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작
박솔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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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좀처럼 알 수 없었던 '을'이란 제목과 여러 도형들로 형상화된 '을'의 표기가 눈길을 끌었다. 또한 출판사 '자음과모음'의 소설이란 점, 신인문학상 수상작이란 점이 <을>이란 소설이 '참신함'으로 무장한 듯 느껴지며 궁금증을 일으켰다. 표지 속 '집'과 원'의 형상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저자의 메시지에 대한 기대와 설렘를 감출 수 없었다.

또한 '민주'하고 불러주던 목소리가 있던 방, 그 방을 떠남으로 더 이상 '민주'일 수 없다는 문장은 존재와 관계, 소통이란 화두에 골몰하게 한다. 떠나는 민주와 남겨진 '을'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 것인지 첫장을 펼치자마자 강한 호기심으로 끌어당긴다.


책의 운을 떼자마자 '김춘수'의 <꽃>이란 시가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던 그의 실체 그리고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며 그의 꽃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이 책에서 되살아난다. 서로를 향한 눈빛, 손짓에서 느껴지는 다사로움이 그들만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듯했다. 하지만 어느새 존재의 애달픔은 파극으로 치닫고, 서로가 흔적없이 사라짐으로써 주체적인 관계와 소통이 아닌, 타인에 의한 '존재'의 확립, 그 의존성에 날선 칼날을 드리우는 듯하다.


소설 속은 타인과의 관계 정립식 따르게 되는 '신상'의 통과의례조차 생략되었다. 더불어 끊임없이 등장인물의 존재에 대해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존재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을! 아니 더나아가, 존재의 이미를 찾는 일조차 포기한 듯 무기력하고 자신에게조차 무관심한 듯 비쳐졌다. 그런데 나이와 성명이라는 기초적인 몇 개의 단서로 타인을 재단하는 섣부른 판단을 반성해본다. 스스로 쌓아 올린 타인에 대한 벽, 그 벽에 갇혀 소통하지 못하는 모습이 투영되면서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 침묵이 부르는 포근함, 아늑함으로 이야기는 승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공간으로 덩그러니 떨여진 듯한 고독, 쓸쓸함이 책 속에 스며있어, 두 극단이 맞부딪히고 있었다.

 

하염없이 고적한 길을 걷는 쓸쓸한 분위기가 감도는 <을>이었다. 비교적 차분하지만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가 압도적인 이야기다. 시간의 나열, 공간의 흐름들로 채워져, 잠시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저자는 여행 중에 이 소설을 썼다고 말한다. 저자가 글을 썼던 배경과 장기투숙이 가능한 어느 호텔이 주는 이미지가 하나가 되면서, 방랑자, 노마드적 현대인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여행 중에, 목적지가 있든 정처없이 무작정 나섰던 간에, 어느 길 위에서 흩어지고 뿌려지는 편린들이 한 권의 책이 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친다.

여행 중에 스치는 단상들, 그리고 홀로 자신과 마주하며 느끼게 되는 쓸쓸함과 적막함을 읊조리듯 귓가에 멤도는 <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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