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뜻해진다.

Dr.코토 진료소 1
야마다 다카토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1년 5월

낙도에 한 의사가 부임해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의사는 굉장한 실력을 가졌다고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멍하게생겼다. 그러나 수술 솜씨만은 가히 신의 경지이다. 이런 의사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섬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단지 의술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헤아려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고를 당해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 온 섬마을 사람들은 단 한 명도 빠짐 없이 병원 앞에 모여서 그의 회복을 빌며 밤을 지새웠다. 그 장면이 얼마나 가슴 뭉클하던지... 요즘 의사답지 않은 의사가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다. 그래서 Dr.고토가 더 빛나보인다.

슬프디 슬픈 불노랑 저고리의 사랑

불의 검 1
김혜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11월

김혜린의 작품은 다 징징거린다. <북해의 별>이 그랬고 <비천무>가 그랬다. <불의 검> 역시 징징거린다. 읽고 있다보면 그 징징거림에 진이 빠질 지경이다. 그런데도 읽게 된다. 그 이유가 무얼까...바로 그들의 슬프디 슬픈 영혼 때문이다.

이 세상에 그 어디에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있을까마는 여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왜 그리 상처가 많은지...요녀 카라까지도 미워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런 분위기는 아무나 낼 수 없다. 김혜린만의 독특한 세계이고 향기이다. 그 향기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다. 작품마다 읽는 사람의 가슴을 찢어놓는다.

산마로와 아사, 그리고 바리...하다 못해 청산녀와 곰마루의 사랑까지도...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는 그 격동기를 살아가는 슬픈 영혼들... 그들의 사랑은 슬프디 슬픈 불노랑 빛깔의 사랑이다.

광활한 대륙보다 더 광활한 사랑.

바람의 나라 1
김진 지음 / 시공사(만화) / 1998년 6월

만화보다 게임으로 더 유명한 <바람의 나라>... <바람의 나라>는 삼국 초기 고구려가 배경이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손자 무휼과 부여에서 온 연이...그들은 어른들의 정략결혼에 희생된 어린 영혼이었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그들 사이에서 어여쁘디 어여쁜 호동이가 태어난다.

<바람의 나라>는 이렇듯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 건국 초기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모르고 있던 사실을 많이 가르쳐 주고 있다. 황조가로만 알고 있던 유리왕이 모습이라던가,두 명이나 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이 될 수밖에 없었던 무휼이의 비극...그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렇게나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이를 잃은 슬픔과 공허함에 아버지의 모습을 따라 가고 있어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그 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랑 또한 가슴 아프다. 세류의 남편이야기와 괴유와의 사랑, 보답받지 못한 가희의 괴유에 대한 사랑...용이를 사랑해 세류를 배반한 남조 등등...

우리 나라 역사 중에 상당수 비밀에 쌓여 있는 시대 중 하나가 삼국 초기의 역사다.
<바람의 나라>를 읽기 시작하면서 우리 나라 상고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에 관련된 책을 찾아 읽었다. 덕분에 학교에서 미쳐 배우지 못했던 우리 나라의 역사를 알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고마운 <바람의 나라>다

피아노 선율이 들린다.

KISS 1
마츠모토 토모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8년 5월

줄거리 자체는 크게 색다를 것이 없다. 피아노 학원 강사와 여고생의 사랑...색다를 것이 없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만화와 다르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피아노 선율이다. 장면 장면에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온다고 느낄 만큼 피아노곡이 많이 나온다. 그 곡들은 장면에 맞게,내용에 맞게 잘 선곡이 되어 있어 작품의 수준을 한껏 끌어올려 주고 있다. 그리고 그 기막힌 나레이션이라니... 사랑하는 사람들이 갖는 그 미묘한 감정들이 피아노 곡과 함께 나레이션으로 너무 잘 묘사가 되어 있다.

계속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귀에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하바네라...라 캄파넬라...마치 실제로 듣고 있는 듯하다. 만화란 것이 눈에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귀에 들리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물건에 깃든 정령

세상이 가르쳐 준 비밀 9
하츠 아키코 지음, 서미경 옮김 / 시공사(만화) / 2002년 10월

어렸을 때 모든 물건들에 정령-그 때는 이 단어를 몰랐지만-들이 살지는 않을까 상상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정령들이 내가 잠들고 있는 틈에 나와서 돌아다니거나 잠자는 나를 들여다보며 장난을 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도 했다. 어렸을 때의 그런 상상력을 충족시켜 준 것이 바로 <세상이 가르쳐 준 비밀>이다. 많이 아낄수록, 집착이 클수록 물건에 깃든 사념도 커진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거짓이라 여기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세상일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물건에 정령이 깃들여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내가 갖고 있는 그 어떤 물건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다. 물건을 소중히 여기게 만드는 바로 그런 작품이 바로 이 <세상이 가르쳐 준 비밀>이다. 이제부턴 그 어떤 작은 물건이라도 진심으로 아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