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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은행 통장
캐스린 포브즈 지음, 이혜영 옮김 / 반디출판사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경제대공황, 1차 세계 대전의 미국 속 가족이야기라는 책 소개를 통해 오늘 같이 어려운 경제 위기 속을 헤쳐나갈 어떤 묘안이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하는 책이었다. 과연 엄마의 은행 통장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과 함께 책을 읽자마자, 나의 예상이 빗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엄마의 은행 통장 속 엄마의 이야기는 힘든 경제 상황 같은 것은 애당초부터 없었는지 모르겠다.
아빠의 월급날이면, 식탁에 앉아 얼마 되지 않는 돈을 갖고 집세며, 식료품비, 교육비를 나누는 엄마에게는 아이들의 자랑인 '엄마의 은행 통장'이 따로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큰 은행의 통장 보다는 집에 있는 '작은 은행'의 충분하지 않은 돈으로 생활한다. 그리고 딸 카트린이 원고료로 받은 수표를 엄마에게 건내면서 '엄마의 은행 통장'의 실체가 들어난다. 그리고 딸 카트린의 회상을 통해 지난 시간 동안의 엄마와 카트린의 가족들은 만나게 된다.
카트린이 들려주는 엄마와 가족의 이야기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다복하고 그야말로 행복과 사랑이 넘쳐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들고 있는 내 손이 행복으로 가득찬 상상에 빠졌다. 너무도 경쾌하고, 엉뚱하면서도 위트넘치는 상황 속, 엄마의 태도와 행동을 엿보다보니, 단숨에 책을 읽게 된다. 이 담에 또 어떤 사건들이 있을까? 그리고 어떤 재미와 훈훈한 감동을 줄까? 하는 호기심이 책을 읽는 내내 지속되었고, 책을 덮으면서도 여운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세입자가 남긴 부도수표를 찢어버리며, 빚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는 엄마, 동생 다그마르가 귀앓이로 수술을 하던 날 아이를 만나러 가는 엄마의 007작전들, 크리스 할아버지가 남긴 작은 노트의 감동, 티 파티의 위기 탈출기, 아버지의 수술과 수술비 마련의 지혜, 고양이 엉클 엘리자베스의 기적같은 생존기 등등 하나하나 위트넘치고 지혜로운 엄마와 만날 수 있었다. 언제나 밝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보듬어 주는 "괜찮아, 잘 될거야!"라고 말하는 엄마의 모습은 마치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처럼 가볍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매 순간 순간 훈훈한 감동과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책, '엄마의 은행 통장'이었다.
여러 일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작가가 되고 싶으십니까?"와 '창피와 슬픔을 이겨 내는 법'이다. 카트린의 실수, 잘못으로 인한 사건이 전개되면서, 아기자기한 사춘기 소녀의 모습을 고스란히 그려내면서, 딸 아이에게 힘을 주는 엄마, 용기를 주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창기와 슬픔을 이겨 내는 법' : 카트린의 과도한 졸업 선물 투정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그리고 카트린이 쉴러앤드썬 가게에서 일하면서 캔디를 조금씩 훔쳐(?)먹던 어느날, 탄로가 나버린다. 그 후 엄마와 카트린의 대화, 큰소리로 활짝 웃으며 딸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엄마의 이야기는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카드린, 내 말을 믿어. 너는 도둑이 아니야. 너는 착한 애야."
"창피한 것이 좋은 거야."
"네가 다시는 그런 짓을 안 하도록 만드는 것이 창피야. 하지만 카트린, 창피와 슬픔을 느낄 때, 그런 것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이 바로 웃음이란 걸 모르겠니?"
책을 받아드는 순간, 왠지 가슴 속에 피었던 밝은 미소, 그것은 엄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을까? 시종일관 위기의 순간 놀라우리 만큼의 재치와 슬기로 헤쳐나가는 엄마의 모습은 너무도 밝고 사랑스러웠다. 엄마의 존재에 대해 경쾌하게 접근하면서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내 마음이 너무도 밝게 빛나고 따스해졌다. 엄마의 은행 통장은 그 무엇도 아닌 엄마의 사랑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엄마의 존재 자체!
간만에 경쾌하면서 즐거운 소설을 만나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