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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한때 폴 오스터라는 이름만으로도 책을 사던 시절이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새 소설을 기다리지 못하고 아마존에 들러 번역되지 않은 영어책들까지 모두 사던 때가 있었다. 미스터 버티고, 리바이어던 등등. 그의 소설들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한 인간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며 보여주면서도 마법적인 환상성과 삶의 비의를 놓치지 않는 그의 재능에 항상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폐허의 도시>는 좀 묘하다. 그의 다른 소설들과 맞닿아 있는 듯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이 소설의 설정은 지극히 폴 오스트적이다. 가상인지 실제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도시가 등장하고 그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 등장한다(우연의 음악이 생각나는군).
하지만 거기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그의 전작들과는 다르다. 굳이 말하자면 좀 조작된 냄새가 짙은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럴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그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이니까. 그러니까 글의 번역된 순서대로 볼 오스터의 소설적 이력을 작성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폴 오스터의 앞날을 예고해주는 일종의 시금석과도 같다. 탐정 소설에 탐닉해 있던 그는 이 소설을 계기로 완변하게 자신의 길을 찾은 듯하다. 부럽다. 자기만의 색채를 지닌다는 것, 나는 언제나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