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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
김별아 지음 / 문학의문학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미실>의 작가 ‘김별아’, 항상 그녀의 작품에 주목하게 된다. 어떤 역사 속 실존인물들과 사건들을 그녀만의 방식-꼼꼼한 역사 고증을 바탕으로 예리한 상상력이 완벽한 얼개를 이루는-으로 풀어낸 이야기에 홀딱 빠져버렸다. 작가는 말했다. 그녀의 문학적 테마인 ‘사랑(목숨을 건 사랑)과 죽음’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풀고자 하다 보니, 공간적 배경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뿐이라고. 역사라는 날개옷을 빌려 훨훨 상상의 나래를 자유롭게 펼치는 작가 ‘김별아’표 역사소설, 그 매력을 <열애>를 통해 여지없이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존의 그녀의 작품과 달리 <열애>는 왠지 기억이 없다. 그런데 최근 <1910년, 그들이 왔다>(이상각, 효형출판, 2010)를 통해 ‘가네코 후미코’란 인물을 알게 되었다.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신선한 충격이었다. 머리가 띵하니 새하얘지면서 그녀의 삶이 궁금해졌다. 아니 그녀의 삶을 고스란히 느껴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느끼며, 그렇게 <열애>를 기꺼운 마음으로 펼치게 되었다. 소설로 인해 그녀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올 것이란 기대가 커졌다. 그리고 일체의 지난 이야기는 잊혀졌다. 생생하게 그녀의 삶은 <열애> 속에 되살아났다.
그녀의 삶은 너무도 잔혹해 낯설었다. 그녀의 올곧은 삶의 기저에 ‘사랑’에 대한 열망과 ‘삶’에 대한 열정이 잔인한 세상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허상, 거짓,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녀는 온몸으로 부딪혔다. 그 모습에 온몸의 세포들이 출렁였다. 아우성을 쳤다. ‘후미코’는 내 안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번뜩이는 눈으로 수시로 치밀어 오를 기회를 노리는 울분, 상처, 열패감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리고 개체로써의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희열, 희망을 오롯이 풀어주었다.
그녀의 모진 삶 속에서 벚꽃처럼 만개했던 그 찰나의 순간이 기억 속에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영원할 것이다. 항상 봄이면 벚꽃에 탄성을 지르며 한 해 한 해 추억을 쌓아가듯, 충적된 기억에 삶은 더욱 농밀해질 것이다.
저자의 문학적 테마 그대로 ‘목숨을 건 사랑 그리고 죽음’은 역사적 실존인물의 삶을 통해 고스란히 투영하였다. 역사적 실존인물의 삶에 또 다른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났다. 역사적 사실 사이에서 인물의 삶은 인간에 대한 내밀한 고찰과 애정을 통해 그들이 삶과 우리내의 삶이 하나가 되고, 더욱 진중하고 풍성해졌다. 그들의 내면 깊숙이 빨려 들어가 하나가 되었고 이내 우리와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역사소설이니만큼, 때론 역사적 사실의 실체, 그 잔혹한 진실과 마주하는 힘겨운 시간이었다. 또한 ‘역사의 변방에서 재티(불에 탄 재의 티끌)에 묻힌 채 외로이 반짝이는 그들’(작가의 말)과 조우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 마음이 촉촉해졌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애써 참았던 감정들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무언가 훈훈한 기운이 옴팡지게 터져 나왔다. 그것은 희망과 열정의 빛에 고무되었다.
어서 빨리 그녀의 최신작 <가미가제 독고다이>도 펼쳐야겠다. 책장에 고이 모셔두었던 녀석이 자꾸만 손짓을 한다. 애타게 기다리는 그 눈길을 더 이상 외면하기 힘들겠다.
"사랑 ……. 그래, 그건 언제나 낯선 말이야. 하지만 사랑이 낯설 수밖에 없는 건 여전히 삶이 익숙지 않기 때문일 거야. 삶에 익숙해지면 사랑에도 익숙해져. 익숙해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다만 누추한 관성일 뿐이지. 나는 사랑에도, 삶에도 언제까지나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 ……." (218-219)
단 한 번뿐이야. 그 이상은 없어
그리고 우리도 한 번뿐이야
다시는 없어
그러나 단 한 번 존재했다고 하는 것
지상에 실존했다는 것
이것은 더할 나위 없이 의미 있는 일
(릴케의 시, 282)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타인을 사랑하지 않아. 그 이상을 사랑하지. 그리고 사랑받고 있는 것은 타인이 아니야. 바로 자기 자신이지. 그래! 타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야. 그것이야말로 자아의 확대라 할 수 있겠지" (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