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엔 빗물 쓸쓸히 떨어지고, 향로엔 가느다랗게 향기 풍기는데, 지금 친구 두엇과 함께 소매 걷고 맨발로 방석에 기대앉아서 하얀 연꽃 옆에서 참외를 쪼개 먹으며 번우한 생각들을 씻고 있네.
이럴 때 우리 여인(허균의 친구 이재영의 자)이 없어서는 안될 테지. 자네 집 사자 같은 늙은 아내가 반드시 고함을 지르면서 자네 얼굴을 고양이 면상으로 만들 테지만, 늙었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움츠려 들어서는 아니 될 것이야.
종놈에게 우산을 가지고 대기하도록 해 놓았으니 가랑비쯤이야 족히 피할 수 있으리. 빨리빨리 오시게나. 모이고 흩어짐이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런 모임이 어찌 자주 있겠는가. 흩어진 뒤에는 후회해도 돌이킬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