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소설을 두어권밖에 읽지 않았지만, 읽을 때마다 참 아프네요. 이 책, 많이 아픕니다. 작가님은 이 시절을 어떻게 다 기억하고 그 시절의 감정들, 생각들, 의문들을 이리 끄집어다 쓰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저도 신기합니다. 읽을 때마다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시절 - 세상의 불합리에 대한 반항심과 의구심들이 다시 소환되네요. 새삼 이상해 보이던 어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던 그 시절의 프레임이 생각납니다. 아마, 녀석도 곧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에 대해 엄마는 왜... 하게 되려나, 싶어 관습적으로 했던 말들과 습관들을 점검해야겠다, 는 생각도 들고요.
원제는 "외계인의 비밀" 이었다고 합니다.
다 읽고 나니 납득이 가는 제목이에요. #또래집단 이라는 것이 만들어 내는 정상과 비정상, 평범과 특별, 인기인과 왕따... 극명한 이분법의 기준이 존재하던 그 시절의 그 교실에서 분명 한번은 차라리 딱 부러지게 모습마저 외계인이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었던 것 같으니까요.
실제 출간되는 책의 제목은 #율의시선 입니다.
주인공 이름은 안율. 빛날 율자를 쓰는 중학교 3학년 남학생으로 아버지는 교통 사고로 돌아가시고 엄마랑 둘이 삽니다. 율이는 아버지를 보낸 다음부터 늘 발 끝에 시선을 두고 살죠. 사람의 눈을 마주보지 않고, 발끝만 봅니다.
가제본 책과 함께 온 작가님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려운 일이 많지만 그중 제가 제일 꺼리는 건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대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간혹 눈이 마주치면 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 지금 내 표정이 이상하지는 않은지 폭발하는 상념을 견디지 못하고 때론 먼저 눈을 피해버리곤 합니다.
율의 시선은 곧 작가님의 시선이기도 하다고, 작가님은 편지에 쓰셨네요. 이 책을 쓰면서 성장통을 단디 겪던 그 시절을 다시 다 되짚으셨을까요?
아버지의 사고가 계기가 되었을 율이의 시선 변화는 외상 후 트라우마로 전문가의 진단을 받습니다. 율이는 그 병명을 "댁의 아드님은 사회 부적응자" 라고 해석하고 이런 말을 덤덤하게 엄마에게 말하는 무감감하고 무정한 의사를 "인간적이다" 라고 평가합니다. 원래 인간은 그런것인데, 엄마는 내가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슬픈 얼굴을 한다고 이상해 하죠. 언제는 강하고, 이성적으로 살라고 하면서 정말 그렇게 살면 슬퍼하는 엄마는 모순적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이 소설에 나오는 엄마에 대한 율이의 생각들을 읽을 때마다 뜨끔 모먼트였어요. 나도 얼마나 모순적인 말들을 했을까, 가끔 녀석이 천진난만하게 세상의 부조리들을 물어올 때마다 수긍도 반박도 못하는 상태로 어버버하는데, 이제 이 질문들이 쏟아지겠구나 싶어서 두렵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은 그렇게 율이의 시선을 따라 율이의 세상을 그려냅니다. 까칠하고 예민하다, 고 세간이 평가할 율이의 시선들은 그 시절의 저를 소환했네요. 교실이 이랬지, 선생님과 어른이라는 사람들은 얼마나 무디고 제멋대로이며 그럴듯한 모순의 말을 늘어놓았었는지... 읽으면 읽을수록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들이 명확해졌습니다. 무뎌지지 않은 날것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평가하기 시작한 녀석에게 원래 그래, 라는 식상한 말들을 해선 안된다는 각성의 책이 되어 주었습니다. 적어도, 이 책의 엄마의 반만큼은 실천해야 된다는 반성의 책이 되었네요.
이 책을 읽으며 그 시절이 왜 이렇게 힘들어야 했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또래 집단, 기준 집단이 있었던 시절. 평균에 휘둘리던 시절이어서 그랬었던 게지요...? 성장도, 성적도, 친구도, 사회성도 모든 게 평균인지, 미달인지, 월등한지 진단되고, 수치화되고, 판단되고, 공개되었던 날들. 비밀은 많았으나 어떻게든 공개 되었고, 수군거림이 늘 있었고, 평균과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액션이 취해졌던 그 시절. 내가 나 자신으로 판단되지 못하고 기준집단에 비롯하여 평가되던 그 시절이었기 때문이었구나,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깨닫기도 전에 각 반에는 인기인과 왕따가 생기고 인기인 주변에는 눈치 빠른 친구들이 붙고, 인기인의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사는 그 외 학생들이 있고요.
으악, 다시 쓰면서도 정말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들입니다.그러나 거쳐야 할 나날들이겠지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침묵하고 반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가해자가 되었던 날들. 내 의견에 솔직하기 보다 그냥 대세를 따르고 묻혀가는 회색분자가 되는 것이 더 쉬웠던 날들. 그러면서 오는 자괴감과 무력감은 그 감정들이 뭔지도 모른 채 쌓여만 가서 답답해지기만 했던 그 시절이 아주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율이는 사람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사회 부적응자라는 말을 듣지만 사회 생활을 못하지 않습니다. 친구의 행동에서 나에 대한 비하와 우월한 마음을 읽지만 싸움을 하는 대신 아첨을 하는 것으로 이득을 취하죠. 게임과 축구를 좋아하지 않지만 친구들이 좋아하니까 그것들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학교라는 전쟁터에서 안전하게 졸업하기 위해 필요하니까 친구 관계를 유지합니다. 아이고, 이 정도면 너무 잘하는 것 아닙니까? 비록, 스스로는 너무 괴로웁지만 말입니다. 사회생활이 다 그런거지 뭐, 자조적으로 말하게 되겠지만요.
율이는 인간에 대해, 사회 생활에 대해, 어른에 대해, 인간관계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니컬하고 비관적인 견해들을요. 그리고 그것이 맞는가 자문자답의 시간을 거치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답들이 변해갑니다. key man 이도해, 학급 인기인인 서진욱, 서진욱에게 고백했다 차인 김지민 등 율이의 주변인들로 율이는 성장하고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다사다난한 중학교 3학년을 보내고 대망의 졸업식을 하게 되지요. 울컥하는 졸업식이었습니다.
율이의 성장, 그리고 율이와 함께 변화를 겪는 친구들, 엄마까지도 모두 성장하는 1년이 책장을 덮고 나면 참 소중해집니다. 곧 중학생이 될 아이에게,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너 만큼은 너 자신을 떠나지마.
너는 의미있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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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가제본책을 제공 받아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