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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뿌리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평점 :
하늘의 뿌리의 가장 큰 장점은 두껍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국내소설은 원고지 1,000매 넘기지 않는 것을 암묵적인 원칙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원고지 2,500매를 훌쩍 뛰어넘는 이 책은 시대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 분명하다. 분권하지 않고 한 권으로 묶어낸 출판사의 우직함에 감사를 표한다.
우직하기로 말하자면 출판사뿐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소설의 주인공 모렐이야말로 우직함의 표본이다. "사람이 진지함이나 장중함이 어떤 도를 넘어서게 되면 실생활에 있어서 불구자가 되어버린다는 느낌이 종종 들더군요." 생드니의 이 말이야말로 모렐이라는 인간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따지고 보면 소설이라는 장르야말로 모렐을 표현하는 실생활의 불구자라는 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아무런 실용적 정보와 도움도 제공하지 않는 이 소설을 위해 적어도 며칠 간의 독서 시간을 모두 소비해야 했으니.(한나절만에 다 읽었다는 프랑스 사람의 이야기가 역자 후기에 나온다. 대단한 인간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이 소설은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다. 소설이란 그런 것이다. 둔중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그 무엇. 모렐에겐 코끼리가 바로 그것이었겠지만 나 같은 독자에게는 이 소설 자체가 코끼리인 셈이다.
모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즈음 코끼리는 보호받아야 할 동물이 되었다. 두꺼운 소설들도 마찬가지로 보기 드문 것이 되었고. 가끔은 이렇듯 미련한 것들이 마음을 움직인다.
출판사에 한 마디. 소설이 두꺼워 교정보는 일은 쉽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소설이 전개됨에 따라 오타가 눈에 띄게 많아지는 것은 그러한 이유이리라. 너그럽게 용서하도록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