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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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괜히, 누군가에게서 미움을 받았던 기억. 
내가 아이들을 휘두르는 더 강한 사람이었다면 달라졌을, 받지 않았을 것 같은, 그런 미움.
그 사실을 알아서 더 괴로었던 바로 그 기억.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해서 더 힘들었던, 그리고 그걸 알고 괴롭혔던 그 아이. 
 
이 책의 앙테크리스티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게도 있다. 그런 사람. 물론, 그게 가능한 건 학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자아이들만 가득했던 바로 그 여자 고등학교에서 나는 또 다른 여자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 이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 미움을 받았던 것 같다. 다각도로 생각해보면 그 빛나는 여자아이에 비해 나는 별볼일 없었기 때문에? 단지 내가 그 아이의 절친이라는 게 질투나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복잡했던 시기였다. 단짝이라는 그 이상한 개념. 사춘기 시절의 여고생들의 감정은 얼마나 이상하고 불안정했던가.  

늘 독특한 시각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아멜리 노통브답게 얼마나 이상한지. 지금은 다 먼 얘기같은 그 감정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봤다. anti - christ 라는 앙테크리스타답게 이 책의 '적'은 모든 조건을 다 갖춘채로 주인공을 괴롭힌다. 그렇잖아도 나쁜 처지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상황이 더 악화된대도 내 편이 그녀 편보다 많을 것이므로, 맘껏 괴롭혀도 되는 그런 주인공을 모두에게서 고립시킨다. 재미나게도, 그게 세상 이치인 것 같다. 약자일수록 더 괴롭히고, 강자에게는 벌벌 떠는 그런게 세상인 것 같다.  

"거짓말을 오직 나를 짓밟으려는 목적에 이용하지만 않았더라면 내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크리스타의 문제는 힘의 관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배자니 피지배자니 하는 이야기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따분하기만 했다. 어쩌면 그래서 내게 남자건 여자건 친구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학교에서나 학교 밖에서나 우정이라는 고귀한 이름이 쌍방의 동의가 없는 모호한 예속관계나 의도된 모욕, 항구적인 쿠테타, 역겨운 굴종, 심지어 희생양을 만드는 행태들에까지 결부되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자주 보았다.  

...  

그런 우정을 나는 원치 않았다. 우정에 조금이라도 비열한 마음이나 경쟁심이 일말의 부러움이나 한치의 의혹이 깃들면 나는 그 우정을 발로 차버렸다. "  

p165 주인공의 독백  

모든 사실은 밝혀지고 주인공은 보호받는다. 그러나, 그걸로 끝일까. 그거면 된걸까? 이 책의 결말은 흥미롭다. 결국 우리는 그렇게 영향 받고, 영향을 미친다. 주인공으로 인해 크리스타의 외면은 큰 변화를 맞게 되지만, 그녀의 내면은? 알 수 없다.  

친구가 되기 5분전이 중학생들 수준에 맞춘 우정을 예시를 통해 보여준다면 이 책은 좀 더 어른스럽게 우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속내를 파헤친다. 겉과 속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 뭐가 진짜고 거짓인가. 실은 우리들 모두 한번은 저질렀고 저지르고 있으며 당해봤던 이야기를. 강약만 다를 뿐.  

재밌었다. 그리고 처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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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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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공중그네와 인더풀로 유쾌한 작가, 이미지를 고수해온 오쿠다 히데오. 방해자를 시작으로 몇가지 최근작을 읽다보니 이럴수가, 유쾌한 작가가 아니었다. 이시다 이라와 버금갈 정도로 날카롭고 잔인하게 사람 심리를 파고 들어 아프게 콕콕 찌르고 있었다.  

이미 나에게 유쾌한 작가, 라는 인식은 떠난지 오래.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라는 제목을 보면서도 다소 불안한 채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존이 그 존인줄도 모르고, 읽어내려가다 어랍쇼, 하고 깜짝 놀랐다. 존은 비틀즈의 그 존이었던 것이었다. 오노 요코에 대한 다른 멤버들의 악감정도 얼핏 비쳐지고 다만, 그 오노 요코보다 예술가적인 기질은 훨씬 드문 여성이 아내였다는 게 좀 다를까. 아들에 대한 사랑도 그대로였다.  

작가 후기에 보면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존의 은둔 생활은 시작됐고 그 사이의 행적은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아내의 고향인 일본에 대한 애정이 있어 매년 여름은 가루이자와에서 보냈다고 한다. 이 소설은 그 가루이자와에서의 휴가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존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씌여진 책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젊어서 내가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은 당사자나는 잃어버릴 망정 가해자는 잊을 수 었게 된다. 젊어서, 철이 없어서 그랬다고 했을지언정 그건 내게 면죄부가 되지 않고 오로지 맘을 아프게하는 상채기가 될 뿐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존도, 아마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아사다 지로의 스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을 떠오르게 했다. 팝스타 존은 이미 저 세상으로 간 사람들을 만나고 쓰바키야마 과장은 저 세상에 갔다가 현세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다를 뿐.  현세든 저 세상이든 우리는 끊임없이 죄를 짓고 또 사함을 바란다.  

 공중그네와 인더풀의 카리스마 넘치는 의사 샘과는 조금 다르지만 왠지 그 쌤을 떠올리게 하는 의사 쌤도 등장하고 일본말과 영어로 대화하는 가정부도 재밌다. 게다가, 변비로 고생하는 존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이 책을 읽는 이 삼일 간, 신기하게도 같이 변비에 걸려 고생했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이 희극적이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지저분하기도 하고. 크크. 오쿠다 히데오 답기도 하고.  

"전 진실이 최고라고 믿진 않습니다. 거짓이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용의가 있습니다"  p328  의사 쌤의 말.  

맞습니다, 맞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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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뻐?
도리스 되리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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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검은 그물 스타킹을 신은 여자와  
중남미 여류 작가들의 단편을 묶은 책이 떠오르는 여성 필독서.  

소설의 도입부는 반드시 흥미로워야 한다, 라는 소설작법의 예문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서두. 그리고 흘러가는 감정선. 화자는 여성. 등장인물은 남성. 여성의 마음을 끊임없이 뒤흔들어놓는 남성은 마치 적처럼 느껴지고 어떤 관계든 만나게 되는 여성은 동지처럼 느껴진다.  

바꾸고 싶고 달라지고 싶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고 그러기 쉽지 않고 ㅁ차마 포맷할 수 없는 인생 때문에 괴롭고, 그러나 동지를 만나고 ... 또 의외로 쉽게 버릴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 만난 그 사람은 또 반대의 입장에 서기도 하고 ...

남성/여성의 정치적인 우위, 관계, 같은 여성과의 우위... 모두가 알고 있고 모르고 싶은 일들을 세심하게 파내어 하나하나 읊어준다. 인종문제까지도. 그리고 이것은 현실.  

내가 살아온 30년간의 시간을 되돌아봤다. 아주 어릴적부터 하나하나. 내가 훔쳤던 친구의 바비인형 신발 이야기가 나와서 놀랐다. 인종도 나라도 대륙도 다른 도리스 되리와 나는, 그녀가 그리는 주인공들과 나는 어쩌면 이렇게 닮아있는지. 각 단편들의 주인공 심리가 전부 이해되고 전부 겪었던 것 같고, 겪게 될 것 같고, 하나하나 체크할 수 있는 리스트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파니핑크의 따뜻한 색감을 잊을 수가 없는데.  도리스 되리는 천재.

초파우에서 온 착한 카르마   
아니타는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거기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아니타 옆에는 창백한 금발의 남자가 서있었다. 사진이 찢겨나가, 남자의 얼굴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아니타는 샤를로테의 배에 얼굴을 묻고 두 팔로 그녀의 허리를 안았다.그리고 잠시 후 아니타는 고개를 들어 샤를로테를 바라보았다. 눈물은 이미 말라 있었다.

트리니다드  
나는 눈을 감는다.  나는 지금 죽어서 누워있다. 나는 아직 젊고 예쁘다. 벌거벗은 몸 역시 아직 날씬하다. 백화점 화장품 코너의 직원처럼 생긴 두 여자가 내 몸에 붕대를 감는다. 숨도 못 쉴만큼 단단히. 나는 헉헉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 겉으로는 사람 좋고 소탈해 보이려고 꽤나 애를 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생전의 우리 엄마보다 더 까탈스러워.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좀처럼 만족하지 않아. 내가 부엌을 치우고 나면 나중에  그녀가 다시 한번 치워. 내가 식탁을 차리면 그녀가 포크와 칼을 다시 가지런히 정리해. 빵을사오면 또 잘못 사왔다고 투덜거리지. " 
p39

오른쪽 위에는 해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세 가지 물건을 훔쳤다. 여덟살 때 바비인형의 분홍색 하이힐 한 켤레를 훔쳤고, 열 여덟살 때 가장 친한 친구가 만든 특이한 공예품 하나를 훔쳤다. 그리고 스물세 살 때, 나는 한 남자를 훔쳤다. 그는 아내가 있는 남자였다.

홍 부인에게 새 신을  
그날 밤 우린 둘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 등을 돌린 채 거리를 두고 누워서 서로의 몸이 닿지 않게 조심한다. 나는 가만히 두 손을 가슴에 올려놓고 숨소리도 내지 않는다. 방 안은 조용하고 어둡다. 도시에 있을 때면 나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듯 이 적막함이 늘 그리웠다.

누구세요? 
스물다섯번째 생일에 나는 한 여자를 만났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나는 란츠베르크 오스트 인터체인지 뒤편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주차장 옆 수풀에서 다시 나오면서 나는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몸을 축 늘어드린 채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주름진 손등 위로 파리가 기어다녓다. 나는 그때까지 한번도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죽은 사람이 두려웠다. 그들의 냄새가 두려웠다.

쉭세 
데이브는 옆으로 흘러내린 긴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올렸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저 머리칼, 윤기가 흐르는 숱 많은 검은 머리칼,... 남자의 머리칼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아름다운 머리칼, 그 머리칼만 보고 잇어도 우나는 무릎에 힘이 빠지고 다리가 흔들렸다. "나의 아름다운 데이브... 내 곁에 남아있을 거지, 언제까지나?  
... 모르겠어 ...

월요일의 호밀빵  
내가 뉴욕을 떠난 것은 이십년  전이었다. 친구 베스의 장례를 치르고 난 직후였다. 베스는 정확히 새천년이 되는 바로 그 시각, 창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날 밤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시 그녀는 마흔 살이었고, 우리는 동갑이었다.

캐시미어 
처음 서로 알게 되었을 때 우린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누곤 했다. 나는 그 사랑에 취해버렸고 나 스스로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이토록 나를 좋아하는거지? 이 무지막짛한 비곗덩어리인 나를? 그는 뚱뚱한 내 몸을 정말로 좋아했다. 그와 사랑을 나누는 동안은, 오직 그 동안만은 나는 내 몸에 대해 완전히 잊을 수 있었다. 그와 사랑을 나눌 때면 배고픔도 느끼지 못했다. 나로서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감각의 제국  
호텔 방값 역시 내가 지불할 것이다. 그는 빈털터리니까. 그는 아직 학생이다. 이 어리고 미숙한 남자아이에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절망스럽다. 그리고 행복하다. 나는 얼굴 가득 환하게 웃는다. 동시에 나는 흐느낀다. 정말 끔찍한 상태이다. 온갖 상반된 감정들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러다가 미치치나 않을까 두렵다.


"부부간의 증오... 그게 어떤 건지 알아요? 그건 아주 특별한 종류의 증오에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죠. 난 부부사이에서 왜 살인이 일어나는지, 충분히 이해해요. 오히려 더 자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게 신기할 뿐이에요. 하지만 정작 문제는 상대방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 따위가 아니에요. 가장 끔찍한 건 그런 살해욕을 느끼고 나서, 또 금세 새로 구입할 자동차의 색깔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아이들과 다투고, 함께 잠을 자고, 뭐 먹고 싶냐고 묻고 하는 ... 그런 상황이에요. 그런 일관성없는 생각과 행동, 그건 정말 못 참겠어요. 정말 끔찍해요."    

"사람들이 화해를 하는 건 더 이상 그 사람이 밉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미워하는 것이 너무나 피곤해서죠. 그렇지 않다곤 말하지 마세요."

신부 
나는 혼자 고메라의 해변에 앉아있었어요. 그는 수영을 하고 있었구요. 사실 그는 물 속에 들어가기 싫다고 했는데 ... 물이 너무 차가웠거든요. 하지만 그런 그를 내가 놀렸어요. 그리고,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어요. 가끔 난 정말 미쳐버리곤 해요. 집에 아직도 그의 목소리가 녹음된 앤서링 머신 테이프를 가지고 있어요.

원더나이프  
그날은 5월 5일이었다. 더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소리를 죽여 가만가만 그의 방으로 들어갔ㄷ다. 그의 사무실 바닥에 깔린 푹신한 카펫에 하이힐이 푹푹 박혔다. 갑자기 완전한  정적이 찾아들었다. 그는 옷을 모두 벗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나를 사랑해줘..." 그가 말했다.

저 세상
나를 자리를 잡고 앉아 눈을 감는다. 금세 기억의 고통,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그 고통이 녹색의 금속성 액체처럼 혈관을 타고 흐른다. 그 사람의 혀의 감촉이 느껴진다. 그의 혀에서 어렴풋이 피냄새가 난다.  

내 친구 
친구는 내게 전화하지 않았다. 나느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다. 유리창이 모두 검게 칠해져 있었다. 한참 동안 벨이 울린 후에야 친구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집 안은 폐허나 다름 없었다. 그녀는 남편의 모든 물건에 검은 색 레커를 칠해놓았다. 그의 양복, 텔레비전, 그의 책들, 심지어 자신이 사다놓은 요구르트까지 검게 칠해져 있었다. 카를이 가장 좋아하는 요구르트였다.

금붕어 
그녀는 엎드린 채 어항을 올려다 보았다. 그녀의 눈앞에서 기묘한 기하학적 형상의 빨간 두 생명체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움직였다. 불룩 튀어나온 금붕어의 눈이 갑자기 그녀에게 바싹 다가왔다 멀어졌다. 흔들리는 물 속에서 햇빛이 춤을 추고 따스한 바람이 창가의 커튼을 펄럭였다.

나 이뻐?  
그가 내 몸을 만지는 동안 내 눈은 날아가는 새들을 좆는다. 그의 손이 점점 아래로 미끄러진다. 그의 손이 갑자기 팬티 안으로 쑥 들어온다. 나는 물고기라도 잡듯 빠른 동작으로  그의 손을 잡는다'. 그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Please, please, you're so beatiful. you're driving me crazy ... " "forty eight dollars" 그가 콘솔박스 위에 지폐 몇장을 올려놓으며 낄낄거린다. "네 마음은 얼마지?"

만나
짐의 목소리의 떨림이 전해진다. 그가 내 목덜미를 어루만진다. 나는 남편의 셔츠 단추를 풀고 눈을 감은 채 그의 가슴에 잎을 맞춘다. 내 몸이 녹아 없어지는 기분. 내 머리칼 사이로 그의 숨결이 느껴진다. 내 옷 속으로 들어온 짐의 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의 몸은 긴장하고 있다. 그의 살갗 냄새가 난다 .그 냄새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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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3 - 비밀의 화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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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왕국3' 
 
"전화는 그저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기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물체로 바뀌어, 깜짝 놀랐다. 역시 텔레비전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마법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전화는 오지 않았다. 조금은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p102

(아주 평범한 말일지도 모르는데, 앞뒤 문맥과 어우러져 마음 깊이 공감하는 구절이 되었다.) 

 "저 말이지. 사람이 만났을 때는 어쩌다 왜 만나게 되었는지 다 의미가 있어. 숨겨져 있던 만남의 약속이 다 끝나 버리면, 무슨 수를 써도 다시는 같이 있을 수 없는거야."

-p112

(오늘, 사람의 인연은 어디까지일까, 라는 것에 대한 질문에 내가 하고 싶었던 답) 

 "나는 피해자다, 속았다, 상대가 너무했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거짓이라도 잠시는 편하지만 사실은 아니니까 언젠가는 무거워진다.

살을 찢어발기는 듯해도 진실이 늘, 한결 낫다. "


-p115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나 자신이다. 다른 이들에게 위로를 듣고 있어도 적당히 얼버무리기라는 건 내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막상 내가 위로해주는 사람이 되면 도저히 사실을 얘기할 용기가 안 생긴다. 그리고 내가 그 상대방을 이해할수록 더 그렇다.) 

"나는 지금까지 신이치로 씨의 상황에 따라 여행을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나 자신을 위해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갈 수 있다. 그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밝아졌다.

인연의 끈을 놓은 만큼 공간이 확실하게 넓어진다. 그쪽으로 눈길을 돌릴 수만 있다면, 이미 거기에는 좋은 향내가 풍기는 것이 찾아와 있다. "

p123
 
 

암리타에 이어, 요시모토 바나나는 정말이지.
어디서 누구를 만나고 무슨 경험을 쌓았을까.
책에서 빠져 나와 너무 생생하게 살아있어
꼭 한번 만나고 싶어지는 그런 등장인물들. 
 
쫀쫀하게 탄력있는 스토리, 파고드는 감정선.
이해하는 것도 있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공감 가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그럴수록 바나나가 좋다. 

내가 살지 못한 삶, 살지 못할 것 같은 삶, 파고 들지 못할 것 같은 삶을  파고 들어 가장 나에게 충실한 삶을 사는 주인공들. 자신의 아우라가 너무 커서 어울릴 수 있는 부류들이 정해져있는 주인공들. 그런 삶, 자신에게 오롯이 올인할 수 있는 삶. 아프고 괴로워도 자신의 관점이 옳다고 믿는 삶.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맞아 보이는 삶.  

그런 삶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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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2 - 아픔, 잃어버린 것의 그림자 그리고 마법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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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

왕국 2,3 을 3분 만에 보이는 데로 집어왔다.
아니, 왜 8시에 닫는 도서관인가.
8시에 도착했는데 ㅠㅠ 

요시모토 바나나는 접신을 해본게 아닐까.
사람을 꿰뚫고 있는 시선들에 전율.
얼마만큼 특별한 경험을 해본 것일까에 전율.

못난이 3개 1000원
카스 맥주 1350원
진로 포도주 1890원 

뇌를 마비시키며 감성만 남게 하는 것이,
아리까리 한 것이 아주 책을 읽기 좋은 상태에 돌입.
내일은 왜 월요일인가. @#$$%%^

"안 그래도 우리는 아주 소박하게 사귀고 있었다.

우리 둘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거의 완성되어 있으면서도 언제든 아메바처럼 형태를 바꾸니까. 둘이서 연애라는 식물을 키우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쪽이 웃자라면 저쪽을 살짝 자르고  비가 오래 오면 화창한 날에 햇볕을 듬뿍 쪼여 주고, 어느 쪽이 물 주는 것을 깜짝 잊으면 한동안은 꼼꼼히 물을 주고, 그렇게 서로가 힘을 합해 조금씩, 커다랗게 키워 가는.

 
P41 왕국. 2

"왜 이렇게 좋아지는 것일까. 하고 종종 생각한다. 그는 사소하지만 늘 의외로움을 보여주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표정, 생각지도 못한 몸짓. 나르시시트는 아니지만 자신의 내면만 보고 생확해서인지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과 얼굴이 청결하기는 해도 그것은 바깥을 향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목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청결함이었다. 그리고 웃는 얼굴이 각별했다. 눈이 가늘어지면서 덧니가 살짝 보이면, 아, 지금 그렇게 다시 한번 웃어봐, 하고 생각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시간의 흐름의 허망함을 되새겼다.

그와 함께 있으면 무엇이 떠오를 듯 하다. 멀고 먼 옛날의 소중하고 그리운 무언가가.
...
지금이 지금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연애라는, 아주 당연한 것을 나는 그를 통해 처음 알았다.
 

p44 왕국 2 

"이 도시에는 지금의 나 같은 기분으로 사는 사람들이  . 일은 바쁘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데, 무엇에선가 동떨어져 있는 듯 어중간하게, 살아있는 것인지 죽어있는 것인지 모를 기분에 갇혀 지낸다.

밤을 어슴푸레 뒤덮고 있는 이 최면술 속에.

최면술 속에서 사람은 영원히 살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느끼지 못하는데 왠지 외롭고 왠지 부족하고 따분하고. 그러다 죽으면 없었던 일로 하고 다시 최면술 속으로 돌아가 영원히 눈을 뜨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되었다.

죽은 사람은 유령이지만, 살아 있으면서도 갖가지 절박함을 덜 느끼기 위해 유령처럼 되어 버린 사람들이 이 곳에는 많았다. 야생아인  나조차 이렇게 조금은 영향을 받고 있으니까. "


P54

" 이 생활 속에는 그런 괴로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이 편한 면도 있다. 마음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괴로움도 흐릿해진다. "

코렉트, 빙고!
나는 철저하게 자아와 세뇌의 힘을  믿는 편이다.
세뇌의 주체는 내가 될 수도 있어서 철저히 세뇌시킴으로서
괴로움을 흐릿하게 할 수 있다.
하고싶은가, 안하고 싶은가의 문제다.

이게 일상을 공유하는 옆사람으로서는 꽤나 괴로운 모양이다.
뭘해도 스스로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니까 그렇지,
라는 대꾸를 듣는게 바람직하지는 않겠지.
나도 이걸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건 알아서
아무나에게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쩌겠어. 본인도 잘 생각해보면 그럴걸.

나도 잘 생각해보면 그렇다. 

자아의 힘은 의외로 대단하다.
안 느껴진다면 한번 테스트해보시길.
모든건, 내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리고 모든건, 내가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에 발생'한다.

파울로 코엘료가 말하는  '지표'는 결국 내 안에 있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흑 술 다 떨어졌다. 아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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