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가이드북 - 삶을 여행하는 초심자를 위한
최준식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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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출판사를 신뢰한다.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읽는 건 이번이 두 번째인데, 첫번째는 '밥하는 여자' 라는 책이었다. 책이 좋았는데, 이번 책도 보니 서울셀렉션 출판사의 책이었다. 괜찮겠구나 싶었다.


요즘 죽음은 나에게 초미의 관심사다. 나는 30대 후반 일반적인 여성이다.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한다. 4살짜리 여자아이를 보면서 말이다. 사실은, 죽지 않기를 원한다. 이 아이가 크는 걸 계속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건강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내 사람은 언젠가 죽는 다는 것, 죽음은 내가 정할 수 없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은 처음 봤을 때 '어렵겠다' 라는 생각을 했는데 읽을수록 재미가 있었다. 저자는 죽음을 연구하는 여러 사람을 소개하며 그 사람의 말이나 책을 인용하여 주제를 나누고 있다. 쭉 읽어 나가면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하는지도.


사실,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을 정도로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p.040

자연을 따라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 장자의 말이 이해는 됩니다.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있지요.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정말 몇이나 될까? 죽음 앞에서 두려움이 어쩔 줄 몰라하지 않고, '그래. 너 왔구나, 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능한 일이기나 할까? 죽음의 모습은 너무나 다양해서, 두려움 조차 없이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고, 갑자기 선고를 받아 살아갈 날이 몇 달 남지 않을 수도 있고, 아니면 언제 죽을지 모른 채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 처럼 어떻게 죽을지 모르기도 하니까. 죽음이라는 건 참 이상하다. 경험해보지 않았는데 왜 두려울까? 그건 내가 삶에 집착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p.048

나이 사십이 넘으면 천천히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해 나중에 죽음이 임박했을 때 허둥지둥하지 말게


원불교 교전에 있는 내용을 저자가 알려주고 있다. 준비하는 죽음이라는 건 정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죽음이란 피해야하는 것, 두려운 것, 나에게 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과연 어떻게 준비하는 것일까? 어디서도 알려주지 않은, 이건 내가 찾아가야하는 것이라서 그런가.


p.052

그렇게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자신을 용서한 다음, 정말로 최후의 순간이 오면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한 생각에 집중하라고 권합니다.


역시 집착이었다. 삶에 대한 집착 그리고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미련. 생각해봤다. 누구를 용서해야하고, 누구에게 용서를 구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아마 죽음에 대한 준비라는 건 삶에 대한 집착을 하나씩 해결하는 것일 거다. 내가 당장 내일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내 머리 속에 생각나는 것들을 해결하라는 말이다.


p.063

우리는 평생 돈이나 쾌락, 명예만 쫓으면서 본질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삽니다. 죽음이 가까워져 오면 그런 세상사가 모두 덧없음을 깨닫게 되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깊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현실에서 우리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돈이나 쾌락, 명예를 쫓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도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하라는 거다. 예를 들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건강을 잃으면 쓸모가 없다거나, 돈을 아무리 벌어도 죽을 때는 가져갈 수 없다거나. 이런 뜻인 것 같다. 하지만 쉽지 않다. 현실은 그렇게 여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써도 모자랄 판인데, 어찌 여유롭게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p.070

또한 일반적인 제사는 지내지 말라. 어느 집이나 며느리 되는 사람의 노고가 너무 크다. 기일 아침에 각자의 집에서 내 사진과 꽃 한송이 꽂아놓고 묵념 추도로 대신하기 바란다. 그리고 저녁에 음식점에 모여 형제간의 우의를 다지는 기회로 삼아라. 식비는 돌아가면서 내도록 하여라. 그리고 이러한 추도도 너희들 일대로 끝내기 바란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KSS 해운 창업자의 유언 중의 일부인데, 정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나의 유언에도 이것과 비슷하게 넣어질 것 같다. 사진과 꽃 한송이를 놓고 묵념 추도라, 그리고 가족들과 저녁식사. 그 날이 평일이냐 주말이냐, 산소에 갈거나 안 갈거냐, 같이 할 수 있냐, 없냐..... 여러 가지 현실에서 우왕좌왕한다. 내년부터는 기일 당일에 아침에 사진 앞에 꽃 한송이 그리고 저녁에 가족식사를 꼭 지켜보도록 하겠다.


인상적인 건, 사후 세계를 체험한 이들은 사후세계가 현실세계와 다를 게 없다고 이야기한다는 거다. 도박을 하던 사람이 죽고 나서도 도박을 하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말한다. 현실세계에서 잘 살아야 한다고 그래야 사후세계도 편할 수 있다고. 천국과 지옥도 마찬가지의 패턴이다. 우리는 지금 잘 살아야 한다. 그래야 죽음 이후에도 편안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나는 종교적인 신념으로 사후세계를 믿는다. 그리고 믿고 싶다. 꿈에도 나오지 않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자는 사후세계를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이 이야기를 한다. 여기에 써 있는 걸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읽는 사람의 몫이라고 여러 번 말한다. 하지만 사후세계와 상관없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준비해야한다는 건 강조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죽음에 대한 공부는 현재의 삶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 성장시킨다.


30대 후반 그리고 40대에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40대부터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 저자의 말처럼. 그리고 생명과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들도 꼭 읽었으면 좋겠다. 나의 죽음 뿐 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으니까.  아, 그리고 죽음에 대한 저자의 어마어마한 지식의 양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여행이 끝날 날을, 우리의 소풍이 끝날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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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kinseoul 2022-03-17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저희 서울셀렉션 출판사 네이버 블로그에 출처 밝히고 올리겠습니다. 혹 불편하시면 말씀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