겨 죽이고, 압박하고 폭격할 수 없다. 무겁다고 내려놓을 수 없는 짐이다. 북한의 기아, 위기, 고통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 우리 마음 구석에서 꿈틀거리는 한 우리는 북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 우리는 포용정책의 포로다. 바꿀 것도 수정할 것도 재검토할 것도 없다." (책 248쪽에 있다)

더할 수 없이 냉정하게 말하다가 결국엔 확 감정을 건드리기까지 한다. 그러고는 더없이 강한 논조로 마무리. 글 참 무섭게 쓰신다고 생각했다. 누구신가, 이 양반은...?  그러다가, 죄송하지만 잠시 잊고 있었다. 2007년 5월 <권정생, 그의 반역은 끝났는가>를 만날 때까지.    

"가난하고 늙고 병든 아동문학가는 이 사회에서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잘못이다. 버림받고 병들고 가난한 자가 세상과 잘 어울린다는 것 자체가 기만이다. 그는 매우 위험하고 불온한 사상가였고 반역자였으며 혁명이 사라진 시대의 혁명가였다. (...) 지지배배 짖던 작은 새가 숲 속으로 날아가듯 그는 그렇게 가버렸다. 가장 치열하게 싸운 전사에게만 돌아가는 휴식이다." (36-37쪽)

이 글은 권정생 선생님을 아는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나도 권정생 선생님 보고 싶어질 때면 이 글을 보면서 울고 또 울었고, 선생님의 평온한 휴식을 위해 기도하곤 했다. (이 칼럼은 권정생 선생님의 1주기에 출간된, 권정생 작가론 격의 글 모음집 <권정생의 삶과 문학>에 실리기까지 했다.) 

이 무렵부터 이대근 선생님의 지난 칼럼까지 싹 찾아서 읽었고, 2주일마다 이 양반이 주시는 위로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 위로란 것은 결코 달콤하지 않다. 쓰다.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권정생 선생님도 말씀하셨었다.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글이 정말 좋은 글"이라고. 이대근 칼럼은 우리 사회의 비틀리고 불편한 부분, 목에 걸린 가시 같은 것들을 건드리면서 냉정하게 말한다. 부디, 눈 똑바로 뜨고, 정신 차리고, 무엇을 할지 앞을 보라고. 

사실, '시사성'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신문칼럼이 '책'으로 나온다고 하면 "인터넷에 다 있는데 찾아서 읽으면 되지 뭘 책으로...?" 하는 반응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도 이런 시선에 대해  "범행 현장을 다시 찾은 범인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머리말에서 고백한다. 그러나 이런 독자들에 대한 '써비스'가 있다. 칼럼 말미마다 2009년 현재의 상황에서 덧붙인 짧은 코멘트가 있고, 독자들에게 건네는 매우 긴 머리말, 그리고 말미에는 '한국 정치에 대한 긴 대화'라는 제목의 묵직한 대담이 실려 있는 고다. 아아, 저는 책을 산 보람이 충분합니다아 !!

지난 5년간의 칼럼을 묶은 이 책은, 원고지 11매에 긴장감 있게 꽉꽉 눌러쓴 훌륭한 문장들로 가득차 있고, 정말이지 롤러코스터 타는 것보다 더하면 더했을 국내외 정치에 관한 차분한 일별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나 제3부 '평화'에서는 북한, 일본, 미국을 바라보는 '냉정과 열정이 결합된' 이대근 선생님만의 혜안을 얻어갈 수 있다. (사실, 차가운 척하지만 본질적으로 '열정'이 더 승한 분 같기는 하다 ^^ )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순간부터, 왜 우리가 그토록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정치 행위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 너무나 원론적인 것을 우리는 냉소와 허무에 빠져 잊고 있었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이런 체제가 불만스럽다면, 원하는 다른 체제를 우리는 가질 수 있다. 혁명이 아니라도, 정상적인 정치적 과정을 통해 가질 수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매력이며, 정치의 힘이다. (...) 서민들이 자기들의 고통과 불만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기만 하면, 정치는 그들의 것이 될 수 있다. 다수의 힘으로 보수 헤게모니를 깰 수 있다. 그런데 이 신나는 일을 왜 아무도 하지 않는가." (15쪽. 밑줄은 내맘대로 친 것.) 

그러게요. 이런 거야말로 학교에서 주입식으로 가르쳐야 하는데 말이죠...

목청 높여 소개하고 싶은 칼럼들이 많지만, 관심사에 따라 감동을 받는 글은 각자 다를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 이분의 차가워서 더욱 아름다운 문장을 좋아하든, 논지전개법을 좋아하든, 어떤 정당에 대한 생각을 같이 하든, 좋아하는 부분이 반드시 나올 것이라 확신한다. 참고로, 나같이 감성적이기 짝이 없는 인간이 읽고 울었던 가장 최근의 칼럼은 2008년 8월의 <전국노래자랑> 이며(구글링해서 찾아 읽어보세욥. 얼마 뒤 당신은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을 것입니다), 푸학! 대폭소하며 뿜었지만 역시나 씁쓸했던 칼럼은 <부시, "이명박은 최고의 지도자">이다.  

_ 책이 도착하자마자 빛의 속도로 읽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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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이렇게 써라 - 이대근, &lt;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gt;
    from Fly, Hendrix, Fly 2009-03-16 18:33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 - 이대근 지음/후마니타스 글쟁이들은 고민한다. 자신만이 읽을 글이 아니라면 언제나 고민할 수밖에 없다. 누가 읽게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때는 어느 순간에서 끊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한다. 물론 학술논문을 쓸 때에야 상세한 설명과 정확한 뒷받침 문장을 구비해야 할 때가 있다.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긴박하게 한 방의 임팩트를 가지고 글을 써야할 경우가 있다. 저널리스트의 글쓰기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