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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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며칠 전에 나의 작은 뜰에 흰나비가 나풀나풀 날아들었다. 올해 들어 처음 만나는 나비였다. 어찌나 반갑고 기분이 좋던지 나를 둘러싼 세계가 아련하게 따스해졌다. 단지 꽃을 찾아 날아온 것뿐인데, 살랑거리며 나의 작은 뜰로 날아든 나비가 주는 그 느낌은 그 어떤 만족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 나에게 찾아온 또다른 '나비'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다른 '나비'였지만!

 

책을 선택하는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그 하나가 '나무'라는 제목이나 소재를 들 수 있다. '나무'는 일단 우선 선택하고 본다. '나무'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나비'일 것이다. '나비'가 주는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움은 이상하게도 나를 흐뭇하고 만든다. 그런데 책 소개를 보면, 역시나 환상, 스릴러, 판다지를 이야기하더라. 그러고보면 나만의 느낌은 아니가보다. 여하튼 나비가 주는 그 신비로움이 이 책 속에 그대로 녹아있다. 또한 베르베르 베르나르'나무'와 견줄만 하다니, 일단 비교차원에서라도 읽어봐야 할 일이었다.

 

'나비'의 첫이야기 '관광여행'을 통해 진정으로 '온다 리쿠'의 이야기에 빠져버렸다. 땅 속 깊은 곳, 거인이 숨죽어 잠자는 마을에는 불쑥불쑥 돌로 된 손이 자란다. 그 마을로 어느 부부가 여행을 다녀온다. 그리고는 그 부부의 마당 한 켠에 작은 바위손이 삐쭉이 솟아 있다. 바위손이 자라는 마을이란 배경과 그 속의 사람들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웠다. 나는 그다지 판타지 소설을 즐겨 있는 편은 아니다. 그리고 때론 판타지 소설은 나의 상상 밖이고 또한 이해 밖이라 그지없이 어렵게 느껴지고 집중하며 읽지 못하는 겨우도 많다. 그런데 '나비'는 달랐다. 봄처럼 가볍게 즐겁게 읽을 수가 있었다. 또한 특별하게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짧은 서평과 함께 별점이다. 그냥 소설의 내용과 이미지 등과 너무도 맞물려서 나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기도 하였다.

15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때론 유쾌발랄한 이야기, 공포와 아리송함을 지닌 스릴러, 또는 우스꽝스럽거나, 날카로운 이야기 등등 여러가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중에서 '당첨자', '당신의 선량한 제자로부터''야상곡'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당첨자'는 어릴 적 10만원을 찾아 버스를 타고 돌아오던 길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이야기로, 로또7 복권에 당첨된 한 남자가 있다. 그런데 그 남자에게는 10만원을 들고서는 온갖 상상 속에서 두려움에 조마조마 숨죽였던 어린 나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서 피식피식 웃으면서 읽다가, 대통 뒤통수 한 대를 얻어 맞았다.

 

나는 '나비'를 접하기 전에 '온다 리쿠'를 알지 못했다. 처음 '나비'를 접하면서 왠지 낯설지 않은 이름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미 기존에 여러 소설을 발표하고 이 책은 인터넷 연재까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그녀의 이야기에 이번에도 매료되었다. 그녀의 다른 소설들이 무지무지 궁금할 뿐이고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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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이정표 도난사건
이세벽 지음 / 굿북(GoodBook)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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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참 별난 소설 하나를 만난 느낌이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 것인지 자꾸 의심이 드는 참 희아한 소설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길을 잃어버리고 헤맬 때의 막연한 두려움과 짜증이 밀려오기도 하였다. 철물값이 뛰어오르자 길 위의 맨홀 뚜껑 도난 사건을 뉴스를 통해 보았지만 지하철역 이정표가 도난 되는 사건 자체도 참 별스럽다. 그리고는 정말로 이정표가 사라진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그런데 이정표가 있어도 그것을 보지 못하면? 이런 상상과 함께 책을 들었다.

 

이야기는 엄마를 잃어버린 아니, 엄마에게 버림 받은 철수라는 아이가 등장한다. 그리고 동대문운동장역에서 7년간의 노숙생활이 시작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를 돌봐주는 노숙자 '송 이사'가 있고, 그는 철수를 '작은 황금쥐'라 부른다. 황금쥐는 세계적인 부자이지만 지하철역 이정표를 탐하고 지하세계를 건설할 음모를 갖은 자이다. 철수와 주변인들의 지하철역 노숙생활이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황금쥐'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변모한다. 황금쥐와 최측근 은색쥐와 중역 회색쥐들의 등장과 고양이들이 등장한다. 황금쥐가 지하철역 이정표를 탐하면서 도난 사건이 계획되고 실행된다. 그런면서 또다른 인물 부장판사가 등장하고 꿈인지 현실인지를 판단하지 못한 채 부장판사와 철수의 길고긴 여행이 시작된다.

 

황금쥐와 고양이들의 이야기는 상징적 장치일 뿐인지 아닌지가 순간 아리송해진다. 무슨 판타지 에니메이션을 보는 느낌들이 가득하다. 지하세계 건설을 꿈꾸는 황금쥐의 음모를 막아야하는 철수와 부장판사의 대립과 또한 부장판사의 배신과 말하는 우체통과 절망의 계곡에서 꿈과 희망의 발전소를 재가동 임무 등등이 판타지를 불러일으키며, 돈과 권력만을 추종하는 인간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한편으론 선택의 문제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뭐든지 맛있게 먹지만 너무 살이 쪄서 아무 일도 못하고 잠만 자는 남자가 있다. 무슨 음식을 줘도 맛있다며 먹어치우는 그 남자의 입은 축복 받은 것이냐 아니면 저주 받은 것이냐."

" 절제를 선택하면 축복 받은 입이고 포기하면 저주 받은 입입니다."

'...... 저주와축복이 절제와 무절제로 선택되듯이 운명도 그럴 것이다. 만약 운명이 있다면 내가 선택하거나 포기한 그것이 운명이다. 나는 늘 뭔가를 선택하거나 포기해왔다. 탄생 이전부터 그래왔다. 지금 꿈은 희망을 선택할 때이다.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내가 결정한 운명이다.'

 

딱히 어떤 소설이라 규정하기가 힘들다.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자유스럽게 오가면서 철수와 부장판사의 모험이 그려진다. 부장판사의 갈등과 혼란 역시 지금 우리들의 모습일 아닐까? 엄마에게 버림 받은 철수는 그래도 엄마를 그리워하며 끊임없이 엄마와의 만남을 희망한다. 절망의 계곡에서 꿈과 희망의 발전소를 재가동해야한다는 특명은 철수와 부장판사가 아닌 우리들의 사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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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우울한 밤이라는 단어들이 갖는 상징이 무엇일까? 제목만으로는 글쎄~ 그다지 호감가는 책이 아닐지 모른다. 나는 그렇다. 요즘 우울이란 단어는 너무도 부정적이고 때로는 극단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만큼 내 삶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도 없다. 그런데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아니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깊은 밤에 쓴 편지는 다음 날 아침 이내 부치지 못하는 편지가 되기 일쑤였던 기억을 떠올리며, 책 속 이야기를 상상해보았다. 또 역시 어긋났다. 깊은 밤 그것도 우울한 밤, 열여덟살의 살인범과 교도관의 이야기가 있다.

 

200쪽 분량의 소설 속엔 너무도 많은 사건들이 나열되는 듯 보였다. 전개에 앞서 새를 잡아먹는 뱀과 그 뱀을 잡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나'가 등장한다. 이 무슨 소리인가? 소설의 포문을 열기에는 너무도 난해하지 않는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 소설을 끝까지 읽고-아주 잠깐이다- 작품해설을 참고하니, 그 의미들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듯하다.

새를 잡아먹은 뱀은 진정한 악인 것일까? 악이기에 사람들에 의해 난도질당해도 당연한 일인 것일까? 사형제도에 대한 작가의 의도를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크게 '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의 기억과 일상을 만나면서 부부살해범인 열여덟살의 '야마이'와 나의 상사 주임과 나의 자살한 친구 '마시타' 그리고 강간범 '사쿠마'가 등장한다.

 

몇 개 밖에 되지 않는 퍼즐을 푸는 것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것은 이 책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거부감은 바로 전체적인 분위기(제목이며, 표지에서도 느껴진다)가 너무도 우울하다 못해 음산하다는 것이다. 살인과 살인미수, 강간과 같은 극한적인 범죄의 연속, 자살, 불안과 서로 상처주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통을 거부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형제도로 대표되는 사회제도가 가진 모순 등은 이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계속 읽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그런데 나의 보육원 시절의 그(보육원 원장)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이 책의 가치가 비로소 부각되었다.

'자살과 범죄는, 이 세상에 지는 거라고!" 라고 외치는 그는 불안과 좌절로 얼룩진 지금의 우리들에게 희망과 삶에 대한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 ...... 아메바와 너를 이어주는 수십억 년 세월의 끈, 그 사이에는 무수한 생물과 인간이 있어. 어딘가에서 그 끈이 끊겼다면, 뭔가 일이 터져서 그 연속이 끊겨다면, 지금의 너는 없어....... "

" 현재라는 건 어떤 과거도 다 이겨버리는 거야. 그 아메바와 너를 잇는 무수한 생물의 연속은, 그 시십억 년의 끈이라는 엄청난 기적의 연속은, 알겠냐, 모조리 바로 지금의 너를 위해 있었단 말이야." (156-157쪽)

 

인상적인 것은 사형제도에 대한 주임의 이야기다. 교도관인 나와 그의 상사 '주임'의 대화는 '사형제도'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책을 통해 확인하시라~)를 툭 던져 주었다. 그런데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이라 흥미로웠다. 그것은 사회제도가 갖는 모순과 직결되는 면이기도 하였다. 또한 항소를 거부하던 '야마이'가 나를 통해 마음이 변하면서 나에게 보낸 편지도 인상적이었다. 또한 절망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수단으로써 예술(음악, 소설, 그림 등등)을 이야기하는 것도 기억에 남는다.

 

"자신의 취향이나 좁은 선입견으로 작품을 간단히 판단하지 마라." 그 사람은 곧잘 내게 말했다. "자신의 선입견에 따라 이야기를 묶어버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선입견을 이야기를 활용해 넓혀가려고 노력하는 게 좋아. 그렇지 않으면 너의 틀은 넓어지지 않아." (160쪽)

 

"자신 이외의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을 접해보고 너희 스스로도 생각해봐." "생각하는 것으로 인간은 어떻게든 될 수 있어. 이 세상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해도 인간은 그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거야."

 

사형제도의 찬반입장, 그리고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극악한 범죄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치고 싶다. 다만,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아니 그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체득하였다. 

 

얼마전에 어머니가 내게 물었다. "너는 니가 명품이라 생각해? 짝퉁이라 생각해?"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연히 "명품이지"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왜?"라며 되물으셨을 때, 나는 더욱 당황하며 머뭇거렸다.

 

나 역시 되물어본다. "당신은 명품인가요? 아니면 짝퉁인가요? 그에 대한 답과 이유에 대해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라는 책이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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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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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배우 '차인표'가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캄보디아로 강제징용되었던 '훈할머니'를 소재로 이야기를 엮었다니, 두루두루 호기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내 기억으로 '훈할머니'는 수십년을 그렇게 다른 나라에서 살아오면서 우리말과 많은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아리랑'과 같은 노래와 몇개의 단어들만은 기억하고 있던 분이었다. 그런데 작가 '차인표'를 통해 정착하지 못하고 결국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우리 역사의 아픔을 온 몸으로 살아내야 했던 훈할머니를 소재로 한 이야기라 책을 읽는 내내 어떤 결말을 이야기할지? 아니, 다음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상상하면서 그렇게 숨가쁘게 책을 읽어내렸다. 한 번 손에 쥐고나니, 내친걸음이다.

 

소설 '잘가요 언덕'은 '배우'가 유명세를 타고 책을 냈다는 편견을 모두 날려버렸다. 책 속에 빠져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또르르 눈물을 흘려보내기도 하면서 순이용이의 이야기에 빠져버렸다. 어린 시절의 순이와 용이는 '소나기(황순원)'를 많이 닮았다는 느낌- 이 점은 이어령의 추천의 글에서도 제시되고 있다 -을 지울 수가 없다. 또한 순이의 이야기에 몰두하다 보니, '바리데기(황석영)'의 '바리'가 연상되기도 하였다.

 

배경은 일제시대,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0년대를 이야기한다. 위안부로 많은 처녀들이 강제징용되었던 뼈아픈 과거와 만나게 된다. 잔인한 역사와 직접적인 대면은 싫었기에 조마조마 가슴 조리기도 하였는데 의외성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가장 특이한 점 첫 번째는 일본장교 '가즈오'가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이다. 첫 번째 편지를 읽을 때만에도 부담스러웠다. 어떤 전개가 있을지 상상하지도 못한 채, 괜시리 불안감에 휩싸였다가, 점점 가즈오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이 드러나면서, 또다른 매력을 느끼게 된다. 두 번째는 새끼 제비이다. 다른 친구 제비들과는 달리 겨우내도 호랑이 마을에 머무르면서 이곳 저곳을 살피면서 책과 나를 더욱 하나로 묶어준다. 아주 조그마한 새끼 제비의 말주변에 반했다고 해야할까? 은근히 할머니가 동화책을 읽어주시는 그 풋풋하고 따스함 느낌이 절로 드는 것은 왜일까? 

또한, 호랑이 마을 촌장 할아버지, 고아 '훌쩍이'와 순이가 잠시 맡아 키운 '샘물이' 그리고 호랑이 마을 사람들과 용이 아버지 '황 포수' 등등의 등장인물들이 한데 어울어지면서 또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책은 '용서'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나는 가슴 아픈 역사와 마주하는 또다른 태도를 배웠다. '용서'로 귀결될 수도 있겠지만, 기존의 편견과 싸우면서 인간적인 면에 매료되고 또 매료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도 아픈 역사이기에 한 웅큼의 눈물이 절로 난다. 그래서일까? 따스하고 애잔한 글의 분위기가 더욱 따스하게 느껴진다. 할머니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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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은행 통장
캐스린 포브즈 지음, 이혜영 옮김 / 반디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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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경제대공황, 1차 세계 대전의 미국 속 가족이야기라는 책 소개를 통해 오늘 같이 어려운 경제 위기 속을 헤쳐나갈 어떤 묘안이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하는 책이었다. 과연 엄마의 은행 통장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과 함께 책을 읽자마자, 나의 예상이 빗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엄마의 은행 통장 속 엄마의 이야기는 힘든 경제 상황 같은 것은 애당초부터 없었는지 모르겠다.
 

아빠의 월급날이면, 식탁에 앉아 얼마 되지 않는 돈을 갖고 집세며, 식료품비, 교육비를 나누는 엄마에게는 아이들의 자랑인 '엄마의 은행 통장'이 따로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큰 은행의 통장 보다는 집에 있는 '작은 은행'의 충분하지 않은 돈으로 생활한다. 그리고 딸 카트린이 원고료로 받은 수표를 엄마에게 건내면서 '엄마의 은행 통장'의 실체가 들어난다. 그리고 딸 카트린의 회상을 통해 지난 시간 동안의 엄마와 카트린의 가족들은 만나게 된다.

 

카트린이 들려주는 엄마와 가족의 이야기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다복하고 그야말로 행복과 사랑이 넘쳐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들고 있는 내 손이 행복으로 가득찬 상상에 빠졌다. 너무도 경쾌하고, 엉뚱하면서도 위트넘치는 상황 속, 엄마의 태도와 행동을 엿보다보니, 단숨에 책을 읽게 된다. 이 담에 또 어떤 사건들이 있을까? 그리고 어떤 재미와 훈훈한 감동을 줄까? 하는 호기심이 책을 읽는 내내 지속되었고, 책을 덮으면서도 여운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세입자가 남긴 부도수표를 찢어버리며, 빚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는 엄마, 동생 다그마르가 귀앓이로 수술을 하던 날 아이를 만나러 가는 엄마의 007작전들, 크리스 할아버지가 남긴 작은 노트의 감동, 티 파티의 위기 탈출기, 아버지의 수술과 수술비 마련의 지혜, 고양이 엉클 엘리자베스의 기적같은 생존기 등등 하나하나 위트넘치고 지혜로운 엄마와 만날 수 있었다. 언제나 밝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보듬어 주는 "괜찮아, 잘 될거야!"라고 말하는 엄마의 모습은 마치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처럼 가볍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매 순간 순간 훈훈한 감동과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책, '엄마의 은행 통장'이었다.

 

여러 일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작가가 되고 싶으십니까?"와 '창피와 슬픔을 이겨 내는 법'이다. 카트린의 실수, 잘못으로 인한 사건이 전개되면서, 아기자기한 사춘기 소녀의 모습을 고스란히 그려내면서, 딸 아이에게 힘을 주는 엄마, 용기를 주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창기와 슬픔을 이겨 내는 법' : 카트린의 과도한 졸업 선물 투정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그리고 카트린이 쉴러앤드썬 가게에서 일하면서 캔디를 조금씩 훔쳐(?)먹던 어느날, 탄로가 나버린다. 그 후 엄마와 카트린의 대화, 큰소리로 활짝 웃으며 딸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엄마의 이야기는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카드린, 내 말을 믿어. 너는 도둑이 아니야. 너는 착한 애야."

"창피한 것이 좋은 거야."

"네가 다시는 그런 짓을 안 하도록 만드는 것이 창피야. 하지만 카트린, 창피와 슬픔을 느낄 때, 그런 것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이 바로 웃음이란 걸 모르겠니?"

 

책을 받아드는 순간, 왠지 가슴 속에 피었던 밝은 미소, 그것은 엄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을까? 시종일관 위기의 순간 놀라우리 만큼의 재치와 슬기로 헤쳐나가는 엄마의 모습은 너무도 밝고 사랑스러웠다. 엄마의 존재에 대해 경쾌하게 접근하면서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내 마음이 너무도 밝게 빛나고 따스해졌다. 엄마의 은행 통장은 그 무엇도 아닌 엄마의 사랑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엄마의 존재 자체!

간만에 경쾌하면서 즐거운 소설을 만나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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