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편지, 척독들이 제일 가슴을 때린다. '이 아우는 잘 파직되어 원하던 바에 너무도 잘 맞습니다.' 하던 허균의 여유로운 멘트는 이내 진심을 드러낸 칼 같이 날카로운 멘트로 바뀐다. '대장부의 생애는 관 뚜껑을 덮어야 끝나는 겁니다.'그 양자를 오가는 것이 바로 허균의 마음이자 읽는 나의 마음이다. 갈등은 계속된다. '벼슬이란 때때로 가난 때문에 하기도 하는 법입니다.' 라는 비감한 문장 뒤엔 '때마침 우유술을 빚어서 젖빛처럼 하얀 술이 술동이에 뚝뚝 떨어지니, 얼른 오셔서 맛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바람 잘 드는 마루를 하마 쓸어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이 이어진다. 혁명의 싹이란 바로 이런 것이리라. 낭만적 삶과 비감함 사이 그 어느 곳. 언젠가 보았던 체 게바라의 죽은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그런 결론에 이르르는 사람이 세상에는 분명 있는 것이다. 혁명하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술 한 잔으로 달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