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자고 우린 열일곱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2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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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못한 사고로 수많은 목숨이 한순간 거품처럼 사라져버린다. 오늘도 무고한 생명이 또 그렇게 사그라져버렸다. 그런데 예전과는 달리 그런 안타까운 소식에 금새 눈시울이 붉어진다. 남일 같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애끓는 마음들이 전파를 통해 내 살결로 온전히 전해지며 가슴을 쥐어짜며 눈물이 차오르게 한다. 그런데 그 애끎음과 애달픔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 바로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이다.

 

싱그러운 초록 기운이 넘실대는 표지와는 다르게,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은 1988년 3월 24일에 발생했던 '안양 그린힐 섬유 봉제 공장 화재 사건'을 다루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뉴스를 통해 접했던 무수했던 사건사고들이 떠오른다. 지금의 천안함을 비롯하여 대구지하철 방화사건, 군산 집단촌 화재사건, 부산 사격장 화재 사건 그리고 저자가 이야기하듯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열악한 환경 속 불의의 사고로 사그라진 생명들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닌 것이다. 또한 부당함을 따질 수 없는 분한 마음이 '어쩌자고'라는 이 한마디에 여실히 투영되어 있었다.

  

일단 소설 속 배경이 1988년이라는데 주목하게 되었다. 88 서울올림픽의 기념비적 의의를 한 겹 들쳐보면, 그 성장의 그늘 속에 가려진 우리의 음울한 시대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읽었던 소설 <나는 날고 싶다>(김종일, 어문학사, 2010)과 같은 1970년대의 낯선 풍경을 떠올려보기도 하면서 그 후 10년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지는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지 기대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한치도 다르지 않은 삶이 그대로였고 또한 그 여전함에 씁쓸해졌다. 

 

시대적 배경에 대한 사전지식을 제외하곤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이 풀어내고 있을 이야기는 염두해두지 않았다. 그래서 첫장을 펼치면서 어두운 그림자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가 무엇일지 끊임없이 흥미를 끌었다. 무엇인가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졌다. 말을 하지 못하고 산송장처럼 되버린 주인공 순지, 그녀에게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녀가 겪고 있는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녀가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또한 '순지, 정애, 은영'이라는 순수하고 풋풋한 세 친구들의 이야기는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밝고 유쾌하게 그려져 예고된 불행을 잠시 잊고 하였다. '가시나'를 서슴없이 거친 입담, 서로에게 솔직하면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세 친구들의 모습이 전자공장과 봉제공장의 열악한 환경과 대조를 이루며, 당당하고 티없이 순수함에 훈훈해지다가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검붉은 불꽃'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다.

 

<어쩌자고 우린 열일곱> 속, 안타까움이 내 속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온전히 영상 속 하나의 사건사고에 그치지 않았던 그 사건사고의 실체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또한 이야기 속, 순지, 영은, 정애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바로 우리의 언니, 이모들이었던 것이다. 기억 속 명절 때의 풍경이 책 속에서 그대로 펼쳐진다. 바리바리 선물보따리 짋어지고, 꼬불꼬불 먼지 자욱한 비포장길을 몇 시간씩 달려왔던 우리들의 언니, 이모, 삼촌들의 모습이 말이다. 열악한 노동의 현장, 힘없는 노동자의 처지가 이야기 속에 그대로 살아, 그들이 겪었을 모진 세월이 여과없이 전혀지는 듯하다. 말문이 막히고 아픔을 소리내지 못한 채 몸으로 울부짖는 순지의 모습이 애잔했던 것일까? 왜 그리 눈물이 흐르는지, 마음이 쓰리고 아려 굵은 눈물 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 열일고 세 친구의 이야기는 긴 생명력을 가지며, 우리의 마음 속을 깊이 파고 들 것이다. 또한 저자의 바람처럼 사람을 먼저 귀하게 여기는 마음, 그 마음들이 발현되는 작은 노력과 실천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을 통해 좀더 따뜻하고 건강하게 자란 어린 친구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럼에도 생명이 움트는 그 싱그러운 표지의 느낌은 세친구들의 삶 속에서, 그리고 아픔을 딛고 용기를 내는 순지와 가족들에게서 되살아났다. 희망의 빛이 간질간질 우리의 마음속에서 움트듯이. 그렇게 청춘의 맑고 투명한 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또한, 푸른 친구들을 위해 저자 '이옥수'가 풀어낼 또다른 이야기들 역시 기다려진다. 어떤 이야기로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또 우리의 마음을 보듬어줄지 앞으로의 이야기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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