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김종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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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침몰로 슬픔에 젖은 이때, 즐겨 시청했던 예능 프로그램의 결방으로 ‘웃음’을 찾을 수 없었던 요즘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소설 <군대이야기>로 ‘웃음’ 금단 현상을 치유할 수 있었다고.

군대 이야기? 글쎄 들어도 금세 까먹기 일쑤다. 생소한 군대 이야기에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던질 순 있어도, 내심 어느 정도의 ‘허풍’과 ‘과장’을 전제하며 듣기에 들어도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것이 ‘군대’이야기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어찌 <군대 이야기>란 소설을 집어들었을까? 그건 군대이야기를 빙자하여 ‘지금 이 나라’를 ‘사유’하려 한다는 책소개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알 길 없는 ‘군대식 사고’, 그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도 이 책은 선택한 이유다. 그것이 한 순간 사그라지는 호기심일지라도 말이다.

 

<군대이야기>는 예상을 뒤엎고 접근 방식이 참신함으로 무장하고 있다. 소개팅, 첫 만남의 자리에서 소개팅녀 상큼은 다짜고짜 군대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그렇게 시작된 소개팅남 ‘판범’의 군대이야기! 1995~1997년의 군복무 기간 동안의 깨지고 개겼던 그의 군대 이야기는 듣는 이로 하여금 흥미진진함을 불러일으켰다. 분명 나는 읽지 않고 ‘들’었다. 그리고 군대의 역사(방위와 공익의 차이를 비롯한)와 체계(주특기, 작업과 삽질, )등등 지금껏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부분이 시원하게 풀리기도 하였다. 또한 국방부 불온서적에 대한 이야기 속 소설 또한 잊지 못할 것 같다.

 

경험이란 것이 없으니 ‘진짜’ 군대 이야기일까? 하는 의구심이 솟구치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속내만큼은 진실로 다가왔다. ‘판범’의 입을 통해 엿본 군대! 때론 모순과 부조리로 판을 치는 우리의 또 다른 얼굴인 냥 낯 뜨거워졌다. 또한 ‘군대’를 이야기를 통해 오늘의 현안을 건드리며, 단순한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수 없는 묵직한 한 방을 노리고 있다. 따끈따끈한 우리의 오늘 그리고 어제가 <군대 이야기>속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었다.

 

상황이 만들어낸 엉뚱함에 끊임없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 ‘재미’에 흠뻑 취해 연실 낄낄거렸다. 그런데 웃음 뒤에 찾아오는 씁쓸함이란 바로 ‘황당함을 재미’로 착각했던 어리석음 바로 그것이었다. 소설 표현 그대로 어이없는 것도 재미있는 것으로 착각(236)했기 때문이리다.

 

때로는 매서울 정도로 날카롭게, 때로는 넌지시 두루뭉술하게 우리의 ‘지금’을 ‘까’고 있는 <군대 이야기>는 처음의 약속과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마술과 환상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흥미로운 곳이 바로 군대(143)라고 저자는 말하지만, 전작 마술과 환상의 세계는 저자 ‘김종관’이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 그 자체였다. 해학과 풍자로 넘실대며 우리를 파헤칠 그의 또다른 이야기들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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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자고 우린 열일곱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2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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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못한 사고로 수많은 목숨이 한순간 거품처럼 사라져버린다. 오늘도 무고한 생명이 또 그렇게 사그라져버렸다. 그런데 예전과는 달리 그런 안타까운 소식에 금새 눈시울이 붉어진다. 남일 같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애끓는 마음들이 전파를 통해 내 살결로 온전히 전해지며 가슴을 쥐어짜며 눈물이 차오르게 한다. 그런데 그 애끎음과 애달픔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 바로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이다.

 

싱그러운 초록 기운이 넘실대는 표지와는 다르게,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은 1988년 3월 24일에 발생했던 '안양 그린힐 섬유 봉제 공장 화재 사건'을 다루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뉴스를 통해 접했던 무수했던 사건사고들이 떠오른다. 지금의 천안함을 비롯하여 대구지하철 방화사건, 군산 집단촌 화재사건, 부산 사격장 화재 사건 그리고 저자가 이야기하듯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열악한 환경 속 불의의 사고로 사그라진 생명들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닌 것이다. 또한 부당함을 따질 수 없는 분한 마음이 '어쩌자고'라는 이 한마디에 여실히 투영되어 있었다.

  

일단 소설 속 배경이 1988년이라는데 주목하게 되었다. 88 서울올림픽의 기념비적 의의를 한 겹 들쳐보면, 그 성장의 그늘 속에 가려진 우리의 음울한 시대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읽었던 소설 <나는 날고 싶다>(김종일, 어문학사, 2010)과 같은 1970년대의 낯선 풍경을 떠올려보기도 하면서 그 후 10년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지는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지 기대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한치도 다르지 않은 삶이 그대로였고 또한 그 여전함에 씁쓸해졌다. 

 

시대적 배경에 대한 사전지식을 제외하곤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이 풀어내고 있을 이야기는 염두해두지 않았다. 그래서 첫장을 펼치면서 어두운 그림자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가 무엇일지 끊임없이 흥미를 끌었다. 무엇인가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말을 하지 못하고 산송장처럼 되버린 주인공 순지, 그녀에게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녀가 겪고 있는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녀가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또한 '순지, 정애, 은영'이라는 순수하고 풋풋한 세 친구들의 이야기는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밝고 유쾌하게 그려져 예고된 불행을 잠시 잊고 하였다. '가시나'를 서슴없이 거친 입담, 서로에게 솔직하면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세 친구들의 모습이 전자공장과 봉제공장의 열악한 환경과 대조를 이루며, 당당하고 티없이 순수함에 훈훈해지다가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검붉은 불꽃'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다.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 속, 안타까움이 내 속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온전히 영상 속 하나의 사건사고에 그치지 않았던 그 사건사고의 실체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또한 이야기 속, 순지, 영은, 정애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바로 우리의 언니, 이모들이었던 것이다. 기억 속 명절 때의 풍경이 책 속에서 그대로 펼쳐진다. 바리바리 선물보따리 짋어지고, 꼬불꼬불 먼지 자욱한 비포장길을 몇 시간씩 달려왔던 우리들의 언니, 이모, 삼촌들의 모습이 말이다. 열악한 노동의 현장, 힘없는 노동자의 처지가 이야기 속에 그대로 살아, 그들이 겪었을 모진 세월이 여과없이 전혀지는 듯하다. 말문이 막히고 아픔을 소리내지 못한 채 몸으로 울부짖는 순지의 모습이 애잔했던 것일까? 왜 그리 눈물이 흐르는지, 마음이 쓰리고 아려 굵은 눈물 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 열일고 세 친구의 이야기는 긴 생명력을 가지며, 우리의 마음 속을 깊이 파고 들 것이다. 또한 저자의 바람처럼 사람을 먼저 귀하게 여기는 마음, 그 마음들이 발현되는 작은 노력과 실천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을 통해 좀더 따뜻하고 건강하게 자란 어린 친구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럼에도 생명이 움트는 그 싱그러운 표지의 느낌은 세친구들의 삶 속에서, 그리고 아픔을 딛고 용기를 내는 순지와 가족들에게서 되살아났다. 희망의 빛이 간질간질 우리의 마음속에서 움트듯이. 그렇게 청춘의 맑고 투명한 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또한, 푸른 친구들을 위해 저자 '이옥수'가 풀어낼 또다른 이야기들 역시 기다려진다. 어떤 이야기로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또 우리의 마음을 보듬어줄지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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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
박솔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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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좀처럼 알 수 없었던 '을'이란 제목과 여러 도형들로 형상화된 '을'의 표기가 눈길을 끌었다. 또한 출판사 '자음과모음'의 소설이란 점, 신인문학상 수상작이란 점이 <을>이란 소설이 '참신함'으로 무장한 듯 느껴지며 궁금증을 일으켰다. 표지 속 '집'과 원'의 형상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저자의 메시지에 대한 기대와 설렘를 감출 수 없었다.

또한 '민주'하고 불러주던 목소리가 있던 방, 그 방을 떠남으로 더 이상 '민주'일 수 없다는 문장은 존재와 관계, 소통이란 화두에 골몰하게 한다. 떠나는 민주와 남겨진 '을'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 것인지 첫장을 펼치자마자 강한 호기심으로 끌어당긴다.


책의 운을 떼자마자 '김춘수'의 <꽃>이란 시가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던 그의 실체 그리고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며 그의 꽃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이 책에서 되살아난다. 서로를 향한 눈빛, 손짓에서 느껴지는 다사로움이 그들만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듯했다. 하지만 어느새 존재의 애달픔은 파극으로 치닫고, 서로가 흔적없이 사라짐으로써 주체적인 관계와 소통이 아닌, 타인에 의한 '존재'의 확립, 그 의존성에 날선 칼날을 드리우는 듯하다.


소설 속은 타인과의 관계 정립식 따르게 되는 '신상'의 통과의례조차 생략되었다. 더불어 끊임없이 등장인물의 존재에 대해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존재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을! 아니 더나아가, 존재의 이미를 찾는 일조차 포기한 듯 무기력하고 자신에게조차 무관심한 듯 비쳐졌다. 그런데 나이와 성명이라는 기초적인 몇 개의 단서로 타인을 재단하는 섣부른 판단을 반성해본다. 스스로 쌓아 올린 타인에 대한 벽, 그 벽에 갇혀 소통하지 못하는 모습이 투영되면서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 침묵이 부르는 포근함, 아늑함으로 이야기는 승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공간으로 덩그러니 떨여진 듯한 고독, 쓸쓸함이 책 속에 스며있어, 두 극단이 맞부딪히고 있었다.

 

하염없이 고적한 길을 걷는 쓸쓸한 분위기가 감도는 <을>이었다. 비교적 차분하지만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가 압도적인 이야기다. 시간의 나열, 공간의 흐름들로 채워져, 잠시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저자는 여행 중에 이 소설을 썼다고 말한다. 저자가 글을 썼던 배경과 장기투숙이 가능한 어느 호텔이 주는 이미지가 하나가 되면서, 방랑자, 노마드적 현대인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여행 중에, 목적지가 있든 정처없이 무작정 나섰던 간에, 어느 길 위에서 흩어지고 뿌려지는 편린들이 한 권의 책이 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친다.

여행 중에 스치는 단상들, 그리고 홀로 자신과 마주하며 느끼게 되는 쓸쓸함과 적막함을 읊조리듯 귓가에 멤도는 <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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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첫 생각 - 잠든 나를 흔들어 깨우는
정우식 지음 / 다음생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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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에 주목했던 이유는 바로 ‘잠든 나를 흔들어 깨우는’이란 부제 때문이었다. 묵직하게 시작하는 하루, 나태함으로 아침이 솔직히 힘든 요즘이었다. 무거운 몸은 이불과 하나가 되어 좀처럼 분리될 줄 모르는 상황에서 아침잠을 단 번에 날려 주리라고, 그래서 상쾌한 아침햇살 같은 이야기에 대한 부푼 기대를 한껏 키우며 책을 펼쳤다.

 

저자 ‘정우식’, 그는 1년여간 매일 아침 인연이 닿았던 2000여분과 나누었던 ‘정우식의 토막생각’ 중에서 109편의 이야기를 추려 <잠든 나를 흔들어 깨우는 ‘하루 첫 생각’>이란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그리고 이 작은 이야기들 속에서 참나를 만나고 더 나아가 우리와 세상의 아침을 열며, 생명과 행복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참나’를 만나러 가는 길, 명상잠언집조차 일단을 내달려야 직성이 풀리는 조급함이 앞서 나 혼자 숨가팠다. 그러나 이내 숨고르기를 하며 진정 ‘참나’를 만나러 한적한 오솔길을 걷듯이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딛게 되었다. 대지의 숨결이 살아숨쉬는 새벽의 기운을 느끼듯,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 안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릴 수 잇는 호젓한 시간이었다.

 

아침의 버거움, 뇌 속 깊이 박힌 생각이 조금씩 변화의 물꼬를 튼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나를 ‘고르는’ 것(15)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법정 스님의 말씀과 하나가 되면서 좀더 당당하고 신나고 행복한 미래의 나를 ‘선택’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잡으며, 순간순간을 자각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운다. 찬찬히 곱씹으며 읊조리다 보면, 정신이 한결 맑아지는 느낌이다.

좋은 책이란 잠든 영혼을 단박에 깨우는 장군죽비요 내 마음을 비추는, 깨지지 않는 종이거울(85)이라는 말처럼 <하루 첫 생각>은 내게 장군죽비요, 티없이 맑은 종이거울이었다.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하루 첫 생각>은 아침의 힘겨운 사투 속 승리의 깃발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슴 뛰는 하루의 마법이 시작될 것이다.

 

첫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들 한다.

당연하다. 첫마음은 유지하는 것이 아니니까,

첫마음은 내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에 그 마음을 내는 것이다.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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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 여자, 당신이 기다려 온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1
노엘라 (Noella) 지음 / 나무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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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수:]의 신간에 항상 주목할 수밖에 없다. '감성'의 깊은 울림에 대한 기대치를 항상 충족시켜주면서, 또한 그 이상의 기대치를 갖게되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렇게 또,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이란 책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그림이 들릴까? 또한 어찌 음악이 보이는 것일까?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여자, 당신이 기라뎌 온'이란 부제와 새하얀 표지가 눈길을 '확~ '하니 사로잡는다.
 

'노엘라'라는 저자는 어린 시절 바이올린 하나 들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조금은 다르지만 낯선 땅,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의 감성이 나와 닮아, 그녀가 말하는 외로움, 홀로 울음을 삼킬 수밖에 없는 그리움과 온전히 스스로 버텨내야 하는 묵직한 삶의 무게에 공감하여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그녀에게 음악의 하나의 일상일 것이다. 그 일상에 그림과 글이 더해져 더 풍성하고 알찬 하루하루가 되고 있다는 것을, 예출의 총체가 하나로 어우러져 그녀의 삶, 내실을 살찌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과 미술 사이를 넘나들며 그녀가 풀어낸 이야기는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며, 턱없이 부족하던 음악과 미술의 공백을 메워주었다.

 

책을 통해 일련의 명화들을 만나면서 내 삶엔 자그마한 여백이 생겼다. 한결 부드럽고 풍성해지는 감성의 긍정적 효과는 더없이 이를 즐길 수 있도록 끊임없이 유혹하며 끌어당기고 있다. 우연히 그림을 읽어낸 이야기에 매료된 후, 소설(문학) 작품의 이미지가 그림 속에서 되살아나더니, 이번엔 음악과 그림! 점점 흥미를 더해가는 세계가 활짝 펼쳐졌다. 그렇게 음악과 그림이 한 권의 책에서 만났다. 음악계와 미술계의 평행 이론을 보는 것 같은 작가들의 면모와 그들을 하나로 묶어 풀어낸 저자 '노엘라'의 내공에 감탄하게 된다.  예술이라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서로에게 영감을 주며 상호작용하는 것이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이란 책 속에서 구체화되고, 뗄레야 뗄 수 없는 하나가 되었다. 또한 음악인이 읽어낸 그림 이야기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쉬우면서 다채롭고 흥미진진하였다.

 

여러 권의 책을 통해 만나왔던 많은 명화들, 때론 지나치기도 하였던, 같은 그림 속 다양한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흩어져 있었다. 그렇게 이미지로만 기억되던 그림들은 더욱 풍성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무장해제되어 있었다. 더 신선한 이야기, 더 충격적이고 명쾌한 이야기들이 한가득 담겨 있다. 또한 그 이야기들은 무한 호기심을 자극하며 그림 속으로 무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동시에,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 없었던 퍼즐 한 조각 한 조각들을 찾아내고, 마침내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는 느낌이었다.

특히 '쉬잔 발라동'이란 화가가 인상적이었다. 르누아르의 작품 속 사랑스러운 여인(너무도 눈에 익은 그림이었다)과 로트레크의 작품 속 추레한 여인의 그림을 소개하면서 그림 속 여인이 동일인물, 바로 '쉬잔 발라동'이란 이야기는 정신을 번뜩이게 하였다. 더불어 타인에게 보여지는 가공된 모습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참나'의 모습을 그려보게 하였다.

 

화가의 삶과 일련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한 예술가, 아니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로 삶을 더욱 면밀하게 드려다볼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한 음악가의 삶과 비유되면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그 삶에 덧붙여진 저자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는 살이 되어 나에게 전이되었다. 위대한 예술가들과 우리 모두가 하나인 느낌은 스스로를 깊이 이해하고 어루만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삶이 더욱 농밀해지며 그 어느때보다 마음이 단단하게 야물어진 느낌이겠다.  음악과 그림으로 풀어낸 저자의 외로움과 상처에 마음을 투영하다보니, 저절로 위로받게 된다. 스스로를 토닥토닥거리며 견디었을 수많은 시간, 때론 스스로를 연극 무대의 배우라 여기며 위로했은 시간들의 실체가 내게 와 닿으며 지난 시간의 상처들이 여과되었다. 

 

순백의 표지는 수많은 그림의 바탕을 이루며, 더욱 빛나는 그림을 완성하듯, 그렇게 우리들의 삶도 빛나고 있음을 책을 통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그녀의 이야기에 더욱 공감하며 의지하다보니, 어느새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의 환희에 빠져드는 듯, 손으로 전해지는 야들야들한 감성에 온몸과 마음이 촉촉하고 훈훈해진다. 단연하건대, '지친 마음이 잠시 쉬어가는 멜로디가 흐르는 미술관' 하나가 우리 곁으로 한 걸을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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