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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난난 -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
오가와 이토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달팽이 식당>의 저자 ‘오가와 이토’를 잊을 수 없었다. 그 달팽이 식당의 풍경, 그 따듯하고 포근한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해, 그녀의 신작 <초초난난>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직접 만나보고 그녀가 풀어낸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잔잔한 여운, 행복감이 가슴을 벅차게 하였다.
초초난난,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이란 부제가 눈길을 끌었다. ‘남녀가 정겹게 속삭이는 모습’은 과연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단어, 표현들로 묘사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 정겨운 속삭임에 가슴이 들뜨고 잔잔한 미소가 입가에 머문다. 마음속이 환한 봄빛들로 한 가득이다. 그래서 소설 속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시오리’의 사랑과 가족 그리고 소소한 일상의 모습들은 어쩌면 지루할 수도 있다. 특정 사건의 전개라든가, 예상치 못한 반전 등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살포지 안아주는 포근함’이 있어 ‘행복’에 절로 물드는 느낌 그 자체이다. 최근 빠른 전개와 격정적(?)인 이야기 전개에 빠져 있다가 나름 속삭이는 듯이 잔잔한 이야기에 크게 동요되는 느낌이다. 뭐랄까? 최근 막장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착한 드라마에 깊이 매료되며 흥분하게 된 듯하다. 아니면 ‘빨리빨리’를 외치다 ‘느림의 미학’에 아주 자연스럽게 젖어든 듯하다.
미닫이문을 들어서는 낯선 사내의 등장 그리고 조심스럽게 꽃을 피우는 사랑, 그런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일명 ‘불륜’이라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결코 ‘불륜’스럽지 않았다. 주인공 ‘시오리’의 일상 속 그녀의 마음속을 들락거리다 보니, 어느새 그녀의 조심스럽고 정갈함에 매료된 듯하다. 오히려 참으로 맑고 순수함이 느껴져 마음이 한없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사랑의 설렘, 조심스러움, 풋풋함, 그리고 격정을 아주 조심스럽고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읽는 기쁨은 배가 되었다. 읽는 내내 수시로 나를 사로잡는 문장, 문구들에 한없이 나는 나긋나긋, 말랑말랑해졌다. ‘가슴속이 꽃봉오리고 가득 차오르는 것 같’고 ‘마음속에는 꽃이 피’고, ‘마음이 춤을 추’고 ‘심장이 쿵쿵 떨어져 내릴 것 같고’, ‘눈 녹은 물은 한층 더 따뜻한 온천수처럼 변해 내 몸속에서 찰랑찰랑 넘실’거리는 그 마음들이 왠지 시오리가 된 듯, 착각에 빠져 내 마음속도 꽃이 활짝 피어오르고 행복이 번지는 듯하였다.
‘맛있는 것을 같이 먹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맛있는 것은 같이 먹는 상황을 그려본다. 소설 속에서는 끊임없이 먹는 상황이 전개된다. 이웃집 한 아주머니는 항상 먹을 것을 챙겨 찾아오고 이웃집 할아버지와의 데이트도 맛집 데이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항상 먹을 것은 챙기는 그 마음들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깃들어 있다고 할까? 함께 무엇인가를 먹는 행위, 그러고 보면 ‘식구’라는 단어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리고 주변을 다시금 둘러본다. 어떤 남녀 간의 애정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함께 나누어 먹는 기쁨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우리는 과연 그렇게 ‘맛있는 것을 같이 먹고 싶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만끽하는지,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떼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행복이 넘실거려 오히려 당황스럽기도 하였다. 다시 또 말한다. 정말이지 행복감에 푹 빠져들었다. ‘행복한 소설’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기대 이상으로 책을 읽는 내내 ‘행복하네’라며 연신 속삭이는 시간이었다. 왜 그리도 행복했던 것인지 ‘시오리’를 다시금 만나보고 싶다.
아무래도 ‘요시모토 바나나’에 이어 앞으로 지켜보며 기대하게 될 작가가 ‘오가와 이토’인 듯하다. 이미 <패밀리 트리>가 출간 예정이니, 하루 빨리 만날 수 있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