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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 충격과 공포 ㅣ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5
김태권 지음 / 길찾기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를 좋아한다. 특히 세계사를...!
그래서 수능을 칠때도 남들은 점수 따기 쉽다는 '사회 문화' 혹은 '정치'를 선택하는데 나는 굳이 '세계사'를 고집하는 바람에 고3때 교실이동을 해가며 세계사 수업을 들었어야 했다. (선택과목에서 세계사를 선택한 학생이 전 고3학생중 15정도 밖에 안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따로 수업을 받았던..;) 내 경우, 어떤 나라의 역사든지 제일 관심이 가는 시기는 '중세시대'였는데 특히 유럽쪽과 중국의 중세시대를 아주 좋아했다. 아마 '고대'보다는 체계가 잡혀있으면서도 '근대'보다는 고전적이라 지금과는 다른 시대문화를 접하는게 막연히 좋았던것 같다.
유럽의 중세를 이야기 하자면 '십자군 원정'을 빼놓을 수 없는데, 세계사 수업때 배우기로는 '십자군 원정은 초기에는 성전聖戰이라 불릴만큼 뚜렷한 사명 아래 거행된 의식'이었지만 200년이란 긴 시간을 걸치면서 차츰 변질되어 나중에는 '전쟁을 위한 전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로 초기의 십자군 전쟁만을 많이 다뤘기에 변질된 후의 십자군 원정은 기억속에 희미하게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이 <십자군 이야기>라는 책을 접하면서 나는 새로운 깨달음과 보이는 사실 뒤에 감추어진 진실을 만나게 된다. 처음 읽을때는 '음- 그럴수도 있구나!'라며 소극적 이해의 자세로 건성건성 넘겼지만, 본격적인 십자군 이야기가 나올때즈음엔 어느새 책에 흠뻑 빠져있었다.
천년전의 십자군 전쟁을 이야기하며 현재의 이라크전쟁을 풍자,비판하고 있는 이 책은 자칫 무겁고 불편할 수 있는 주제를 맛깔스러운 유머와 로마네스크 양식의 그림체를 사용한 독특한 만화로 멋드러지게 커버하고 있다. 게다가 친절한 설명과 뒷부분에 있는 참고서적 목록은 이 책이 얼마나 고심해서 쓴 책이며 긴 시간에 걸쳐 준비해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슬슬 읽을 수 있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수많은 역사가들이 말했듯 우리는 역사를 통해 지난날을 돌아보며 나아갈 방향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그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면 결국 지난 역사를 되풀이해서 살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를 낳는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지난날처럼 다시한번 비극을 경험해야 하는 수 밖에 없다.
책의 앞쪽에 실린 추천사에서 '진중권'이 말하듯, 애초에 전쟁과 학살에 성스런 '이유'라던지 명분따위는 없다. 그저 지배계층의 야망과 야욕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될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도 상황과 입장이 바뀌면 자신이 당했던 것과 똑같이 행하면서 말도 안되는 이유와 명분을 갖다붙이는게 인간이란 동물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역사를 배우고 반성하고 노력해야 된다고 책은 넌지시 말하고 있다. 일시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계속 지켜낼 수 있는 단단한 의지가 필요하다.
<십자군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때 책을 광고하는 홍보문구로 '노무현 대통령은 파병하기 전에 이 책을 읽어야 한다'라며 '부시 대통령이 읽기엔 너무 아까운 책'이라는 카피가 사용되었었다. 단순히 책을 팔려는 선정적인 카피라고 넘겨버리기엔 책 내용이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도 크다. 아마 이 책을 읽는 그 누구라도 책을 덮는 순간엔 그 카피에 공감하고 말 것이다. 더불어 책의 부제인 '충격과 공포'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도 분명히 알게 될테고...(특히 부록으로 실린 '제노사이드 심리학'을 읽으면서 얼마나 놀라웠던지..; 입을 다물지 못한채 한동안 멍했다.)
모 리뷰어의 말처럼 이 책을 읽고나면 읽고싶은 책이 확-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긴다던데, 그 말이 정답이다. 책의 뒷부분에 작가가 추천해준 책들이 어찌나 보고 싶은지...;; 일단, 그렇게도 기다리던 2권이 나왔으니 그것부터 보고 기회가 된다면 찬찬히 그 추천 책들을 읽어봐야겠다.
덧) 만화를 통해 서술한 책이라서 그런 것일까? 자꾸자꾸 읽게 된다. 후푹풍(?)이 더 대단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