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러브 유
이시다 이라.이사카 고타로 외 지음, 신유희 옮김 / 해냄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나는 책을 읽으면서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있거들랑 한쪽 귀퉁이를 접어 표시하는 버릇이 있다. 심지어는 빌린 책도 그러는데 -죄송합니다 - 이 책도 빌린 책이기는 하지만 대체, 한장도 귀퉁이를 접을 구석이 없었다.

이를 다시 말하면 어떤 특정 멘트가 없이 물 흐르듯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잘 끌어갔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또 다시 말하면 기억에 남는 부분이 하나도 없이 그저 평범하기만 했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이 책은 어느 쪽일까.

이 책은 분명 현재 한국에서 잘 나간다는 여섯 작가가 쓴 책이다. 이사카 고타로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로, 아주 인상깊었던 책 마왕을 쓴 작가다. 두번째 이시다 이라는 내게 '렌트'로, 그리고 유명한 작품으로는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로 유명한 작가다. 세번째 이치카와 다쿠치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로 많이 알려져있다. 네번째 작가인 나가타 에이이치와 다섯번째 나카무라 고는 별로 많이 알려진 작가는 아닌 듯 하다. 여섯번째 작가인 혼다 다카요시는 fine days로 연애 소설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한다. (작가 소개에)

이 책은 아마 정작 책 내용보다도 책을 구입한 Y여사의 구입기가 더 기억에 남을 듯 하다. 달달한 책을 찾던 그녀는 결국 이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이렇게 독후감을 적었다. 어쩌면 나는 연애란 달달한 것만 생각했던 게 아니냐고. 연애는 꼭 그런게 아닌데, 라고 말이지.

연애 소설의 정의는 어떻게 내려야 할까? 연애에 대해 다루면 다 연애소설일까? 연애는 어디에서든 한다. 드라마들에서는 의학 드라마든 검찰 드라마든 전부 연애는 끼어있다. 드라마일 수록 그게 강한 것은 대중은 모두 분홍빛이든 검은색이든 남자와 여자가 좋았다 싫었다 하는 그 과정이 재미있기 때문인걸까. 만약, 메인 스토리든 곁다리 스토리든 연애가 조금이라도 끼어있다면 그것은 연애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에서 연애는 다양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정말 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것도 있고 연애는 곁다리로, 우정이 중심인 것 같은 스토리도 있다. 여섯작가의 개성이 다르듯, 정말 하나같이 다른 연애 이야기다. '이 연애소설이 대단하다' 라는 일본의 연말 시상식 같은 List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니, 분명 대중에게 소구하는 감성과 인정받을 연애 소설 단편 모음집이긴 한 것 같다. 그런데, 어쩜 이렇게 그냥 지나치기만 하는 스토리일까.

연애는 그 표면만 슬쩍 훑고 정작 연애가 아닌 다른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나마 남녀의 그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면서도 달콤한 감정에 제대로 맞서고 있는 것은 이시다 이라의 마법의 버튼 정도? 너무나 쿨하게 헤어지고 담담하게 지난일을 회상하며 그랬다면 이랬을까?의 상황설정이 너무도 진부했던 혼다 다카요시의 side walk talk . 말 그대로 감정을 슬쩍 훑고 지나가는 느낌으로 일본인답다, 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드는 소설이었다.

연애를 한다면, 정말 힘들게 해야 좋은 순간이 훨씬 더 짜릿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지고 볶고 매일 싸우고 또 매일 화해하고. 적어도 그것이 억지가 아니라면 그 솔직함이 서로의 관계를 더 발전시키는 매개체가 될 것임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서로를 대할 때 그 관계는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정적인, 그런 연애도 있겠지. 그러나 그것은 어찌보면 열정이 없는 관계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얼마나 알고 또 서로의 감정에 얼마나 마주하고 있는가, 싶은 느낌. 감정과 감정이 부딪히는데 너무나 이성적인 것도 말이 안된다고 본다. 또 사랑이라는 감정은 얼마나 한 사람을 미치광이로 만드는가. 아무리 안정적인 심성의 사람도 그 마법에 걸리는 순간, 이성을 잃고 날뛰게 되는 것을. 그렇게 둘이 만나서 어떻게 아무일 없이 평화로울 수가 있겠는가. 이 책의 너무도 얌전한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이야기들이 별로 달갑지는 않았다.

남자들은 무디고 더디다. 여자들이 감정을 날카롭게 훑고 갈 동안, 남자들은 표면과 껍데기 및 큰 그림을 그리는 듯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이렇게 단조롭고 무딘 것인지도 모르겠다. 연애를 하는 동안 이렇게 다른 곳을 보고 있을 수 있는 것도, 남자들이 대체로 그렇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모든 사람에게 마법의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오른쪽 버튼을 누르면 투명인간이 되고, 왼쪽 버튼을 누르면 돌이 되는…….

도쿄에서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바쁘게 움직인다. 서로 버튼을 눌러 사라지기도 하고 돌이 되기도 한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되면 이 거리도 훨씬 조용해질 텐데.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면 실연의 슬픔도 투과되어 가벼워지고, 혼자 우는 모습을 남들에게 들킬 일도 없겠지. 돌이 되면 가만히 굳은 채로 슬픔을 결정화시켜 마음 깊숙이 가라앉힐 수 있으련만.
하지만 우리에게 마법의 버튼은 없다.
그래서 이렇게 너를 기다린다.

―<마법의 버튼>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시다 이라의 마법의 버튼. 나와 내 남자친구의 이야기와 비슷해서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 이 구절은 정말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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