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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재미와 감동을 온전히 말로 전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소화가 덜 되었기 때문이라. 머릿속 어딘가에 담아두거나 또는 서재에 꽂아두고 세월 속에서 되새김질 하며 숙성시켜야 하는 종류의 책이 있다면, 이 책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 다 먹기 전이라도, 먹고 나서 어떤 맛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어도, 이건 확실히 “맛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음식이 있듯, 이 책 역시 그러한 책이다. 오랜만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책을 만난 지라 더욱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에서 출간된 것이 1994년이니 거의 20년이 흘렀는데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자극을 준다. 이 책은 철학에세이다. 하나의 주제를 짧은 분량에 수필적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목적과 내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저자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열쇠-개념’들은 한정되어 있다고 전제하며, 자신만의 사유의 범주로 116개의 ‘열쇠-개념(key concept)'를 제시한다. 이 ‘열쇠-개념’은 음과 양처럼 하나의 개념이 다른 개념과 짝을 이루고 있으니, 58개의 ‘짝-열쇠-개념’으로 정리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것은 이 세상을 사유하는 도구로 58개의 ‘짝-열쇠-개념’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조금 과하게 해석한 것일 수는 있으나, 오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책을 읽기에 앞서 자신이 세상을 사유하는 도구는 무엇인가를 점검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거칠게는 ‘선과 악’으로 세상을 나누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음양오행으로 만물의 이치를 꿰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질문에 대한 저자 나름의 대답인 것이니, 책이 비록 에세이 형식을 빌리고 있으나 저자로서도 그리 녹록한 기획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내내 즐거우면서도 불편한 간극이 생겨난다.
일단 이 책은 술술 읽힌다. 술술 읽히기엔 멈칫거리며 사유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꽤 있고, 백과사전처럼 새롭게 알게 되는 지식과 정보들이 툭툭 튀어 나오지만, 예의 프랑스 철학처럼 글이 꼬여 있지 않다. 오히려 문학적 글쓰기의 능한 작가의 내공 덕분에 꽤나 두뇌를 쓰게 만들면서도 술술 읽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열쇠-개념’들도 ‘남자와 여자’, ‘사랑과 우정’, ‘웃음과 눈물’, ‘고양이와 개’, ‘포크와 스푼’, ‘신과 악마’처럼 일상적이고, 자주 이야기되는 것들이다. 진중권이나 문화철학자 김용석의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 역시 맘에 들어 할 것이다. 다만, 둘의 책이 분량과 밀도에서 좀 더 묵직한 스트레이트라면, 이 책은 에세이라는 형식 탓에 분량과 밀도에서 확실히 잽이라는 느낌이다.
그래서 불편한 간극이 생겨난다. 저자가 쉴 새 없이 잽을 날리며 우리의 사유를 툭툭 건드리지만(물론 잽도 계속 맞다보면 휘청거릴 수 있겠지만), 결코 스트레이트나 어퍼컷을 날리지는 않는다. 116개의 ‘열쇠-개념’이 저자 나름대로 세상을 사유하는 ‘골든 키’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키에 대한 글들이 농밀한 사유나 논리적 전개과정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철학적 주제라고 해서 논리적 글쓰기의 관점에서 보면 한 마디로 충분치 않다. 대신 문학적 글쓰기를 통해 사유와 정보를 좀 더 자유롭게 변주하고 구성해 내기에 즐겁운 책읽기가 가능해진다. 읽는 사람의 성향 또는 목적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질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스타일은 충분히 멋진데, 저자의 의도에 이런 스타일이 최선인지는 개인적으로는 좀 더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글에서 빠져나와 116개의 ‘열쇠-개념(key concept)’/‘58개의 ‘짝-열쇠-개념’으로 전체를 조망하노라면, 작가가 이런 에세이 형식으로 자신의 거대한 기획을 실현하려고 했던 저의를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혼란의 시대에 코미디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 처럼, 조금은 읽기에 수월한 글들이 대중들에게 좀 더 환영받을 수 있을테니, 책으로선 이 쪽의 운명이 좀 더 나은건지도 모를 일이다.
* 이 책은 98년에 국내의 한 출판사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110가지 개념」이라는 제목으로 내 놓았던 책을 다시 내 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 참고로 이 책은 116개의 ‘열쇠-개념’을 담고 있는데 비해, 과거의 책은 110가지 개념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책에서 2개의 개념을 짝으로 하나의 글을 쓰고 있으므로, 6개라면 3개의 글이 그 때 누락됐거나/아님 새롭게 추가된 것일 텐데. 저간의 사정을 알 수 없으나 좀 더 제대로 된 역본으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감사한다.
** ‘그런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이런 부제는 책의 가치를 오히려 깎아내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으로 남는다. 이 책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적어도 열에 일곱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이 책의 가치는 상관없이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