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어버이날 아침 출근길에 부모님께 문자를 보냈다.
감정 표현이 늘 서툰 나는 뭐라 그럴싸하게 할 말이 없어서
그냥 간단한 인사치레에 가까운 말을 했다.
잠시 후 아빠한테서 "사랑하는 우리 공주야"로 시작하는 답문자가 왔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서로 죽고 못사는 사이였던 아빠와 나는
내가 중학교에 가면서부터 점점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워낙 학구열이 높은 부모님은 당신들 기대에 못 미치는 나를 닥달했고,
나 역시 어릴 때 몰랐던 부모님의-특히 아빠의-불합리함이 눈에 보이면서
내가 아니다 싶으면 바락바락 기를 쓰고 대들었다.
그러면서 아빠가 퇴근하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매달리던 딸과
그런 딸의 뺨에 얼굴을 비벼주던 아빠는 사라지고
서로 말을 3마디 이상만 주고받으면 당장 전쟁이 벌어지는 아빠와 딸만 남았다.

서로 그렇게 냉랭하게 지내길 십수년, 아빠는 늙으셨고 나는 나이가 들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아빠는 나를 공주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셨다.
가끔 문자로 '우리 공주'로 시작하는 문자도 보내신다.
그 말이 참...낯 간지러우면서도 눈물이 난다.
물론 가끔 얼른 '왕자'를 만나라고 채근하실 땐 발끈하지만 말이다. 하하.
여전히 서로 살갑지는 못하지만 예전처럼 냉랭하지도 않다.
이게 나이가 드는 건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나는 아빠의 공주님이란 거다.
아마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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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9-05-12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무스탕 2009-05-12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뻐요.. ^^

보석 2009-05-13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 감사합니다.^^

카스피 2009-05-13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세상의 모든 딸은 아빠에겐 모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공주님들이랍니다^^

보석 2009-05-14 16:31   좋아요 0 | URL
그렇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