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리 BB 프라이머 틴티드 컨트롤베이스 SPF 40 PA++

평점 :
단종


제품을 받은지 20여일이 지났고, 사용 횟수는 12번 이상.
이 정도면 나름대로 사용후기를 써도 되겠다는 판단이 선다.

..대한민국 여성들 사이에서 비비크림 열풍이 불 때, 나는 좀 시큰둥 했다. 화장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건상 평소에 화장할 일이 그리 많지 않은데다가 선크림이며 프라이머, 메이크업 베이스, 파운데이션, 컨실러까지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는 마당에 굳이 비비크림까지 살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 어차피 특별한 약속이 있는 날엔 시간과 공을 들여 오랫동안 화장을 하는 편이라 빠른 스피드와 효과를 보장하는 비비크림은 내게 별로 소용이 없었다. 괜히 샀다가 자리만 차지할지도 모르고... 그래서 남들이 '비비크림은 이게 좋아, 저게 좋아.' 할 때, 그냥 그러려니 흘려 들었는데...

운 좋게 이 '로트리 비비크림'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한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브랜드이고 비비크림 자체도 처음 사용하는 거라서 안 그래도 민감한 피부에 큰 일이라도 날까봐 겁은 좀 났지만 '무대뽀 정신'으로 무장, 마침 여행을 갈 일이 생겨 다른 베이스 화장품 다 빼버리고 이 제품 하나 달랑 넣어가지고 갔다. 비비크림이 프라이머 겸 파운데이션, 자외선 차단제 역할도 한다니까 여행할 때 유용하겠지,싶었다. 짐도 줄이고.

여행지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샤워를 하고 조금 들 뜬 마음으로 제품을 개봉했다.
그리고 손등에 조금 덜었는데, '엄마야, 색깔이 왜 이래?'
난 처음에 무슨 황토팩인 줄 알았다.-_-; 도저히 얼굴에 바르는 베이스 제품이라고는 볼 수 없는 칙칙한 색깔인데다가 감촉도 뻑뻑한 것이 완전 워시오프 타입의 팩이 따로 없었다. 난 얼굴도 흰 편이라 베이스 제품 잘못 바르면 얼굴 색깔 죽어보이는데, 괜히 잘못 발랐다가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거 아냐?, 뭐 이런 생각을 잠깐 하면서 일단 양 볼에 조금 묻혀서 발라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뻑뻑하게 느껴졌던 크림이 몇번 문지르지도 않았는데, 피부에 착- 달라붙는거다. 그리고 흡착된 크림은 몇 초 지나지 않아 내 본래의 피부 톤에 맞게 보정되었다. 그것도 울긋불긋했던 피부가 균일한 톤으로.

'우와, 신기해!' 그러면서 얼굴 전체에 다 발라보았는데. 어쩜 이럴수가. 평소에 공들여서 했던 화장보다 더 화사하게 표현돼서 순간 감탄했다. 자잘한 모공커버는 물론이고, 피부톤 보정, 전혀 들뜨지가 않는데다 전체적으로 촉촉하고 반짝반짝 하는 것이 순식간에 투명 메이크업 완성. 물론 진한 여드름 자국이나 큰 모공은 커버가 안 됐지만 어차피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으므로 패스. 사실 그런 것까지 가능하면 완전 만능이게? ..암튼 첫 사용 소감은 '엄청 마음에 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계속 이 제품을 썼는데, 확실히 화장의 단계가 줄어든 만큼 시간 절약도 되고 효과도 만점이라 그 이후 파운데이션을 멀리하고 있다.; 다만 자외선 차단 효과는 그다지 없는 것 같아 비비크림 바르기 전에 자외선 차단제는 발라준다. 특별히 피부를 더 완벽하게 표현하고 싶은 날은 컨실러로 여드름을 커버해주면 더 낫고, 그렇지 않다면 팩트로 톡톡 두드려만 줘도 연하게 커버가 된다. 처음 바르면 피부가 살짝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고, 바르고 난 후 2~3시간은 크게 기름기가 돌지 않고 거뜬한 걸 보니 나같은 지성피부에게도 무난한 편. 단 얇게 펴발라야지 한꺼번에 너무 많이 바르면 좀 답답한 느낌이 들고, 특히 각질관리를 제대로 안 하고 바를 때는 확실히 화장이 좀 뜨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건 파운데이션도 마찬가지. 단 비비크림이 파운데이션보다 밀착력에서 우수하므로 덜 부담된다. 물론 커버력은 파운데이션 쪽이 월등히 우수하다.) 무엇보다 모든 화장은 기초가 중요하다. 얼굴에 수분공급을 잘 해준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이 천지차이. 이 비비크림도 수분공급이 잘 된 날이 훨씬 화사하고 촉촉하게 표현된다. 
 

암튼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효과가 좋아서 마음에 든다.
앞서 말했듯이 다른 비비크림은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타제품과는 비교 불가능 하지만 처음 사용해본 비비크림으로서는 대만족. 여름날 가벼운 화장에는 정말 제격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 제품 다 쓴 후, 재구매 할 확률 90% 이상. 그나저나 이 비비크림 덕분에 내 메이크업 베이스와 파운데이션은 찬밥신세다. 아직 많이 남았는데,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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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존
아소우 미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기타 실력은 수준급이나 보컬 실력은 수준 미달. 밴드 '옥시즌(O₂)'의 멤버, 오우 시게오(이하 '왕짱')는 학교 축제에 나가려고 객원 멤버까지 불러들여 맹연습을 하지만 음치의 영역에서 헤매기만 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또다른 멤버 오쿠다 하유루와 함께 길을 걷다가 '이동식 빵가게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매료되어 그 노래를 부른 장본인을 찾아가기에 이른다. 노래를 부른 이는 17살의 여자아이로,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잃고 도쿄의 할머니댁에서 일을 돕고 있는 오사카 출신 소녀, 오노데라 치카. 왕짱은 그녀에게 다짜고짜 밴드의 보컬을 맡아달라 제안한다. 그러면서 원래는 이니셜이 O인 사람들이 모여 옥시즌(O+O=O₂)이었는데, 이제 O가 셋이니 오존(O₃)으로 밴드이름을 개명하겠다며 호들갑을 떨며 좋아한다. 그러나 치카의 관심사는 오로지 아버지가 생전에 운영하셨던 빵가게의 재개장 뿐. 왕짱은 곡을 녹음한 MD를 치카의 손에 들려주며 생각이 바뀌면 연락하라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있으나 마나한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가끔은 원하던 꿈을 접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달릴 때도 있다. '오존'은 그런 청춘남녀의 이야기다. 꿈도 재능도 아무런 확신이 없는 세 젊은이의 팔팔한 청춘 스토리.

[한마디 말]을 먼저 읽은 관계로 상대적으로 이 단편은 심심하게 느껴졌다. 딱히 공감이 간다기보다 '아소우 미코토'다운 인물, 말투, 그림이 좋았다. 그리고 '치카'가 쓰는 오사카 사투리가 정겨웠고. 물론 그걸 한국어로 번역하려니 '전라도+경상도+충청도 말'이 기묘하게 섞여서 국적불명의 사투리가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으니 그 정도는 애교. 언제나 특별함을 갈구하는 '왕짱'과 요즘 유행어로 '무심한듯 시크한' '에짱', 그들 사이에 벼락처럼 떨어진 '치카'가 만나 '옥시즌'은 '오존'이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그들이지만 푸르른 젊음과 유대관계만으로도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이 좋다.

뒤에 이어지는 단편, 'SHALL WE DANCE?'와 프리퀄에 해당하는 'sofa~소파~'도 가볍게 읽기에는 괜찮은 편. 난 아소우 미코토 식 청춘학원물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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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빵 2
한수영 지음 / 현대문화센터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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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4년에 방영한 일요 아침드라마 [단팥빵]은 '휴일 아침 9시에 시작'이라는 시간대 덕분에 시청률은 저녁시간대 드라마에 비해 다소 낮았지만, 피끓는 군인들에게는 대단히 인기작이어서 당시 군복무를 했던 아는 동생의 말에 의하면, 그쪽 내무반에서는 일요일 아침이 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단팥빵]을 시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선임,후임 할 것 없이 '강희 누나 너무 귀여워. 예뻐. 최고!'를 연발했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당시 드라마 [단팥빵]에 나오는 숫자송을 외워서 툭하면 '1, 일초라도 안 보이면 2, 이렇게 초조한데 3, 삼초는 어떻게 기다려~ 이야이야이야이야♬' 이러고 다녔댄다. 푸하하, 귀여워라.

그렇게 뭇 사병들의 가슴을 핑크빛으로 물들였던 [단팥빵]은 비단 군인들에게만 효과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본방으로는 한번도 시청한 적 없으나(당연하지 않은가; 난 아침잠이 많다고!) 케이블 재방송은 꼭꼭 챙겨봤던 나. 군인들이 '한가란(최강희)'에게 열광할 때 난 '단팥빵 안남준(박광현)'에게 열광하며 '꺅- 단팥빵 너무 좋아~'를 외쳐댔다. 그래서 심지어는 제과점에 가면 괜히 단팥빵 하나 더 사오기도 했었다.;;;; (원래 팥 들어가는 음식은 거의 다 좋아함!)

그런 내가 원작 소설을 이제야 읽는 건, 지나치게 많이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뭐 어쩌겠나. 나는 뒷북치기의 달인인 것을. 예전에 읽다가 만 소설을 다시 집어들어 읽었다. 총 2권 분량의 소설 [단팥빵]은 그 이름 만큼이나 친근하고, 아기자기하며 발랄하다. 다들 한번쯤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유난히 잘 싸우는 이성 친구가 있어 다른 애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꼭 그애하고만 엮이면 툭닥거리며 싸움질 하고 선생님한테 혼났던 경험. 꽤 파란만장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내게는 그게 꼭 내 얘기 같아서 '한가란 vs 안남준'에게 더 감정 몰입하며 읽었다.

성격이 급하고 장난끼가 많아 항상 주위가 산만한 '가란이'와 공부 잘하고 차분한데다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있는 '남준이'는 어쩌면 처음부터 견원지간일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가란의 절친한 친구인 '김선희'가 남준이를 좋아하는데다 남준인 '혜잔이'를 좋아하니, 선희의 친구인 가란이로서는 선희맘 몰라주는 남준이가 예뻐보일리 없는 거지. 남준이도 일찌감치 혜잔이같이 공주틱한 아이에게 빠졌으니 김선희는 커녕 왈가닥 가란이는 눈에 들어올리 없을테고. 그렇게 10년이 넘는 세월을 으르렁대며 싸움질을 했던 두 사람이 서른을 목전에 두고 다시 재회했을 때 스파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하필 그 스파크가 '사랑의 스파크'였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인데..♡ ..악연도 인연이라고, 두 사람이 그렇게나 진저리 치던 인연이 사실은 운명적 사랑을 위한 안배이기라도 했는지, 예고없이 시작된 로맨스는 '툭닥툭닥 싸움질'에서 '토닥토닥 연애질'로 변모, 급기야는 보는 사람 눈꼴 시는 상황까지 유발했다. 우와씨, 부러워.

아무래도 영상으로 실사화된 드라마를 먼저 보고 나서 원작을 읽은 탓에 이미 인물 이미지가 정형화 된 감이 없지 않아 있으나, 책은 또 책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에피소드가 즐겁기도 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가을 운동회에서 남준이가 가란이 업고 뛰는 장면은 그야말로 염장씬이지만 반대로 가장 부럽고 즐거운 장면이기도 했다.

소설을 읽고나니 드라마가 각색이며 편집을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면 소설쪽 보다 드라마가 더 내 취향에 가까운 편이다. 아무래도 처음 접한 쪽이 더 정이 가는 법인데다 드라마 구성 자체가 소설의 매력을 120% 이상 발휘하도록 만들어져서 더 그렇지 싶다. 게다가 OST도 굿! 그렇다고 소설이 안 좋았다는 게 아니고... 앞서 말한 것 처럼 소설은 소설 나름대로 특유의 풋풋함, 발랄함, 추억어린 에피소드와 웃음 넘치는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원작이라 읽는 내내 기분 좋은 설레임이 가득. 유치하던 초딩(물론 나는 국딩 세대지만;)때의 기억이 소록소록 피어나기도 하고, 설레던 연애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결국 결론은 [단팥빵] 좋다는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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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 말
아소우 미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바래지 않은 풋풋한 수채화 한 폭을 들여다 본 느낌이다. 그저 눈으로 본 것만으로도 무언가 정화되는 기분이 들어 쉽사리 책을 놓치 못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번에는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에 담고, 그림을 새긴다. 청춘물은 어떤 내용이든 상관없이 그저 그 시기를 담아내었다는 것 만으로 어딘가 모르게 에너지가 넘치고 빛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련해지고 먹먹해져서 그만 눈물이 고여버리고 만다. 키득키득 웃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눈 언저리가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난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

사실 학교 다니면서 짝사랑 비스무리한 것 한번 안 해본 여고생이 어디있을까? 하다 못해 매일 버스에서 마주치는 남학생이 어느날 딱 하루만 안 보여도 궁금해지는 게 사람 마음인데. [한마디 말]은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만화다. '좋아해' 한마디를 못해서 그 사람의 뒷모습만 쫓다가 결국 졸업식에서 장미 한송이만 가슴팍에 안겨준 채, 휙 돌아서서 뛰어가던 그 때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만화. 유치하고, 서투르고, 엉성하지만 다시 돌아간대도 쉽게 고백 못할 것 같은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눈에 반해서 같은 서클에 입부해놓고도 선배가 졸업할 때까지 고백은 커녕 눈도 제대로 못마주치는 고토하, 상처받은 마음을 냉담한 태도에 감춘 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앓기만 하는 인어공주 같은 마나베, 좋아하는 이에게 솔직하지 못한 표현으로만 일관하는 리츠, 감히 그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그저 그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만으로도 하루가 즐거운 쿠마자와의 이야기가 모두 내 얘기인양 가슴 졸여가며 그렇게 한장,한장 넘겼다. 그리고 그 반대 편에 있는 후지사키 선배와, 상처입은 인어공주를 치유하는 후카자와, 솔직함을 무기로 다가서는 카츠미, 본의 아니게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준 사코가 있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행복했다. 내 10대 때의 채워지지 않은 마음의 빈칸이 조금이나마 채워지는 것 같아 설레이기도 하고.

잔잔하지만 쉬이 잊혀질 이야기들이 아니다. '짧은 이야기, 긴 여운'은 결코 과장이 아님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작가의 최근 완결작, [Go! 히로미 Go!]에서 유쾌발랄한 그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면, 이 만화도 한번쯤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조용히 미소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덤으로 아소우 미코토 특유의 인물 개그와 담백함도 맘껏 느끼시고. ...아, 정말 사랑스러운 만화다. 별 점수가 아니라 하트를 날려주고 싶을 정도로. 절대로 돈 아깝지 않은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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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에 이르는 병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마 내가 산 책 중에 처음으로 대놓고 빨간 딱지(?) 붙은 책일 거다.(아, 만화책은 좀 있군;)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고 큼지막하게 디자인 된 문구가 [살육에 이르는 병]이란 제목과 맞물려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것에 손을 뻗는 느낌이 자꾸 든다. 마치 피가 튄 것 같은 으스스한 표지도 제대로 한 몫 했다. 읽기 전부터 공포감은 자꾸 늘어가고, 그러면서도 손은 표지를 넘기고 있다. 홍보문구에 따르면 '충격적인 결말을 확인한 순간,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어디 얼마나 충격적인지 봐주지, 첫 페이지 잘 읽어놔야겠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유없는 오기를 방패 삼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구성 참 독특하다. 프롤로그가 아니라 에필로그부터 시작한다. 사건 발생이 아니라 범인 체포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에 놀라야 하는 걸까? 잠시 궁금증을 뒤로 하고 다시 책을 읽어나갔다.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마다 3명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그 시점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퇴역 형사 히구치, 범인 미노루, 엄마 마사코. 시점도 다르거니와 시점에 따른 시간도 약간씩 어긋나 있어 행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 바짝 집중해서 읽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시간순으로 재배열해서 사건을 정리하고, 작가의 의도에 속지 않으려고 꽤 애쓰면서 읽었다. 결국 아무 소용 없었지만.

작가의 충실한 살인 묘사는 내 상상력과 더해져서 거의 스너프에 가까운 영상을 눈 앞에서 재현해냈다. 너무 잔인하고 냉혹해서 입 딱 벌리고 그냥 보고만 있었다. 엽기적이라느니, 미쳤다는 소리도 감히 안 나오더라. 이마에 가로 주름, 미간에 세로 주름이 평소의 2배는 잡히고, 심박수도 1.5배는 증가한다. 아아, 난 정말 이런 거 싫은데... 180여 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 결국 참지 못하고 책을 덮어버렸다. 책 읽기 전에 먹은 과일이 역류할 것 같았다. 아, 일단 자야겠다, 싶어 바로 침대로 기어들어가 잠을 청했다. 제길, 꿈에서 내가 난자당하고 있더라. 땀 삐질삐질 흘리며 잠에서 깨고나니, 잠든지 고작 4시간 밖에 안 된 시각. 기분이 그렇게 더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일단 시작했으니까 마저 읽어야지, 싶어 눈 뜨자마자 책 펼쳐서 눈에 바짝 힘주고 읽었다. 약간의 면역력이 생겨서인지, 아니면 잔인한 묘사 부분이 다 지나가서인지 훨씬 수월하게 읽힌다. 그때부터는 좀 더 차분하게 작품 속 인물들의 말과 행동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이 얼마 안 남았을 무렵, 이미 범인을 다 알고 있는데도 긴장감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충격적인 결말이란 도대체 뭐지? 다시 심박수가 증가한다. 두근두근.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정말 홍보문구 그대로 '단 하나의 문장'에 K.O패 당했다. 헉, 이 아니라 꺄악 소리를 질렀다. 이럴수가. 이럴수가... 한치의 과장도 없이 정말 놀라운 반전이었다. 그리고 끔직했다. 잔인해서가 아니라, 엽기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결과에 이를 수 밖에 없던 미노루의 심리상태가 조각조각 맞춰지듯 들여다 보여서. 그제서야 살육에 이르는 병의 의미가 와 닿아서. 그리고 그 상황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눈 앞에 보여서. 정말로 꺄악- 소리를 지르며 마지막 장을 몇 번이고 읽었다. 그리고 지나온 내용을 스르르 들춰보는 내 모습. 하아, 이런거였어.

반전에 대한 놀라움이 가시자, 머리가 아파왔다. 아버지 역할의 부재,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황폐해진 가정 뭐 이런 것들에 대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휙휙 떠올랐다 사라진다. 굳이 이 책이 아니라도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대두되기 시작한 문제다. 그런 것과 관련해 이런 끔찍한 범죄가 벌어진다고 생각하니 으스스, 소름이 돋는다. 사랑 결핍으로 빚어지는 결과는 언제나 가슴 아프고 끔찍하다. 아, 답답하다. 언제고 한번쯤은 머리 맞대고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문제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무래도 내게는 힘든 소설이었나보다. 가슴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소설로 위로받고 싶다. 당분간 추리 소설은 금지. 이 소설의 여파가 좀 사라질때쯤 다시 읽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여러모로 충격적인 소설이 맞긴 맞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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