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1 - 3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1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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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1(3부 3권)>의 이야기는 왠지 예전의 숱한 죽음과는 다른 또 다른 죽음의 그림자로 가득했다. 하지만 죽음은 또 다른 인물들과의 인연들로 얽히고설켜 있었다. 죽음이 드리운 우울과 암담한 이야기는 분명 아니었다. 애잔했던 죽음 뒤, 또 다른 많은 삶, 생이 옴팡지게 꿈틀거리고 있다. 세대의 교체, 시간의 흐름 속에 인물들의 성장과 다른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등장의 연속이었다. 각각의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비극이었다. 시대의 비극 속에서 개인의 삶 또한 비극적인 탓일까? 하지만 비극 속에 숨은 희극의 이야기들로 나는 분명 신났었다. 그럼에도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정리해볼까 한다.

 

은신하기 위해 평사리, 서희를 찾았던 이후, 종적을 감추었던 김환, 죽을 자리를 찾아온 것 같다는 말이 진정이 되었다. 이미 ‘마지막 동학군 김환 장군’이란 목차에서 불길한 예감을 할 수 있었는데, 그의 죽음 또한 금녀만큼 허망하고 참담하고, 그런데 또한 숭고하다고 할까? 왠지 내 주변 누군가의 비보같이 잠시 아찔해진다. 그만큼 드문드문 등장하지만 김환의 이야기는 베일 속에 감춰진 듯하여 항상 마음 한 구석을 무척이나 애달프게 하였고, 또한 그리운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아직도 많은 이야기가, 풀어놓을 이야기가 많은데 하는 순간, 또 다른 안타까움 죽음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하다. 김환처럼 봉순, 기화의 이야기가 그러했다. 언제 한 번 시원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본 적 없는 인물이었다. 항상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품게 하지만, 이내 들리는 것은 가슴을 메이게 하는 안타까운 소식뿐인 봉순이었다. 지난 10권에서 아편쟁이가 되었다는 소식 이후, 진주로 내려온 기화, 봉순의 이야기는 여전히 무엇인가 가슴 시리게 아픈 이야기였다. 기화를 향한 석이의 마음, 그리고 봉춘네에서의 석과 기화의 이야기를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코끝을 찡하게 하였다. 하지만 제대로 꽃 한 번 피지 못하고, 언제고 그리움의 성을 쌓다가 삶을 등진 것처럼 봉순, 기화의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애끓는 무언가가 묵직하게 가슴 속에 남은 듯하다.

 

그러고 보면 또 다른 인물이 세상을 등졌다. 이번에도 스스로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는 한 많은 사연을 풀어놓았다. 매번 안타까움 죽음의 언저리에 있던 인물 같은 복동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의 뒷이야기는 그 자체로 희극이었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이 치민다. 산다는 것이 통곡인 것만 같다. 오뉴월, 커가는 새끼를 먹이려고 야위어진 까치 생각을 한다.(85)’, ‘시뻘건 거짓말을, 밤새도록 얼마나 뜯어 맞추었던지, 사람들 뒷전에 서서 바라보고 있던 석이는 배창자를 움켜쥐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는다. 한편 진실에 가깝게 재주를 부리는 봉기 모습에 서글퍼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질 것도 같다. ....... 미워할 수가 없었다. 한철을 사는 나비가 부드러운 속잎을 찾아서 알을 까는 일이며, 파헤쳐진 흙더미 속에서 알을 먼저 피난시키는 개미며, 벌레 중에서 애벌레의 먹이가 되는 수컷이 있다던가. 석이는 문득 그 신비한 조화를 생각한다.(112) 두리를 향한 아비 봉기의 부정, 그리고 그 아비를 향한 아들 두식의 울부짖음은 그간의 봉기의 악행을 잠시 잊게 하였다. 그리고 최근 <디너>(헤르만 코흐, 은행나무 2012)라는 책을 읽으면서 살인을 감싸는 부모의 맹목적 사랑이 꽤나 불편했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모순될 수밖에 없는 어떤 선택의 진정성에 마음이 쓰라졌다. 그 불편한 기억의 이면의 내재된, 끙끙 앓을 수밖에 없으면서 헤아릴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게 한다.

 

임이네의 죽음은 10권의 마지막, 박에 예고되어 있었다. 용과 홍의 회상 속에서 그녀의 죽음을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낳아 준 어미 임이네에 대한 홍의 그간의 마음은 ‘죽음’을 계기로 해소되었고, 또한 혈연의 끈끈함의 다른 모습을 그려주었다.

 

<토지 12권>에도 이미 용의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 아~ 마음 한 구석이 벌써 시려오는데, 용이 죽음은 어떻게 그려질지 사뭇 기대 아닌 기대를 해본다. 그리고 아비의 죽음으로 홍의 삶을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궁금해진다. 한 번의 모진 고초 후에도 장이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한 차례 시련이 있었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내면에 커다란 파랑이 일렁이는 것 같은 느낌이기에, ‘그의 삶이 어떤 회오리바람을 타고 휩쓸리게 될까?’ 하는 호기심이 12권의 이야기를 내심 기대하게 한다.

 

이제야 <토지>라는 거대한 산의 능선 하나를 넘은 느낌이다. 계획한 것보다 다소 느린 걸음이었다. 과연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이야기꽃을 연신 피우며 진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토지> 속 많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깊어진 나’를 발견할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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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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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얼굴을 한 천사? 천사의 탈을 쓴 야수? 어쩌면 그 모든 것이 그의 진실한 모습일지 모른다. 진실은 때로 수많은 얼굴을 가졌으니까. 우리는 때에 따라, 장소에 딸, 이익에 따라 악인이기도 하고 천사이기도 하며, 교활한 사기꾼이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는 자이기도 하며, 간악한 밀고자이기도 하고 밀고의 희생자이기도 하지 않던가? 그 모든 얼굴이 거부하지 못할 우리들 자신의 진실인 것이다. (180)

 

1권을 읽으면서 이야기는 점점 고조되어갔다. ‘히라누마 도주, 윤동주’의 등장과 형무소 내의 일련의 어떤 변화가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하지만 그저 호기심만으로 글을 읽기에는 전쟁이 드리워진 시대의 암흑과 그와 더불어 식민지, 그 시대 조선인의 고통이 처절하고 암담할수록 오히려 외면하고 거부하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했다. 진실을 외면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외면하고 기억에서 지우고 살아왔다. 나치의 생체실험, 학살 등은 뇌리에 박혀있는데 일제에 의한 마루타, 학살 등은 기억 저편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었다. 윤동주의 이야기를 읽게 되면서, 후쿠오카 형무소를 기억했지만, 그곳에서 자행된 끔찍한 진실들을 결코 염두해 두지 않았다. 그저 살인자를 추적해가는 과정, 죄수들의 대규모 탈출 기도와 지하에 감춰진 어떤 사건에 대한 호기심만을 키웠다. 하지만 후쿠오카 형무소 내의 실제 했던 어떤 사실, 진실에 이제야 비로소 눈을 떴다. 이제야 ‘진실은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것’이란 명백한 진리가 폐부를 찌르듯 강렬하게 다가왔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신의 죄를 실토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더욱 뇌리 깊숙이 박혀 버린 진실, 그 뼈아프고 몸서리쳐지는 진실이 고개를 들었다.

 

<별을 스치는 바람 2>는 살인사건의 진실이 드러났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진실들에 깜짝 놀라며 내친걸음을 내달렸다. 악마 같은 간수 ‘스기야마’의 이면의 진실이 드러날수록 참혹한 시대의 더욱 투명해지는 듯하다. 식민지 시대의 억압이 여전히 우리 삶의 이면을 지배하고 있다는 울분 이외에도 전쟁의 무자비한 참상이 피부로 느껴졌다. 살인사건을 파헤쳐가는 어린 간수병 ‘유이치’가 악마처럼 변모해 전쟁의 피폐함을 온몸으로 증명하게 될까봐 조바심이 났었는데, 나의 우려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대의 고통을 대변하고, 그의 숱한 갈등과 고백으로 전쟁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시선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내가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애환을 느끼게 되었다.

 

“.... 스스로를 자책하다가 삶을 망쳐 버려선 안 돼. 우리는 살아남아야 해. 살아남아야 이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볼 수 있고, 더러운 시대에 침을 뱉을 수 있어. 명심해라. 살아남는 게 승리하는 거야. 시체는 결코 만세를 부를 수도 침을 뱉을 수도 없어.“(168)

 

가장 아름다운 건 살아 있는 거야. 더럽고, 참혹하고, 지옥 같은 이 세상에 살아남는 거지. 천사처럼 순수하고, 영웅처럼 용감하게 죽기보다는 악마처럼 악하고 야수처럼 비열하게라도 살아남아야 해. 악마처럼 간악하게 살아남아야 천사처럼 착하게 죽을 수 있으니까. 살아남아야 더러운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보고, 악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위안받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까. (180~181)

 

함부로 눈시울조차 붉힐 수가 없었다. 누구처럼 나 역시 울 자격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이치는 살아남아, 시대를 증명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소설로 재구성된 이야기를 통해 윤동주를,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밝혀졌다. 이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더 분명하게 울리는 하나의 외침이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죄’ 역시 분명한 유죄라는 것을.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란다. 문제는 To be, 즉 ‘가만히 있느냐?’ Not to be, ‘가만히 있지 않는냐’란다. 행동하느냐 행동하지 않느냐? 내게 하나의 숙제로 남았다. 가슴이 그간의 열기보다 더욱 뜨거워졌다. 자유를 향한 열정, 그리고 삶의 대한 뜨거운 의지, 지금 내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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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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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는 죄수들까지 변화시켰다. 욕지거리가 튀던 그들의 입에 웃음이 번졌다. 한 구절의 문장에 내일을 생각지 않던 자들이 살아서 나갈 날을 꼽았고, 싸움질을 일삼던 자들이 고분고분해졌다. ....... 그것이 글이 지닌 힘일지도 모른다고. 모든 변화는 글에서 시작되었다. 한 줄의 문장이 사람을 변하게 했고, 한 자의 단어가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다.“ (213)

 

 

보통은 ‘책소개’를 별로 읽지 않는 편이다. ‘작가’나 ‘책 제목’을 우선시하면서 시각적인 이미지에 의존해 읽고 싶은 책을 선별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역시 그러했다. “이정명”이란 작가 이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정명! 항상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작가 아닌가! 두말 하면 잔소리일까? 여하튼 그의 이야기, 허를 찌르는 반전 속 그가 풀어낸 이야기는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떤 이야기일지에 대한 궁금증보다 먼저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한 발 앞서 달려간다. 그렇게 <별을 스치는 바람>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스치듯 “윤동주 시인의 생애 마지막 1년”에 두 눈에 빛나는 별처럼 총총히 박혀 버렸다. 무심코 지나칠 뻔했던 책에 대한 소개, 화들짝 놀라며 더욱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고 조바심이 났다고 할까?

 

그런데 처음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예상 밖의 전개에 주인공 ‘윤동주’는 온데간데없었다. 낯선 상황들과 낯선 인물들에 거부감이 일었다. 폐전 후, 후쿠오카 형무소의 한 어린 간수병은 죄수가 되어 투옥되었다. 그리고 그의 회고로 시간을 거꾸로 흘러간다. 그리고 그가 떠올리는 한 사건 속 무자비한 형무소가 그려진다. 악마라 불리는 무자비하고 냉혈한 간수 ‘스기야마’의 의문의 죽음, 형무소 내 그의 죽음은 여러 의혹들을 남긴다. 형무소라는 밀폐된 공간 속 죄수가 아닌 간수의 죽음, 감방에 갇힌 죄수에 의한 살해? 많은 의혹과 궁금증이 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죽음의 진상을 파헤치는 것은 바로 얼마되지 않은, 어리숙한 어린 학병 출신의 간수병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죽은 ‘스기야마’보다도 더 잔혹하게 조선인들을 학대하면서 진실을 다그칠 것 같은 조바심이 일었다. 문학을 사랑했던 한 순수한 소년이 무자비하게 변모할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그렇게 조금은 거북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갔다.

 

그런데 죽은 ‘스기야마’를 둘러싼 엇갈린 진술과 그의 내면을 들여다본 유일한 사람, 645번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전혀 다른 궤도에 들어섰다. 흥미진진하게 이야기에 흠뻑 빨려드는 기분이었다. 휘황찬란한 별들의 대우주를 항해하는 것처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종일 주먹과 몽둥이를 휘두르는 도살자 ‘스기야마’가 시인이었다니? 그 변화의 원동력을 바로 죄수 '히라누마 도주'에게 찾을 수 있었다. 그 변화의 과정, 팽팽한 신경전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 긴장감이 넘처 흘르며 그 어떤 이야기보다 매력적이었다. 글을 통해 아귀 지옥의 형무소에 평화와 희망이 움트는 듯, 어떤 환희를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마치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처럼 연을 날리는 동주의 모습, 그 연을 바라보는 죄수들의 모습이 한 장면처럼 겹쳐졌다.

 

아직 파헤쳐질 이야기가 한 다발이다. 형무소를 둘러싼 충격적인 음모의 실체에 아직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였다. 충격적 비밀은 과연 무엇일지 마저 확인하진 못한 이야기는 내친걸음으로 내달릴 것이다.

<별을 스치는 바람> 꽤나 흥미진진한 이야기임에도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하게 짓눌리는 기분이다. 위대한 문학의 힘을 몸소 체험한 듯하지만, 그만큼 시대의 아픔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아름다운 시어들 속에 녹아 있는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다사로운 손길의 따스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절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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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을 위하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N을 위하여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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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전개가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N을 위하여>란 제목의 ‘N은 과연 누구일까?’하는 궁금증으로 시작하여, 이야기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책을 펼쳐들었다. 어떤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각각의 용의선상의 인물들의 심문과정, 각각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딱딱 맞아 떨어지는 사건의 진상들, 하지만 그 이야기 끝에 그 실체에 대해 입을 열겠다는 ’나‘의 존재가 호기심을 더욱 키웠다. 그리고 ’징역 10년에 처한다‘는 판결과 함께 사건 후 10년,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나‘란 존재는 ’그때로부터 10년이니 지났는데. 그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이 누굴 위해서 뭘 했는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진실을 모조리 알고 싶다. 그리고 알리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지, 어떤 이유, 살인사건의 실체, 미처 알지 못하는 그 사실들이 강렬한 마력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이 여름 한창 주가를 올리는 그 어떤 소설들의 ’끔찍함‘보다는 왠지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고, 공포감이나 두려움보다는 한결 가볍고, 편안한 즐거움들로 가득했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나를 희생해도 좋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슨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살인자가 될 수도 있다.’ 각자의 입장에서 그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도 좋다는 생각에 마음을 녹인 것일까? 아니면 살인자를 자처할 수도 있다는 그 굳은 결의-소설과 같은 허구의 문학 속에서만 가능한 판타지일지라도-가 그 'N'에 대한 호기심을 또한 더욱 자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지 6명에 불과한 등장인물들-스기시타, 안도, 나오코, 노구치, 나루세, 니시자키-의 이름들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그리고 1장을 읽으면서 ‘N 스기시타 노조미’만을 기억했다. 그것은 바로 'N'의 존재를 ‘스키시타 노조미’으로 착각하게 하였고 잠시 흐름을 놓치기도 하였다. 결국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모든 인물들의 이름(성을 포함하여)들이 ‘N'으로 지칭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야기는 다시 긴 여운을 남기며 다시 들쳐보고 싶게 만들었다.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만의 ’N'을 위하여 어떤 진실을 묻어두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거짓 속에 사실상의 거짓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자신만의 'N'을 위한 무리한 희생의 실체에 나름 경악하고, 놀라웠다.

 

현대 사회, 특히 일본은 ‘외톨이 천국’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저 일본의 단면만은 아닐 것이다. 혈연 등 모든 관계가 끊어진 ‘무연사회’, ‘고독사’과 같은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오늘날, 도쿄 고층빌딩들 속 ‘들장미 하우스’라는 작은 2층 목조건물에 살고 있는 대학생이자 취업준비생, 작가지망생의 세 인물들은 태풍을 계기로 함께 돈독하게 어울린다. 그리고 그 어떤 누군가를 위해 어떤 일을 모의하고 실천하면서 또 다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어린 시절 깊은 상처를 지닌 이들의 관계가 그 관계 자체만으로도 희망이 싹트고 아픔을 치유하게 된다. 그래서 목숨을 건, 생을 건 희생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이야기를 읽는 도중에 ‘궁극의 사랑은 죄를 공유하는 것’이란 뒤표지의 문구가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죄를 공유한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게 상대의 죄를 절반 짊어지는 것이다. 아무도, 그러니까 상대도 모르게 죄를 떠안고 아무 말 없이 떠나는 것이다.” 그렇게 각각의 인물들은 각자의 'N'을 위해서 아무도 모르게 죄를 떠안고 말없이 떠남으로써 자신만의 궁극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데 이는 최근에 즐겨 봤던 일본드라마 『마더』를 연상하게 하면서 훨씬 마음으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저 그들만의 궁극의 사랑이 과연 옳은지, 그렇게 극단의 방법으로 선택한 그들의 사랑이 진정 ‘N을 위한’ 사랑이었는지, 궁극엔 자신 자신만을 위한 또 다른 이기적 사랑은 아니었는지 의혹이 일면서 쉽게 옹호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각자의 입장에서 다시 사건을 파헤치면서 드러난 것처럼 끝없는 이기심과 욕망 그리고 집착 등의 삐뚤어지고 왜곡된 사랑에 비례하여 묵묵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누군가를 위하는 그 이면의 진정한 마음은 시나브로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저 ‘나만 아니면 돼’ 식의 이기심에 심한 균열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 주변의 많은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새삼스럽게 싹튼다고 할까?

 

<고백>이란 제목의 책이 낯설지는 않다. 이번에 만난 <N을 위하여>의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이라는데, 꽤나 궁금해진다. 그녀가 던진 ‘궁극의 사랑이 무엇인가?’란 화두가 신선했고, 고스란히 오늘의 현실을 반영한 배경들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꽤나 설득력 있고 매력적이었다. ‘섬뜩한 살인 사건’ 속 끔찍한 이야기보다는 네 명의 인물들이 이야기를 통해 퍼즐을 맞추듯 사건에 다가가는 과정 또한 흥미진진했다.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기분 좋은 에너지들이 내 주변을 맴도는 듯하다. 이제는 ‘미나토 가나에’의 다른 이야기 <고백>을 펼쳐볼 시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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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0 - 3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0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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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광복절에 <토지 10(3부 2권)>을 펼쳐들었다. 별다를 것 없는 주중의 휴일이란 생각이 훨씬 지배적이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등장인물들의 대화들 속에서 큰 가르침을 깨닫게 되었다. 광복의 의미를 그 어느 때보다 진정으로 가슴 깊이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서의돈’의 이야기는 정말 살이 되고 뼈가 되는 듯하다. 여전히 진행 중인 지난 과거의 역사에서 무관하게 살아오고, 가끔씩 들끊는 감상적 애국주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없던 내게,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그 시대의 아픔과 고뇌에 빠져들게 한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여러 등장인묻들, 그들 하나하나의 모습은 내 안의 다양한 모습들과 마주하게 한다.

 

별난 것도 없고 별나게 살아서도 안될 것이며 두드러지게 보여도 안될 것이었다. 세상은 살아가기 힘든 곳이지만 쉽게 살 수 없는 곳도 아닐 것이다. 뜨겁게 살 수 없다 하여 차갑게 살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사랑할 수 없다고 미움으로 살아도 아니될 것이다. 그러면은 지아비도 될 수 있는 것이요 아이아비도 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233-234)

 

책장을 덮고 나니, 홍이와 명희의 이야기가 가슴 절절하게 와 닿았다. 이번 <토지 10>에서는 명희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명희의 이야기고 끝을 맺고 있다. 과도기적 혼란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홍이와 명희, 그들의 갈등과 방황 그리고 그 삶이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애를 태웠다. 아비 ‘용’의 삶을 답습하는 것은 아닌지, 홍이 겪는 삶의 굴레, 그 방황이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 헌병대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결혼을 하고 아비가 된 홍, 하지만 젋디 젋은 시절의 아픈 실수로 다시금 수렁에 빠진 것은 아닌지, 앞으로의 홍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지고 궁금해진다. 상현을 남몰래 사랑했던 명희,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결혼의 모습은 정말 영혼 없이 무미건조한 박제품 같아 안타까웠고, 그러하기에 그녀의 이야기는 앞으로 어떻게 풀릴 것인지, 애잔하면서도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금녀’와 같은 안타까움이 아니길 소원하며 명희의 삶을 바라보고 싶다. 참으로 여전히 방황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현의 갈등과 고뇌에는 좀처럼 마음이 닿지 않는다. 언제까지 술에 의지하며 회피하고 도망치기만 할 것인지, 그의 아이를 낳은 봉선(기화)은 또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자초한 배처럼 그저 그렇게 인생을 떠다니기만 하는 듯해 마음을 졸이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앞으로의 이야기 속에서 상현과 봉선의 깊은 우울이 드리운 삶의 무게가 좀 더 가뿐해졌으면 좋겠다.

여전히 등장인물 모두는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듯, 애잔하고 애달팠다. 이번에는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아무런 이유도, 죄목도 없이 끌려가 헌병대에서 무진 고초를 당하는 사람들, 존재함으로써 온갖 삶의 핍박을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 관동대지진의 아귀 지옥같은 비극, 가족이 멀리 떨어져 그리움에 그리움의 성을 쌓아야하는 삶, 그 모든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절하게 아프게 와 닿았다. 그 어떤 이야기보다, 그 어떤 설명보다도 광복의 의미를 진정으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바로 <토지 10>인 듯하다.

 

“사람이란 눈빛 가지고, 찬밥 한 덩이 가지고도 평생의 우의를 맺을 수 있지만 황금을 쌓아도 친구가 못 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는 걸 알란 말이야. 잘난 체하지만 가진 자만큼 고독한 인간도 없는 게야. 하느님께서 공평히 주신 거를 더 가졌다면 분명히 빼앗긴 사람이 있을 터인즉 가난한 자는 슬프지만 탐욕에는 사랑이 없어.“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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