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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배우 '차인표'가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캄보디아로 강제징용되었던 '훈할머니'를 소재로 이야기를 엮었다니, 두루두루 호기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내 기억으로 '훈할머니'는 수십년을 그렇게 다른 나라에서 살아오면서 우리말과 많은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아리랑'과 같은 노래와 몇개의 단어들만은 기억하고 있던 분이었다. 그런데 작가 '차인표'를 통해 정착하지 못하고 결국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우리 역사의 아픔을 온 몸으로 살아내야 했던 훈할머니를 소재로 한 이야기라 책을 읽는 내내 어떤 결말을 이야기할지? 아니, 다음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상상하면서 그렇게 숨가쁘게 책을 읽어내렸다. 한 번 손에 쥐고나니, 내친걸음이다.
소설 '잘가요 언덕'은 '배우'가 유명세를 타고 책을 냈다는 편견을 모두 날려버렸다. 책 속에 빠져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또르르 눈물을 흘려보내기도 하면서 순이와 용이의 이야기에 빠져버렸다. 어린 시절의 순이와 용이는 '소나기(황순원)'를 많이 닮았다는 느낌- 이 점은 이어령의 추천의 글에서도 제시되고 있다 -을 지울 수가 없다. 또한 순이의 이야기에 몰두하다 보니, '바리데기(황석영)'의 '바리'가 연상되기도 하였다.
배경은 일제시대,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0년대를 이야기한다. 위안부로 많은 처녀들이 강제징용되었던 뼈아픈 과거와 만나게 된다. 잔인한 역사와 직접적인 대면은 싫었기에 조마조마 가슴 조리기도 하였는데 의외성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가장 특이한 점 첫 번째는 일본장교 '가즈오'가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이다. 첫 번째 편지를 읽을 때만에도 부담스러웠다. 어떤 전개가 있을지 상상하지도 못한 채, 괜시리 불안감에 휩싸였다가, 점점 가즈오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이 드러나면서, 또다른 매력을 느끼게 된다. 두 번째는 새끼 제비이다. 다른 친구 제비들과는 달리 겨우내도 호랑이 마을에 머무르면서 이곳 저곳을 살피면서 책과 나를 더욱 하나로 묶어준다. 아주 조그마한 새끼 제비의 말주변에 반했다고 해야할까? 은근히 할머니가 동화책을 읽어주시는 그 풋풋하고 따스함 느낌이 절로 드는 것은 왜일까?
또한, 호랑이 마을 촌장 할아버지, 고아 '훌쩍이'와 순이가 잠시 맡아 키운 '샘물이' 그리고 호랑이 마을 사람들과 용이 아버지 '황 포수' 등등의 등장인물들이 한데 어울어지면서 또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책은 '용서'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나는 가슴 아픈 역사와 마주하는 또다른 태도를 배웠다. '용서'로 귀결될 수도 있겠지만, 기존의 편견과 싸우면서 인간적인 면에 매료되고 또 매료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도 아픈 역사이기에 한 웅큼의 눈물이 절로 난다. 그래서일까? 따스하고 애잔한 글의 분위기가 더욱 따스하게 느껴진다. 할머니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