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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인의 반란자들 - 노벨문학상 작가들과의 대화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 킴 만레사 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16인의 반란자들’이란 제목으로 노벨문학상 작가들의 사진과 인터뷰 담은 책이다. 한 명의 인터뷰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16명을 모아놓았으니 문학에 큰 관심이 없다한들 어찌 이런 책을 어찌 놓칠 수 있으랴. 하지만 작가들의 면면을 보니 익숙한 작가들도 여럿이지만, 생소한 작가들도 여럿 보인다.
이 책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작품 하나하나에 주목하기 보단 그들의 세계관에 관심을 가진다. 그들의 인생을 통해, 문학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어가며, 이루어가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들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 진실을 추구하려 하지만, 그것은 때론 그 땅의 기득권과 주류의 신경을 건드리는 일이기도 하다.
오르한 파묵은 『이스탄불』을 통해 아르메니아인과 쿠르드인 대학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스탄불의 터키화는 폭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국가는 일종의 인종 청소를 수행함으로써 이 도시에서 모든 언어들의 소리가 잦아들도록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유의 상징이 되었지만, 터키 극우민족주의자들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월레 소잉카는 자국의 진정한 민주주의의 결여를, 정부와 측근들만 배를 채우는 석유사업과 도처에서 벌어지는 근본주의자들 간의 분쟁을 가차 없이 비판한다. 그는 대중의 우상이자 나이지리아의 만델라로 불린다. 그는 자국의 평화를 꿈꾸며, 니제르 델타 지역의 석유자원 통제를 놓고 투쟁하는 게릴라들과 정부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며, 검은 황금으로 축적한 부의 재분배를 주장하고 있다.
왜소하지만 강단 있는 나단 고디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헤이트’에 맞서 투쟁했고, 승리했다. 가오 싱젠은 중국의 속을 들춰냄으로써 더 이상 중국에 갈 수 없는 처지이다. 나기브 마푸즈는 이집트에서 일고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 열풍에 맞서고 있으며, 오래전에 괴한에게 당한 피습으로 눈이 멀고 귀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고나서 몇 개월 후 죽었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독창적이다. 그들은 문학과 일관성에 대한 완전한 신앙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혹은 인도적인 이유로 현실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의 작품은 언어의 보편성을 획득하면서 이 사회에서 주도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그들은 정치적 신념을 넘어, 예술가로서의 마지막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반란자들이라는 제목처럼 세계적으로, 문학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녀도, 나고 자란 땅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모습들을 본다. 예술이란 현실을 전복하는 일이기도 하니, 어쩌면 예술가들의 숙명일 수도 있을 테다.
‘나는 도망자일 뿐, 영웅이 아니라’는 가오 싱젠은 말한다. “나는 좌파니 우파니 하는 우스꽝스러운 차별성 너머에 존재한다. 나는 권력의 한계에 대항하는 메커니즘으로 형성된 시스템을 믿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급진적인 정치혐오주의자일 것이다. 어떤 ‘이즘’이 없이 산다는 것, 그게 바로 나의 저항의 형태이다.”
노벨상 수상 이후에 자서전을 통해 나치 전력을 고백해 한동안 소란스러웠던 귄터 그라스의 인터뷰도 기억에 남는다. “치명적인 트라우마까지,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그는 실제로 가족들의 아픈 기억마저 작품에 남긴다. 용기랄까, 솔직함이랄까. 그렇기에 과거의 기억을 자신의 문학적 원천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독일에서 우리는 정치가나 역사가 같은 유명인사들이 주기적으로 하는 말을 듣는다. ‘자,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페이지는 넘기도록 합시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과거는 항상 되돌아온다. 모든 대학살과 전체주의 체제에 의해 저질러졌던 그 야만성과 함께.”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사실 그의 작품을 읽어본 건 ‘살아남의 자의 슬픔’이라는 단편소설뿐이다. 하지만 삶과 죽음, 남거나 떠나거나 하는 어떤 고비와 경계의 순간마다 곱씹게 되는 장면이자 문구이기도 해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작가로서의 첫 자극제는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의 소리 없는 고통을 자극하고 설명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오늘날 인간의 고통을 표현하는 전문가다. 그리고 일본 사회에서 천황제 등에 반대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개인의 실체를 옹호한다.” 야스쿠니 신사의 극우민족주의에 맞선 채, 아사쿠사 사원이 상징하는 개개인의 종교성을 지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인터뷰보다 먼저 사진이 중심이 되는 기획되었다는 말을 들어서 사진에 대한 기대가 많았었다. 작가들이 전문 모델이 아니고, 거동이 편치 않은 이들도 여럿이니 사진작가도 자신의 생각대로 구도를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 생각은 들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하지만 사진은 조금 아쉽다. 그리고 아무래도 작가들이다 보니 메타포로 손 사진을 공통적으로 찍은 것 같은데, 너무 구태의연한 테마가 아니었을까 싶다. 차라리 각자가 작품을 쓸 때 사용하는 필기구(만년필, 타자기, 컴퓨터 등)을 매치했으면 좀 더 각자의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흑백을 택한 것인지도 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들이 좀 낯설다면 당연히 내용도 낯선 점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라고 해도 주로 미국과 서유럽, 동아시아에 관련된 뉴스만을 접하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미와 아프리카, 동유럽 등 세계인으로서의 감수성을 좀 더 균형 있게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