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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와 영국 사상가 마크 피셔는 모두 50살이 되기 전에 자살했다(둘 모두 영어를 사용하는 고학력 백인 남성이다.). 그들은 왜 자살했을까? 표면적으로는 둘 모두 우울증을 앓았다. 그들 몸 안의 생물학적, 화학적 병인이 그들을 자살로 이끌었을까? 두 작가의 글을 읽어보면 그들이 누구보다도 예민하고 집요하게 후기 현대사회의 병폐들을 적어놓은 걸 느낄 수 있다.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이 자본화 되어 돈을 위해 총동원되는 세계가 그들에게 계속 경보음을 울리고 머리를 두들겼던 것 같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픽션의 미래와 현격하게 젊은 작가들」에서 대학의 공장식 문예창작 수업에서 생산되어 맥도널드화된 문학을 지칭하는 맥스토리McStory와 맥폼McPoem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마크 피셔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 연구의 실질적 내용보다 숫자로 표기되는 평가 지표 위주로 교육자를 평가하여 대학을 망가뜨리는 신자유주의 감사 시스템에 종속된 대학을 비판한다. 문학(소설가 월리스)과 학문(학자이자 교육자 피셔)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순수하게만 남을 수 없고 시대 상황에 민감히 영향을 받는다. 사회역학자 김승섭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모두 물속의 물고기라는 비유를 제시하는데, 오염된 물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 병들지만 그걸 인식하지 못한다.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동아시아, 2017년 9월,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



  강박증을 다룬 책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저자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과대망상자와 이상행동자를 소개한다. 이 책에 관심이 간 이유는 멈출 수 없는 습관(손 물어뜯기)을 가진 내가 왜 멈출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인지 궁금해서였다. 미국정신의학협회(APA)는 ‘피부 뜯기’를 강박장애 증상의 하나로 진단한다. 한편, 마크 피셔에 따르면 꽤 높은 비율의 청소년과 아동이 겪는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는 “하이퍼 미디어 소비문화의 엔터테인먼트-통제 회로에 몰입한 결과”다. 강박증도 마찬가지여서 “자본의 분쇄기” 안에 들어간 인간이 신체의 한계점을 넘어섰을 때 강박증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2017년 청소년 우울경험률은 27.1%이다. 청소년들은 과도한 불평등과 사회안전망의 부족이 초래하는 학업 경쟁에 더해서 사용자들의 중독 증상과 함께 성장하는 디지털 기업들이 마련한 미디어 환경(끝없는 재접속을 요구하는 공간) 속에서 신체의 한계점에 내몰린다. 강박증,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우울증 등의 정신건강 문제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의 문제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190225141100009. 연합뉴스, "아이들 성적경쟁 내모는 것은 문화 차이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



  『자본주의 리얼리즘』과 함께 올해 초 가장 강렬한 독서경험을 선사한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의 저자 일레인 스캐리는 아름다움에 관한 논의를 조심스럽게 이어간다. ‘아름다운 대상을 마주친 인간은 의식의 균형에 도달한다.’라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그녀의 논의는 학문적 논의에서 터부시되는 아름다움을 섬세한 글쓰기를 통해 옹호한다. 그녀는 아름다운 존재의 예를 들 때 되도록이면 사람의 아름다움은 언급하지 않는다. 플라톤, 단테 등의 고전작가들의 논의를 빌릴 때를 제외하면 가급적 자연의 아름다움(야자나무의 아름다움)을 예로 든다. 왜냐하면 오늘날 아름다운 사람들은 광고 산업과 깊이 연관되어 있고, 사람의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의 기준으로 볼 때 비난받을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다룬 또 다른 책 『매력 자본』의 저자 캐서린 하킴은 일레인 스캐리가 가급적 조심스레 옹호하려 했던 아름다움을 ‘돈’과 연결시키면서 위악적으로 느껴질 만큼 위험하게 논의를 진행한다. 캐서린 하킴의 주장은 ‘아름다운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벌고, 남성에 비해 매력 자본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이는 여성들이 매력 자본을 적극적으로 이용(하킴에 따르면 여기에는 성매매도 포함된다)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얕은 지식으로나마 종합해보면, 인간이 조심스럽게나마 옹호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일레인 스캐리)이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디스토피아(마크 피셔)를 만날 때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 ‘매력 자본’(캐서린 하킴)이다.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 속 어린이들이 고단한 석탄 노동을 이어가는 모습(무거움과 고단함)과 유튜버로 활동하여 자발적으로 인터넷에 영상을 유통시키는 오늘날 어린이의 모습(가벼움과 매끄러움)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현재 아동 노동은 제3세계로 '외주화'되었다.). 자본주의가 진행됨에 따라 피지배자들은 알게 모르게 점점 더 자본과 자신을 동일시해왔다. 불만은 연대보다는 소비를 통해 해결된다.



  미셸 우엘벡은 경제에서 사랑에까지 투쟁 영역이 확장된 현대인들의 모습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감수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미셸 우엘벡과 캐서린의 하킴의 논의는 여러 가지로 닮아 있지만 커다란 차이점도 있다. 캐서린 하킴은 근대적 개인주의가 촉발한 ‘매력자본’ 개념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보단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 하지 말고 매력자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고 권유한다. 미셸 우엘벡의 인물들에게 매력자본을 이용해 행복을 찾는 것은 결국엔 불가능하며, 오히려 연약함을 드러내는 일이 사랑과 관련이 있지만 견고한 갑옷을 두르고 있는 근대적 개인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낼 수 없다. 현대인들은 연약함을 드러내기보다 무수한 장점들로 꿰맨 갑옷으로 연약함을 감춘다. 쾌락과 돈, 젊음을 찾아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우엘벡 소설의 현대적 개인들의 끝은 노화와 죽음, 파멸이다. 우엘벡의 인물들이 자유주의 휴머니즘을 끝까지 밀어붙일 때 인간은 트랜스 휴머니즘(과학을 통한 영생불멸)을 실현하게 된다. 『소립자』와 『어느 섬의 가능성』의 트랜스 휴먼들은 인간을 벌레 보듯이 경멸한다. 우엘벡이 풍자적으로 제시하는 자유주의 휴머니즘의 귀결은 인간성의 부정-극복(트랜스 휴머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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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생각한다 - 숲의 눈으로 인간을 보다
에두아르도 콘 지음, 차은정 옮김 / 사월의책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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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번역 출간된 책 중 가장 중요한 책이 될 것 같다. 몇세기간 이어져온 인간 중심적 사고의 흐름이 변하고 있고, 그걸 인지하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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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 사람 사이의 모든 것들은 정말로 부서지기 쉬워 보였고 나는 신경이 곤두서 있었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나쁜 긴장감인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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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재에 번역 연습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


첫 번째 책은 저번달에 모두 읽은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이다. 올해 읽은 소설 중 가장 좋았던 소설이었다(몇 권 더 있지만, 읽는데 들인 정성을 생각하면..). 그만큼 좋은 문장도 많았는데, 번역하는 문장들은 공책에 적었던 문장들로만 한정한다. 구입한 책이라 밑줄을 많이 긋기도 했다. 좋은데 너무 길어서 적지 못한 문장도 아주 많다. 필립 로스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면 '심연을 건너는 듯한 문장들'(인터뷰)이 많은 소설이다. 내 짧은 소설관으로 그의 소설을 설명하자면, 필립 로스는 모더니즘 물을 먹은 역사 소설가다. 그래서 그의 역사 소설은 고리타분하지 않고, 매혹적이다. 번역본(문학동네)을 읽어보진 못했는데, 번역에 대한 비판이 있는 걸 보면, 번역자가 호흡이 긴 문장을 번역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은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주황색 책(빈티지 출판사)이라, 쪽수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p. 37

How can one say, "No, this isn't a part of life," since it always is? The contaminant of sex, the redeeming corruption that de-idealizes the species and keeps us everlastingly mindful of the matter we are.

항상 존재하는 그것을 두고 어떻게, "아니야, 이건 삶의 일부가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겠나? 인간 종(種)을 이상에서 끌어내리고 끝도 없이 우리 자신의 물질성을 상기시키는 되살아나는 부패, 섹스의 전염성.


p. 39

Everyone know  you're

sexually exploiting an 

abused, illiterate

woman half your

age.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학대 받아왔으며, 문맹인

당신 나이의 절반쯤 되는 한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있다는 것을요. 


p. 107

But to be no longer circumscribed and defined by his father was like finding that all the clocks wherever he looked had stopped, and all the watches, and that there was no way of knowing what time it was.

하지만 더이상 아버지에 의해 구획 지어지고 규정되지 않는 것은 마치 그가 바라보는 모든 시계들이, 손목시계까지도 모두 멈춰버려서, 몇시인지 알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 같았다. 


번역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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