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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하는 시간 - "삶이 힘드냐고 일상이 물었다."
김혜련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7월
평점 :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밥 하는 시간이라니, 이 시간은 나에겐 부정적인 상황인데 작가는 어떨까. 느낌으로는 밥 하는 시간이라는 제목이 작가에게는 부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난 어렸을 때에는 엄마가 밥을 해줬고, 대학교 다닐 때에는 내가 밥을 해 먹었고(물론 거의 밖에서 먹었지만.), 그리고 직장을 다닐 때엔 직장에서 먹고, 결혼을 하고 나서는 내가 밥을 하는 횟수가 늘었다. 지금은 아이를 보며 집에 있기 때문에 밥을 하는 일이 내 삶에서 최고인 시점이다. 나는 밥을 하는, 요리를 하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어진 시간에 얼마나 빨리 만들고 얼마나 빨리 치우냐는 것이다. 밥 한끼에 대한 나의 인식이 어떤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생각이다. 식재료에 대한 이해도 없고, 요리에 소질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밥을 할래? 설거지를 할래? 라고 묻는다면 나는 고민없이 설거지를 택한다. 밥하는 일이 나에겐 즐겁지 않다. 아이 때문에 겨우 밥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p.19
"내가 하는 일이 곧 내 자신이다.를 집을 통해 알았다. 집을 청소하는 일이 나를 맑게 하는 일이고, 집의 고요가 나의 고요이며, 집을 아름답게 하는 일이 나를 아름답게 하는 일임을 경험으로 체득한다."
작가는 이혼을 하고 아이와 떨어지게 되는 상황, 건강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서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내가 나의 몸을 돌보지 못했음에 대해 발견하고 삶의 방향을 다시 정하게 된다. 나 또한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하고 있는 모든 일이 너무 하찮게 느껴졌다. 그래서 바로 슬럼프가 왔고 온 가족이 힘들었다.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작가는 내가 하는 일이 곧 내 자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해야한다고 말한다.
p. 54
내 삶의 과제는 다른 아닌 밥을 하고 몸을 돌보는 일상의 사소한 일. 아무것도 아닌 일을 의식을 치르듯 경건하게 해내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밥 한끼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지에 대해서 알게 된다. 밥 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도. 내 스스로 밥 하는 일에 대한 가치가 낮기 때문에 그 행위도 의미가 없는 일이 되고, 발전하지 않으며, 노력하지 않았다. 한끼 때우는 것에 급급해서. 오히려 혼자 밥을 먹을 때 식탁은 가장 초라해 진다. 밥 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이 은은하게 다가온다.
나는 시골에서 사는 삶을 꿈꾼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나는 그렇다. 그리고 남편도 마찬가지고.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시골로 내려가 빡빡한 학교가 아닌 작은 시골학교에서 자유롭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뭐 해 먹을 거냐고 물으면 집 앞마당에 작은 텃밭을 만들어 작은 농사를 짓고 싶다고 말하고, 자급자족의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해보지도 않고 쉽게 말한 말들이 이 책에서는 실제로 일어난다. 밥 한끼 만드는 일도 의미가 없는데, 시골에 내려가 사는 일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일인지에 대해 새롭게 느꼈다. 작가는 모든 걸 하나하나 이뤄간다. 그러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또한 사람들과 연대한다. 자신을 챙기고, 자신이 하는 일을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p.118
밋밋한 행위에서 빛을 느끼지 못한다면 삶에 빛이 들어오기는 어렵다. 삶의 90페센트는 그런 밋밋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지층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까? 당분간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 집안일을 해야한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지나갔지만 내 마음 속에는 아직도 피해자의 느낌이 있다. 이 느낌을 더 지울 수는 없을까?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해 밋밋하다고 해도 의미를 부여하고 즐겁게 할 수 없을까? 이건 오로지 나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느낀다. 작가의 글에서 용기를 얻어 한 번 해보자. 내 삶이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읽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 시기가 있었기에 이 책에 나에게 더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일상을 자신의 언어로 쭉 써내려간 책이지만 기존의 에세이처럼 설렁설렁 읽혀지지 않는다. 뭔가 깊은 뜻을 찾아내며 읽어야 한다. 난 이런 책이 좋다. 쉬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책은, 육아로 인해 자신을 포기했던(포기했다고 생각한) 아이 엄마들, 자연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 무언가에 지쳐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