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점의 뚜렷한 대비

검은 꽃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김영하가 맘 먹고 장편소설을 썼다고 한다. 자화자찬격의 광고가 거슬렸지만 꾹 참고 읽기로 했다. 결과는, 처음의 찜찜하던 마음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은, 절반의 성공이라고나 할까. 날렵함은 역시 김영하 소설에서 가장 돋보이는 덕목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그의 날렵함은 그리 효과적인 무기로 사용되지 못한 듯하다. 인물들은 깊이를 요구하는 장면에서 슬며시 이야기를 중단하고 빠져나간다. 그걸 날렵함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의 부족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대하소설로 써야 할 내용을 한 권으로 축약했다는 것은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 하나 거슬리는 것은 사료의 과도한 인용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1차 사료를 거칠게 수정하여 인용한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그것들은 소설 속의 인물들과 긴밀하게 연계되지 않는다. 나는 그가 소설 부분을 쓴 뒤 사료들을 통해 나머지 부분들을 보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거기다가 결론 부분의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부분은 전체의 맥락과 맞아들지 않는다. 이정은 아나키적 관념을 지닌 인물인데 허무함을 알면서도 나라를 세우다니, 나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단점만 나열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김영하를 믿는다. 소설가는 평생 가야 하는 직업이다. 대표작에 너무 연연하지 않는다면 분명 더 좋은 소설을 쓰리라 믿기에 별 넷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