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0 - 3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나남출판) 10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8·15광복절에 <토지 10(3부 2권)>을 펼쳐들었다. 별다를 것 없는 주중의 휴일이란 생각이 훨씬 지배적이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등장인물들의 대화들 속에서 큰 가르침을 깨닫게 되었다. 광복의 의미를 그 어느 때보다 진정으로 가슴 깊이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서의돈’의 이야기는 정말 살이 되고 뼈가 되는 듯하다. 여전히 진행 중인 지난 과거의 역사에서 무관하게 살아오고, 가끔씩 들끊는 감상적 애국주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없던 내게,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그 시대의 아픔과 고뇌에 빠져들게 한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여러 등장인묻들, 그들 하나하나의 모습은 내 안의 다양한 모습들과 마주하게 한다.

 

별난 것도 없고 별나게 살아서도 안될 것이며 두드러지게 보여도 안될 것이었다. 세상은 살아가기 힘든 곳이지만 쉽게 살 수 없는 곳도 아닐 것이다. 뜨겁게 살 수 없다 하여 차갑게 살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사랑할 수 없다고 미움으로 살아도 아니될 것이다. 그러면은 지아비도 될 수 있는 것이요 아이아비도 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233-234)

 

책장을 덮고 나니, 홍이와 명희의 이야기가 가슴 절절하게 와 닿았다. 이번 <토지 10>에서는 명희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명희의 이야기고 끝을 맺고 있다. 과도기적 혼란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홍이와 명희, 그들의 갈등과 방황 그리고 그 삶이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애를 태웠다. 아비 ‘용’의 삶을 답습하는 것은 아닌지, 홍이 겪는 삶의 굴레, 그 방황이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 헌병대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결혼을 하고 아비가 된 홍, 하지만 젋디 젋은 시절의 아픈 실수로 다시금 수렁에 빠진 것은 아닌지, 앞으로의 홍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지고 궁금해진다. 상현을 남몰래 사랑했던 명희,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결혼의 모습은 정말 영혼 없이 무미건조한 박제품 같아 안타까웠고, 그러하기에 그녀의 이야기는 앞으로 어떻게 풀릴 것인지, 애잔하면서도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금녀’와 같은 안타까움이 아니길 소원하며 명희의 삶을 바라보고 싶다. 참으로 여전히 방황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현의 갈등과 고뇌에는 좀처럼 마음이 닿지 않는다. 언제까지 술에 의지하며 회피하고 도망치기만 할 것인지, 그의 아이를 낳은 봉선(기화)은 또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자초한 배처럼 그저 그렇게 인생을 떠다니기만 하는 듯해 마음을 졸이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앞으로의 이야기 속에서 상현과 봉선의 깊은 우울이 드리운 삶의 무게가 좀 더 가뿐해졌으면 좋겠다.

여전히 등장인물 모두는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듯, 애잔하고 애달팠다. 이번에는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아무런 이유도, 죄목도 없이 끌려가 헌병대에서 무진 고초를 당하는 사람들, 존재함으로써 온갖 삶의 핍박을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 관동대지진의 아귀 지옥같은 비극, 가족이 멀리 떨어져 그리움에 그리움의 성을 쌓아야하는 삶, 그 모든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절하게 아프게 와 닿았다. 그 어떤 이야기보다, 그 어떤 설명보다도 광복의 의미를 진정으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바로 <토지 10>인 듯하다.

 

“사람이란 눈빛 가지고, 찬밥 한 덩이 가지고도 평생의 우의를 맺을 수 있지만 황금을 쌓아도 친구가 못 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는 걸 알란 말이야. 잘난 체하지만 가진 자만큼 고독한 인간도 없는 게야. 하느님께서 공평히 주신 거를 더 가졌다면 분명히 빼앗긴 사람이 있을 터인즉 가난한 자는 슬프지만 탐욕에는 사랑이 없어.“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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