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 대하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예전엔 누군가의 죽음에 그저 무덤덤하니, 어떤 느낌조차 없이 어떤 아픔을 느껴본 기억조차 없다. 숱하게 보았던 뉴스 속 대형사건, 사고 속 아수라장의 혼란, 애끓는 눈물들조차 순간의 이미지처럼 나 몰라라 도망쳐버리고 흩어져버렸다. 그렇게 아무리 아픔을 토해내는 열띤 목소리에도 하나의 이미지로 각인될 뿐, 나 그저 여전히 밥 잘 먹고 열심히 떠들었다. 그런데 이젠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꾸역꾸역 슬픔, 애처로움이 차올라 눈시울을 붉히며 굵은 눈물 방울방울을 툭툭 떨어뜨리게 되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척이나 무뎌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렇지 않았다. 어떤 계기가 있어 이렇게 마음의 변화를 겪게 된 것인지 모르겟다. 막연하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 서서히 옥죄어오는 죽음의 실체 때문일까?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번 신작 <그녀에 대하여>는 그렇게 ‘죽음’을 이야기한다. 그것도 갑작스럽게, 예고도 없이 찾아든 죽음이란 소재를 신비하면서도 미스터리하게, 흥미진진하면서 진중하게 은근 슬쩍(?) 던지고 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치유’와 ‘위안’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게 하는 특별한 이야기에 신비함이라는 비장의 무기로 무장한 작가다. 이젠 결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녀의 또 다른 이야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요즈음 그녀에 대한 나의 맹목이 잠시 주춤했다. <그녀에 대하여>를 통해 더욱 시들해지나 싶은 순간, 놀라운 반전으로 예상치 못한 죽음처럼 예상치 못한 반전이 숨어있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사랑스럽게 끝날 거란 우려는 우려에 지나지 않았다. 뭔가 새롭고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무척 새롭가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찰라지만 그녀에게 품은 반감은 왜일까? <그녀에 대하여>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들떠 책을 들게 되었지만, <왕국>과 <키친>속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었다. 가족의 죽음(또는 헤어짐)과 뜻밖의 인연으로 치유의 과정이라는 기본 맥락-상실과 치유는 그의 오랜 주제임에도-이 반복되는 탓에 다소 식상해진 것일까? 아니면, 그녀(유미코)의 트라우마의 실체를 확인하고픈 호기심과 미스터리한 전개 구조에 정신을 빼앗기기도 잠시, 예상치 못한 반전에 흡사 ‘요시모토 바나나’가 유미코의 엄마(마녀 학교 출신으로 강령회를 진해하다 뭔가에 씌어 남편을 찔러 죽이고 자살한다)처럼 어떤 오컬트적인 힘으로 나를 잠식해 들어온 것같은 석연찮음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두려움에 휩쓸린 탓일까? 그만큼 그녀(유미코)에 대한 이야기 <그녀에 대하여>는 강했다.

 

주인공 유미코는 자신의 과거의 기억을 찾아 떠난 여행을 통해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물론 사촌 쇼이치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결코 인정할 수 없었던 진실! 그래서 그렇게 애타게 떠돌 수밖에 없었던 방랑자의 삶, 그것은 우리의 또 다른 자화상은 아닐까? 진실을 거부한 채 변두리만을 헤매는 떠돌이같은 인생! 참으로 암담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차분하면서도 무척 특별한 관계를 통해 인물들이 각자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보듬어주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언제나 스스로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해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고, 행복감이 몰려드는 묘한 마력을 지녔다. 그것이 여전히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야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평범한 나의 일상이 그네들의 일상에 감도는 기분 좋은 활력과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도록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렇게 뭔가 내 안에 숨어있던 어떤 상처와 아픔을 이내 씻어버렸다. 그리고 그 누구도 빗겨갈 수 없는 숱한 죽음 -특히, 천안함 사건 같은 애잔하고 애처로운-들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그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저 세상에서 마음의 안식과 평안을 얻기를 간절히 바란다.

 

 

문득,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이옥수, 비룡소)의 책이 떠오른다. 예기치 못한 죽음이 가져온 혼란과 상처 그리고 치유라는 공통된 소재가 어쩐지 하나로 연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 길 내는 여자 서명숙의 올레 스피릿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레? ‘1박2일’을 통해 접하고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이 바로 ‘올레’였다. 물론 항상 떠나고픈 욕망을 자극하지만 올레는 그중 단연 으뜸이다. 여전히 제대로 발걸음을 한 적 없는 방콕주의, 귀차니즘인 나! 동행할 친구와 ‘올레’ 여행을 계획하기도 하였지만 실행하지 못한 채, 그저 주저하며 머뭇거림은 지금까지 여전하다. 그럼에도 ‘올레’에 대한 희망, 열망을 놓을 수가 없어 늘 여행 계획 일순위! 그렇게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을 손에 쥐었다. 최근에 읽은 어느 책에서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을 소개하며 시절인연이 무섭게 다가왔다. 그렇게 책꼬리를 쫓아 올레의 숨결을 느껴보았다.



 

솔직히 ‘길 내는 여자 서명숙’에 대해서도 전혀 무지했다. 올레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열정이 숨어있으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있던 길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 발자취를 오롯이 느끼다보니, 두려움에 갇혀 옴짝달싹 못했던 내게, 아직도 세상 밖으로 다가설 준비를 하고 있는 내게 책 속 올레정신은 주먹을 불끈 쥘 정도로 강한 힘을 주었다. 에너지가 제주도의 푸른 바다처럼 넘실거린다. ‘아~ 좋다!’ 이 말 한마디의 탄성이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에 대한 사견을 대신한다. 다른 말을 사족일 뿐!



 

우리집 2돌 어린 천사와 함께 곡성 기차마을로 가을 나들이를 가면서 손에 쥐었다. 예상보다 늦게 배송된 책으로 애가 탔던 마음도 잠시 책을 펼쳐 몇 글자 읽기도 전에 올케에게 책 자랑하고 있다니? 행복이 여기저기 터져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올레의 진정성이 손끝으로 전해지면서, 오롯이 ‘올레’를 느껴보고 싶다는 열망만 강렬해질 뿐이었다. 옛길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길이 열리는 기적이 감동을 주었고, 올레의 숨결을 먼저 느꼈을 수많은 올레꾼들의 다채로운 사연들이 가슴을 촉촉이 젖혀주었다. 한없이 포근한 느낌이었다. 어머니의 품 그대로.


 

올레에 대한 열망을 키워가면서도 어느 순간 나는 ‘고향’을 생각하였다. 서명숙의 고향 제주도가 모든 이에게 제 2의 고향이 되어주는 동시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불러 일으켰다. 그가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애정을 느끼노라면, 절로 아련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던 동네 어귀로 발길을 돌리게 하였다. 그립고 그리운 고향의 향수가 가슴 속에서 샘솟았다.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은 오라버니는 산길을 넘어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면소재지에서 학교를 다닌 내겐 듣도 보도 못해 생경했던 그 산길이 희미하게 되살아났다. 그렇게 여기저기 작은 오솔길, 숲길, 동네 골목길, 담과 담 사이 비밀의 길 등등 내 기억 속 고향의 아기자기한 수많은 길들이 한 순간에 폭발했다. 그 길 위에 추억들은 덤으로 따라와, 시공을 초월하여 시간여행을 떠나기도 하였다. 이제는 갈 수 없는 고향, 실향의 아픔이 한 해 한 해 더해지는 가운데 옛 풍경이 되살아났다. 이는 고향 산천, 이 땅의 수많은 길들을 열어줄 것이다. 그 열린 길 위, ‘00길’에 대한 열풍이 올레의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경쟁과 욕심은 인간을 황폐하기 만들기 십상이다. 그러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견주는 경쟁과 욕심은 인간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한다(365)’는 저자의 말이 ‘올레’의 진정한 정신이 아닐까?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은 경쟁과 탐욕으로 얼룩진 우리 현대인에게 모태같은 포근함을 선사해주면 잠시 삶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쉬기에 안성맞춤인 시간을 내어주었다.  

마음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올레길에 대한 동경이 책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한 사람의 열정과 땀이 고스란이 전이되고 어떤 거룩하고 위대한 뭔가를 자극받고, 더불어 어우러짐을 온몸으로 느꼈다. 제주도가 그립다. 제주도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또 다시 제주도의 추억을 덧씌우고 싶다. 호젓한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삶의 여유,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시간, 그래서 나 역시 네 피부로 느껴보고 싶은 열망에 빠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균관의 공부 벌레들 - 조선 최고 두뇌들의 성균관 생활기
이한 지음 / 수막새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역사서를 읽게 되면, 으레 학창시절 역사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암기 위주의 단편적인 교육 현실을 되짚어보게 된다. 성균관? 글쎄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조선 최고의 고등 교육 기관이라는 ‘성균관’ 이 세 글자가 중요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속살을 들여다본 기억은 없다. 최근에 드라마와 함께 ‘성균관’을 엿보게 되었는데, 참으로 인간적인 공간이 아닐 수 없었다. 유생들의 삶이 현대적으로 각색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학문의 장’으로써의 성균관 이미지를 벗은 듯하다. 그리고 <성균관의 공부벌레들>을 통해 고지식한 유생들이란 편견의 벽이 완벽하게 허물어졌다. 성균관의 기막힌 시스템과 모순들 접하니, 오히려 더욱 친숙하고 흥미로운 곳으로 탈바꿈하였다. ‘과거 급제’라는 일생일대의 목표를 두고 200여명의 젊은 혈기들이 한 곳에 모였다. 그 곳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시대정신과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예전에 얼핏 성균관 유생들이 왕의 권위(정책)에 반기를 들 어 ‘수업거부’ 같은 것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동맹휴학이 바로 식사 거부로 이어지며, 출석 체크를 식당에서 했다는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지금으로써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는데, <성균관의 공부벌레들>을 통해 성균관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흐릿한 기억 속 이야기가 ‘사실’임을 확인하고 그 시스템의 원리, 상황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 시스템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 모순을 알게 되었다. 이는 또한 인간의 모순과 한계가 되고, 나라와 시대의 운명과 괘를 함께한 성균관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또 다른 모습을 바고, 그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분명 아침과 저녁 식사 때, 출석 체크가 이루어졌고, 그 출석 일수에 따라 과거 시험을 볼 수 있는지의 여부가 결정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출석이란 것도 ‘장유유서’라는 유교 이념에 따라, 정원 200명 중에 100명으로 한정되어 있다니, 아침부터 출석 체크도 못하고 굶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등, 분명 아침부터 치열한 하루가 예고된 성균관 생활이지 않은가! 치열함에 발맞춰진 독특하고 믿기 힘든 사건사고들이 끊임없이 흥미를 일으킨다. 목차-커닝사건(쇼생크커닝), 조선판 달마야 놀자(덕방암패싸움) 등등 -를 확인하더라도 과연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 호기심을 갖게 된다. 그렇게 ‘조선 최고 두뇌들의 성균관 생활기’ 속 성균관의 진풍경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성균관은 과연 어떤 곳이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이 이 한 권의 책 속에 담겨있다. 정말 기막힌 사건사고들의 장, 사람 냄새 풀풀 풍기는 유쾌한 곳, 그리고 열나게 공부에 몰두해야 했던 치열한 곳이 바로 ‘성균관’이었다.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여 하나의 성역을 이루고, ‘성균관’을 둘러싼 주변의 생활사까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 속에서 여지없이 오늘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의 교육 현실, 그 잣대가 ‘성균관’ 흥망성쇠 속에 여지없이 녹아있었다. 그렇게 성균관의 과거가 오늘의 우리에게 걸어와 되묻는다. 역사가 무엇이냐? 오늘을 사는 지혜를 배우라지 않는가! 예로부터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떠들었다. 그렇게 떠들어대기만 하지 않았는지, 오늘의 현실을 보면 아무래도 우리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사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성균관! 이상의 현실화를 구연하기 위한 궁극적 목표를 두고도, 많은 모순과 한계를 지닌 참으로 인간적인 공간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꿈꾸었지만, 철저하게 현실의 굴레 속에 갇힌 성균관! 그런데 오히려 더욱 친밀하게 느껴지고, 더욱 호기심을 부채질한다. 그렇게 조금 더 가까이에서 성균관, 더 나아가 조선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오늘을 반추하며, 더 이상 그릇된 역사가 되풀이되며 써지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95년 삼풍백화점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몇 편 접해본 기억이 있다. 그 끔찍했던 악몽의 순간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고, 어느새 흐릿해졌다. 어린 시절 뉴스 속 영상으로 접했던 사건들은 그저 생경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사건들을 다시 떠올려 돌이켜보면, 정말 아찔해진다. 그 슬픔과 아픔이 오늘까지 되풀이되며 크나큰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것은 왜일까?

 

<강남몽>을 통해 만났던 사건의 전말과 인물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가 하나의 역사로 되살아났다. 하나의 소설이 아닌, 실제 사건들 속, 우리의 감추고 싶은 모순 투성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살아났다. 솔직히, 외면하고 싶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 하던가? 그렇게 현대사 속에 숨겨진 야욕, 음모, 짜고 치는 고스톱 판 같은 역사의 이면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근현대사, 특히 해방 이후의 역사에 눈을 돌리려던 순간, 내게 하나의 흐름을 제시해주는 것이 바로 <강남몽>이었다. 일련의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 흐르듯 흘러흘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전혀 별개의 인물들, 그들 개개인의 역사가 오늘의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고, 큰물줄기를 형성했던 것-물론 씻을 수 없는 오점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을 보여주었다. 오물처럼 취급될 수 있는 강남 형성의 과정에서 인간의 욕망과 허상을 발견하고, 그 씁쓸함이 무척 거북하였다. 또한 단순한 과거의 역사가 아닌, 오늘과 무관하지 않은 어떤 실체를 확인한 기분이었다. 

 

 

또한, 얼마전 총리, 장관의 후보자 인준 과정을 지켜보면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이미지 또한 <강남몽>이었다. 강남몽 속 등장인물들이 그들과 겹쳐지는 것이 아닌가! 지금껏 폭력, 부동산 투기, 재산 누락 등등 많은 부패, 비리 의혹을 보아왔지만 우리 사회의 특권층의 행태를 보며, 이번처럼 크게 실망하고 분노했던 적이 없는 듯하다. 과거에도 그래왔던 그 행태가 오늘 하루 갑자기 변화리라 기대감 같은 것, 높은 아니 도덕성 자체를 기대한다는 것인 왠지 어불성설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상대적 박탈, 허탈감을 여지없이 느끼며 그들의 재산 축적이 그다지 정당하지 않으리란 의혹이 <강남몽>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고 할까? 정의가 사라진 폭력, 사기, 살인의 무법천지의 세상이 바로 우리 현대사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등장 인물들의 삶이 양육강식, 적자생존의 제국주의의 지배논리와 하등의 차이가 없었다. 거슬러 올라 일제 식민 시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현대사에 천민자본주의, 황금만능주의로 점철된 허상의 거대한 대제국이 바로 오늘의 ‘강남’이 아닌가? <강남몽>을 통해 비로소 나는 눈을 뜨게 되었다. 그 자체로 허무하고 덧없는 꿈, 욕망을 쫓는 우리에게 또다시 묻는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역시 그 허상의 노예가 아닌지.

 

박선녀가 더미 아래 깔리면서 그녀의 과거 이야기와 무너진 대성백화점의 주인 ‘김진’의 파란만장한 과거인 일제시대 만주로 배경이 바뀌는 순간, 우리 역사의 맥이 끊긴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 듯, 맥이 툭 끊기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이 책의 힘인 듯하다. 서로 다른 듯한 인물들의 개인사가 ‘박선녀’라는 인물과 하나로 연결될 때, 한 개인과 역사의 유기적 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듯해, 어떤 희열 같은 것이 느껴졌다. 또한 사회적, 역사적 존재로서의 나의 위치를 고민해본다. 과연 어떤 삶을 살다가는 것이 옳을지, 돈, 권력, 현실, 이상 과연 무엇을 쫓으면 살아야 하는지 숱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분명 대개 인물들, 특히 ‘박선녀, 김진, 심난수, 홍양태’의 대표적인 인물들은 우리 현대사의 오점처럼 각인되었다. 그렇다면 그 역한 오물 냄새를 맡기 위해 나는 끝까지 책을 손에 쥐었던가? 분명 그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장을 장식한 ‘임정아’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꿈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남시의 탄생의 얽힌 이야기가 ‘임정아’의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면서, 삼풍백화점 더미 아래서 발견된 최후의 생존자로 이야기가 끝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아직도 우리가 ‘삼풍백화점’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읽는 이유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네 살이 어때서? - 노경실 작가의 최초의 성장소설
노경실 지음 / 홍익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열네 살? 그 나이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제목과 표지를 보면 왠지 유쾌한 방황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데. ‘노경실’ 작가의 최초의 성장소설이라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성장소설’을 최근 들어 무척 즐기고 있다. 이 역시도 네 열 네 살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면서, 지금 열네 살 어린(어리지 않다고 한 소리 할까?) 친구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리란 기대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면서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일단 책을 접하면서 나의 열네 살을 추억하기에 바빴다. 아니 애써 추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나의 열네 살은 어디로 간 것일까? 몇몇의 굵직한 나름의 사건사고들이 열넷을 추억해주었다. 하나의 기억을 풀어보자면, 졸업 즈음에 어머니께서 사 주신 점퍼(외투)가 이젠 중학생이 되는 내겐 너무도 유치한 색깔과 디자인이라며 맘에 들지 않는다고 크게 소란을 피웠던 것이다. 이젠 중학생인데 말이다! 어떤 특권이 주어진 것처럼, 어른이 된 착각에 뭔가 뚜렷하게 구별되는 무엇인가가 있었나 보다. 왜 가장 먼저 엄마와의 갈등이 떠오른 것일까? 주인공 연주의 모습을 보면서 내 기억 속 연주와 조우할 수 있었나보다.
그리고 연주의 학교선배 ‘지섭’의 등장으로 잊었던 나의 달콤한 풋사랑이, 연주의 단짝 ‘민지’로 인해 할머니와 살았던 단짝친구(집과 가까워 자주 함께 자기도 하였다)과의 소중했던 우정들이 되살아났다.
지섭의 유학과 첫사랑의 아픔은 마치 전학으로 인한 이별, 그리움 등의 헤묵은 감정들을 갑작스레 간질였다. 마치 나의 열네 살의 온갖 추억들이 <열네 살이 어때서?> 속 연주의 이야기를 통해 고스란히, 생생하게 되살아나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채워주었다. 



오늘의 열네 살 친구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때론 뭔가 소통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가 무척 낯설기도 하지만, 그 친구들을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또한 나의 밥벌이이기 때문에 좀 더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삶을 엿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온갖 갖은 생각들도 가득한 어린 친구에게 그 뇌 속에 들어가 보고 싶다하니, 아마 미처 버릴 거라며 나름의 고통을 토로하였다. 그러면서 유치원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 그랬다. 그만큼의 크기에 따라 버거운 삶의 고뇌가 수시로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그 때는 그 때대로, 지금은 지금대로. 모두 저마다의 고통, 고민들은 통과의례와 같은 삶의 흔적들 일 테고 그로 인해 한층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일 테다. 그렇게 모두를 위로하고 싶다. 


책을 읽는 순간순간, 그 순간의 소소한 일상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온다.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는 친구 연주는 모든 열네 살들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학교-학원-집 이외의 다른 삶의 궤적을 찾기 힘들지만, 꿈을 꾸고, 꿈을 이야기하고 도전하고, 때론 좌절하는 모습과 그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무척 유쾌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 모습들이 무척 즐겁고 흥미로웠다. 
책을 읽으며 너무 훌쩍 지나가버린 시간들에 뭔가 빠트리고 읽은 것은 아닌지 재차 확인하게 되었다. 나의 십대가 훌쩍 흘러가 구멍투성이인 것처럼. 아쉬움에 마지막 장을 덮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꿈을 향해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수밖에 없는 많은 친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또한 가슴 속 뜨거운 열망과 희망으로 앞으로 닥칠 수많은 일들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너희가 앞으로 수많은 일과 감정의 변화 속에 있게 될 텐데, 내가 읽어준 신문기사들처럼 명분 없는 일로 너희의 인생을 우울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인생은 셀 수 없이 너희를 째려볼 것이다. 겨우 그 정도밖에 못 사느냐? 넌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냐? 등등의 조롱으로 말이다. 또 삶은 너희를 기분 나쁘게 째려볼 것이다. 네가 뭘 하겠어? 네가 뭐 대단하다고? 네가 하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면서 말이다. (……) 이거 하나만 기억해라. 너희가 울든 웃든, 노력하든 포기하든, 주저앉든 다시 일어나든 …… 시간은 단 한 번도 멈추거나 쉬거나 요령 피우지 않고 계속 앞으로, 앞으로만 가고 있다는 것을.” (165-1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