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갖는 이유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이다, 라고 인문학적으로 생각해본다. 일만 하면 그게 사람이겠는가. 그리고 그게 삶이겠는가. 강신주의 감정 수업은 철학에 인간미를 덧붙인 그런 책이다. 딱딱하고 메마른 인문학이 아니라, 실제로 숨을 쉬는 사람을 위한 인문학이다. 스피노자의 철학이 이렇게나 인간 중심적이었는지, 그리고 그의 철학과 강신주의 해석으로 위로받는 나자신을 발견하였다. 인문학으로 위로받는 휴가, 아, 생각만 해도 달콤하다. 게다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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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 놓은 창문 너머로 달이 밝다. 어제는 도톰한 송편 모양이더니 어느새 살이 올라 언뜻 보기에 둥근 보름달 같다. 뜬금없이 달 이야기를 하는 건, 저 달을 나에게 허락한 창문이 고마워서이다. 그리고 창문처럼, 투명인간을 허락한 성석제 작가가 고마워서이다. 한국 소설가 중에서 가장 오지게 이야기를 잘하는 작가, 이야기꾼이라 칭하는 성석제가 신간을 내었다. 요근래 그의 책들을 보면서 `좀... 이야기가 약해진 것 같다. 싱겁다.` 라고 생각했던 나인데, 그래서 투명인간에 대한 기대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러나, 한 인간의 비극적인 삶을 60-70년대의 슬픈 한국 현대사와 80-90년대의 북적거리는 분위기에 너무나 잘 녹아내었다. 수많은 화자가 등장하여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도 새롭다. 그러면서도 정작 주인공은 한 마디 말이 없는, 주인공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낸 작가의 붓에 더욱 감탄하게 된다. 감히, 성석제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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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수, 그가 잊혀지지 않는다. 홍천에 독특한 칼국수집이 있다. 한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건데 번 돈을 쓰는 방법이 자못 새롭다. 칼국수를 팔아 번 돈으로 산불을 내고 돌아가신 남편을 대신해서 벌금을 내셨단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20여년, 드디어 빚을 갚으셨다고, 내가 찾아가서 여쭈어 보던 해에 비로소 웃음을 보이셨다. 그 할머니의 웃음과 김만수의 표정이 언뜻 겹치는 것은 왜일까. 20여년을 빚을 지고 살아가는 그 마음은, 그리고 그 빚을 갚기위해 허름한 천막을 뒤집어 씌운 칼국수집을 매일같이 열며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다리 위에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김만수의 힘듦과 같아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다. 생각할 수록 김만수가 너무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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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지를 흔들 듯이 - 3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 3-1(가) 수록도서 동시 보물창고 3
정완영 지음, 김수연 그림 / 보물창고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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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더운 날이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덥다, 이 생각만 하게 된다. 그것이 비단 여름뿐만이겠는가. 봄에는 황사때문에 코가 간지럽다, 싫다. 가을에는 아 외롭다, 살찐다. 겨울에는 춥다, 아 춥다. 태생이 시인과는 거리가 멀기에 단순하고 일차적인 생각만 한다. 그러다 가끔 시를 읽게 되면, 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다르게 표현하는 그들에게, 시에게 감탄한다.


정완영 시인의 <꽃가지를 흔들듯이>는 동시조집이다. 그러나 형태를 자유롭게 배치하여 동시조라는 느낌보다는 참한 동시의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낯설다, 라는 느낌보다는 익숙한데, 뭔가 다른 새로움이 느껴진다.



까치가 

깍 깍 울어야

아침 햇살이 몰려들고


꽃가지를 

흔들어야

하늘빛이 살아나듯이


엄마가 

빨래를 헹궈야

개울물이 환히 열린다.



동시조에도 행과 연을 도입하여 동시인듯 하면서도 마지막 종장의 첫 구절은 세글자로 시조의 형식을 갖추었다. 어떻게 보면 동시와 동시조의 구별을 짓는 일이 무의미한 듯 한 이 시들은, 그러나 동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규칙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규칙성이 시를 더욱 안정감있게 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어딘가 차분한 마음이 들게 한다. 


시에서도 그러한 차분한 느낌이랄까, 나지막이 일러주는 할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다. 철저히 구어체의 문장으로 구성된 시조들은 할아버지 무릎에서 듣는 옛이야기들을 닮았다. 따뜻한 옛 정취를 함뿍 담았음에도 오래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건, 시인의 마음 속에 동심이 살아 있기 때문이리라.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시도 그런 시조였다. 아이와 할아버지가 묻고 대답하는 듯한 <꽃과 열매>라는 시조는 호기심 많은 아이와 할아버지의 대화를 엿듣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뭇잎은 새파란데

꽃은 어찌 새빨갈까

세상에 꽃 빛깔 많아도

잎 닮은 빛 엎는 것은

벌 나비

환하게 불러

열매 맺잔 뜻이란다.


그러면 이상하다

꽃은 붉고 샛노란데

어찌해 풋열매는

잎을 닮아 새파랄까

잎 속에

덜 읽은 열매를

숨겨 두잔 뜻이란다.


용하고 또 용하다

높고 깊은 하늘의 뜻

열매가 다 익으면

고운 빛깔 갈아입혀

과일은

새에게 주고 

씨는 묻잔 뜻이란다.



<봄비>로 시작한 동시조는< 설날 아침>으로 이어진다. 사계절을 동시조에 담아내었다. 봄에는 상추씨도 뿌리고 보리밭을 건너기도 한다. 박꽃을 보다가 큰나무 아래서 더위도 피한다. 불러만 보아도 단물 잘잘 흐르는 달이 뜨는 한가위도 보내고 강물 소리 나는 연줄을 팽팽하게 감아 높이 연을 올려 띄운다. 지금은 잊혀진 일들이 많다. 요새 아이들이 상추씨를 알 것이며, 보리밭의 푸른 너울을 본 적이 있을까. 박꽃은 어떤 색인지 알려나. 희뿌연 하늘에도 달은 뜨는지, 연이 하늘로 올라가면 가슴이 벅차서 터질 것 같은 그 마음도. 아마 이 시조들을 읽어본다면, 아이들도 경험하고 싶을 것이다. 연도 상추씨도 박꽃도.



읽는 내내 가슴이 저미게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추억들을 몇 개의 자음과 모음들로 살려낸 시인의 마음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 김수연 화백에게도 감사한 마음이다. 소설은 영화같고 시는 사진 같다고 했던가. 머리 속에 장면 장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시와 함께 그림으로 표현되어 더욱 좋았다. 시조들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림들이었다. 하나하나가 작품이고 감탄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느려지는 미학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좀 더 어렸을 적에는 빠른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느리게 이해하고 느리게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즐기고 간직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정완영 시인의 동시조도 그렇다. 느릿느릿 나지막이 얼러주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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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이 꿴 호랑이 옛이야기 그림책 2
권문희 글.그림 / 사계절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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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쏙~"

"꿀꺽 쏙~"


내가 이 부분을 읽을 때 쯤이면 벌써 아이들은 웃고 난리가 난다. 자기네들도 호랑이 마냥 꿀꺽 삼키는 표정을 했다가 쏙!하고 자기 똥구멍을 꿈실거린다. 내가 꿀꺽, 하면 쏙, 하고 말을 주고 받으며 읽다보면 어느새 책이 끝나 있다. 책에서 눈을 떼고 아이들을 바라보면 너무나 재미있어서, 벌써 끝난게 아쉬워하는 마음들이 보인다. 그 책이 뭔 책이냐고? 바로 <줄줄이 꿴 호랑이>이다.



그림책은 무엇보다도 재미있어야한다, 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한국 그림책 중에 가장 재미있는 것을 고르자면 바로 이 책 <줄줄이 꿴 호랑이>이다. 저학년이고 고학년이고 이 책을 안좋아하는 어린이는 본 적이 없다. 그러면 어른은 어떠한가. 어른들은 재미있어하다못해 책 주인공을 부러워한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그림책에 홀딱 빠지게 하는 묘미는 무엇일까.



"옛날에 게으른 아이가 살았어. 

어찌나 게으른지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 싸고,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 싸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정말 저렇게 게으른 아이가 있었다. 어느날 아이의 엄마는 화가 나서 외친다. 아이는 느긋하게 괭이 하나만 달라고 한다. 요 때 아이의 표정을 보면 정말 여유롭고 한가하다. 화면 가득 엄마는 화를 내고 침을 튀기며 이야기 하는데 책 구석에서 실실 여유롭게 웃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가 차서 웃음이 난다. 아이들도 이 장면에서 피식, 하고 웃는다. 마치 자기네들 엄마같아서 일 것이다. 나도 사실은 우리 엄마를 떠올렸으니까 말이다. 



괭이로 커다란 구덩이를 판 후, 동네 똥을 다 모아 붓고, 참깨 한 섬을 그 위에 몽땅 뿌린다. 참깨에서 싹이 나자 가장 튼튼한 녀석 하나만 남긴다. 참깨는 어마어마한 참깨 나무가 되어 주먹만한 참깨를 우르르 쏟아내린다. 아이는 그걸로 참기름 수수십 항아리를 짜서 강아지에게 바르고 먹이고 한다. 여기까지 읽을 때쯤이면 아이들은 왜? 그냥 그거 갖다팔면 부자되잖아요, 한다. 이미 제목은 잊어버린 것이다.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미 사고는 정지 수준이다. 게다가 과장된 그림들은 이야기가 정말 현실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표정들이 살아있는 인물들의 표정은 우리 아이들의 그것같다.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 아이들은 정말 살아있는 얼굴을 한다. 이래서 책은 재미있어야 하는 것이다.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를 맡은 호랑이들은 강아지를 낼름 삼키지만, 금새 똥구멍을 빠져나온다. 그렇게 줄을 매단 강아지에 엮인 호랑이가 산을 감쌀 정도였다. 앞 선 호랑이가 뒤의 호랑이에게 먹지마, 라고 말하지만 호랑이들도 아이들처럼 하지말란 건 꼭 한다. 어른들은 이 부분에서 꼭 자신들의 아이를 떠올리며 웃는다. 하지말라해도 해보고 싶은 심정은 비단 아이들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어른들도 얼마나 제약당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야기를 통해 힐링해야하는 것은 아이고 어른이고 마찬가지이다. 



호랑이를 수수십마리 잡은 아이는 그 후로 평생 놀고 먹고 부자로 잘 산다. 실제로 가능하냐고 묻는 아이는 여지껏 한 번도 없었다. 그 정도로 거짓말투성이 이야기임을 아이들도 알고 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책을 통해 이루어짐으로써 아이들은 감정적 해소를 경험한다. 특히 꿀꺽 쏙! 이라고 표현한 부분에서는 신나게 웃는다. 어쩜 권문희 작가는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만들었을까 늘 읽으면서 감탄한다. 이야기도, 그림도, 말들도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출중하게 재미있다. 재미있어야 읽는다. 그래야 읽고 또 읽는다. 그러다보면 생각을 하게 되고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 



만약, 배경이 현대라면 이야기가 어떻게 바뀔까 생각을 해본적이 있다. 게으른 아이는 구덩이가 아니라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려나? 호랑이가 아니라 광고 배너를 달려나? 아님 아이디어로 후원을 받으려나? 그럼 과연 재미있을까? 아마 정말로 재미가 없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기에, 사실적 판단에서 벗어나 있기에 아이들이  자유로워지게 하는 옛이야기들. 아이들이 언제까지나 옛이야기를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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