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 독일stellanova 13cm 조명 지구본(안틱)
중국 OEM
평점 :
절판


꼭 갖고 싶었던 것이 지구본인데, 조명 기능까지 되니 금상첨화다. 생각보다 너무 작고 귀엽고 클래식하다. 너무 작은 탓에 조명 기능이 약하긴 하다만, 나는 시력 나빠질 것을 감안(?)하고 조명 기능으로도 쓴다. 분리해서 전구를 큰 것으로 갈아끼울 생각이다(될는지는 미지수).  

일단 한글이 전혀 없고 영어만 있어서 깔끔하다. 나라명은 글씨체가 두껍고 수도명은 얇다. 지명을 영단어로 보는 게 책을 읽을 때나 여행을 다닐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전체적인 색감도 차분하고 그윽한 멋이 풍긴다. 엊저녁 지구본을 켜놓고 책을 읽다가 깜박 잠들었다가 깼다. 아주 작은 지구가 눈 앞에서 빛나고 있으니 내가 마치 달이나 태양이라도 된 듯하였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Joule 2009-10-08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그래요. 지구본 하나 갖고 싶어서 찾아다닌 게 어언 몇 년째인지. 이제 포기할 때쯤 되었는데 장난감 하나 사는 셈 치고 저도 구입할까 봐요. 밤에 문득 일어나서 보면 달처럼 보일 것 같다는.

쎈연필 2009-10-12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작아요. 같은 회사 제품 중에 좀 큰 것도 있더라구요.

Joule 2009-10-14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좀 더 큰 걸 사게 되면 사진 찍어 보여줄게요. 참, 제대한 거 축하드려요. 이건 생일 스무 개쯤 합친 것만큼 축하해야 할 일이라고 봐요. 군대를 모두 폭파해버리면 남자들이 군대를 안 가도 될까요.

쎈연필 2009-10-14 12:4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남북통일이 되면 모병제로 바뀌지 않을까 싶어요.
 

    

 

 

 

껄껄 선생의 열하일기 새 완역본이 나왔다. 서점 갈 시간이 없어 책을 보진 못했다. 우선 반갑다마는, 지상 보도된 역자의 인터뷰마다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나는 군대에서 리상호 역본 열하일기를 정독한 바 있는데(일병에서 상병에 걸쳐 띄엄띄엄, 번번이 통제에 의해 맥이 끊겨가며 읽었다), 반 세기 전에 북한 학자가 번역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게 읽혔다. 고전국역총서로 나온 국역 열하일기에 비해 문장도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훌륭했다(특히, <도강록>에서 연암이 요동벌을 맞닥뜨리며 한바탕 퍼붓는 울음론에서, 두 판본의 문장에 대한 나의 기호가 엇갈렸다).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책이라 편집도 깔끔했다. 종이 재질이 너무 두꺼워서 책의 부피가 큰 것이 유일한 단점이랄까(휴대하기엔 애로하더라).  

군대에서 별의별 잡스러운 다량의 책들을 읽었지만 쓸 만한 책들은 정성껏 노트에 메모했는데, 그 200여권의 노트할 만한 책들 중 굳이 한 권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열하일기다. 감동 먹어 울기도 했고, 그 장쾌한 기개에 군바리다운 패기로 침상 바닥을 두드리기도 했으며, 밤 새워 글벗들과 필담을 나누다가 양고기가 타는 줄도 모르는 장면(망양록)에 이르러서는 부러워서, 몇몇 책 좋아하는 전우들을 모아 냉동짬뽕이 전자렌지에서 타는 줄도 모르고 노가리를 풀었다. 열하일기는 만물지였고 백과사전인데다 내밀한 일기이기도 했으며, 적나라한 르포였고, 팩션 소설이었다.  

리상호 역본 열하일기는 내 젊은 날의 위대한 스승이다.    

이번에 나온 김혈조 선생 번역 열하일기가 훌륭할 것이란 데는 의심이 없지만, 각각의 기사마다 기존 번역물 특히 리상호 본에 대한 오역 사례를 한 문장씩 비교 지적하고 있다. 한겨레 기사에서 예를 든 문장은 '오불선타팔룡 모거일간(吾不羨他八龍 慕渠一姦)이라 말하여 온 방안이 한바탕 웃었다'라는 문장인데, 리상호 본은 '나는 저 사람의 아들 팔형제가 부러운 것보다 작은마누라나 하룻밤 빌렸으면 그만이겠소'로 번역했다.

김혈조 선생은 "원문을 상식적으로 번역해야 하고, 파자 식으로 쓴 것이 연암 문체의 한 특징이니 간(姦)은 한자의 본뜻보다는 여자 셋이라는 파자로 보아야" 한다며, '나는 여덟 아들이 부러운 게 아니라 한 남자가 세 여자를 거느렸다는 게 더 탐납니다라고 하여 온 방안이 한바탕 웃었다'로 번역했단다.  

나도 속재필담의 저 부분을 읽을 당시에 한바탕 웃었는데, (한문을 몰라서 답답하다만) 리상호 번역이 더 재밌고 좋다(저잣거리에선 심심찮게 들을 법한 농지거리겠지만, 글 만지는 샌님들 끼리라면, '파격'적이니까). 게다가 김혈조 선생의 저 말은, 의역했다는 말이 아닌가? 말 그대로라면 '파자' 식으로 쓰는 것이 연암 문체의 '한' 특징이지 늘 그런 건 아니잖은가. 원문의 내용을 상식적인 선에서 순화 의역했다는 말이 아닌가. 누구의 상식인지. 조선시대인지 연암의 박학다식한 상식(?)인지 번역자의 상식인지, 기사의 문맥만으로는 감이 안 온다. 연암이 상식적인 사람이었던가? 잘은 모르겠지만 아니었던 거 같다.  

새로 나온 열하일기 번역본 관련 기사들을 주욱 읽고는 장바구니에 담았던 새판본 열하일기를, 뺐다. 사람이든 일이든 상품이든, 남을 흠잡으면서 등장하는 경우는 공통적으로, 별볼일 없더라. 지적할 거면 진작하든가.  

예전에도 먼저 출간된 판본의 오역 지적하면서 출간하는 인문서들이 제법 있었다. 오역 지적 문제는 아닌데, 문지에서 나온 서유기와 솔출판사에서 나온 서유기를 두고 어떤 것으로 살까 고민했었다. 지금 검색하니 두 판본의 출간년도가 햇수로 1년 다르게 나오는데(한쪽에서 바꿨구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청 고민하다가 도서관에 가서 읽으려 했지만 두 판본 다 신간이라 그러지 못했다. 카프카의 작품은 여러 출판사들에서 나올 때마다 오역 어쩌구이고, 세계문학전집도 각 출판사의 시리즈 별로 제각각 오역 지적하면서 등장한다. 인문서의 출판마케팅이란 게 그런 식인 모양이다. 원문을 해독할 능력이 없는 독자로서는 답답한 노릇. 한 가지 깨우친 게 있다면, 얇은 귀로 이것저것 건드리면 시간만 뺏기는 수가 허다하다는 것.  

얼마 전에, 헌책방에서 사놓고 오래동안 모셔두기만 했던 학원사판 안나 카레리나를 읽었다. 어제 알라딘에서 클릭질을 하다가 민음사 세계명작선집으로 새로 나온 사실을 알았다. 학원사판의 난삽한 문장과 지저분한 편집 때문에 짜증이 나서 몇 번이나 읽기를 그만두려했었는데! 내가 다 읽기 전에 진작 출간될 것이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난데없는 분노감이 끓어올랐었다. 한 작품의 다른 판본이라면, 게다가 내가 읽은 작품이라면, 그리고 내가 읽은 판본을 지적하고 나온다면, 이젠 어디까지나 개인적 체험에 의해서, 분노부터 일어난다… …  

해서…… 김혈조 선생의 열하일기 판본에 대한 나의 소감은 그저 푸념일 뿐이다.  

열하일기는 무조건 훌륭한 책이니 어떤 판본이든 많이들 읽길 바란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해한모리군 2009-09-30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나온 열하일기 보았는데, 사진도 많고 편집도 시원시원해서 저도 사읽을까 싶었는데.. 인터뷰서 그런말을 했다니 생각해보아야겠네요.. 흠.

쎈연필 2009-09-30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연휴에 서점 가서 훓어보긴 하려구요~^-^

구입하지는 않을 겁니다만 ㅋㅋㅋ

김창영 2009-10-01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원한 필체의 연암 관련 리뷰가 인상적입니다. 시원시원 호방호방 하신 게 이미 연암에 닿으신 듯 하군요 ㅎㅎㅎ
우선 저도 보리판 열하일기 그러니까 리상호의 열하일기 완역을 통해 열하일기와 연암을 다시 한 번 접했습니다. 이후 돌베개에서 신호열과 김명호 공역의 연암집도 읽었구요. 복학 후엔 연암원전을 강독하기도 했습니다. 리뷰 쓰신 분과 같이 제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김혈조의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라는 연암산문선집을 읽으면서 맛있는 글이구나 생각했고, 리상호를 통해서는 연암은 멋있구나 느꼈고, 신호열(돌아가셨습니다) 선생의 글을 통해서는 연암은 깊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정민과 박희병의 글들에서는 태양인(?)박지원의 풍모를 느꼈고요. 강독을 통해서 보니 연암은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 거렸습니다. 고미숙의 글은 너무 귀엽고 아기자기한 수준이어서 뭐라 단언키 어렵군요.
고전의 번역에 있어서 오역은 누구나 있을 수 있는 것이기에 김혈조의 책에도 분명 오역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다만 출판사측의 마케팅전략인가 아니면 진짜 오역이 많기 때문에 지적을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구해볼 문제이지요. 독자나 역자가 오역을 피해갈 수 없다면 차라리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강단이 양자에게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연암을 포함한 수 없이 많은 고전 번역서에 대한 연구자 혹은 번역자의 지적과 질정이라는 것은 이미 누차례 공식 & 비공식석상에서 현재도 계속 제기되고 있습니다. 연암관련 논문과 서적들의 오역은 정평있는 번역자라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 것입니다. 김혈조에게서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한 사람의 연구자로서 또 강단에서 제 또래의(저 아직 학생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또 번역하면서 講磨한 노하우를 이번 완역집을 통해 토해낸 것이겠지요.
그러나 인터뷰에서 말 꼬리 잡듯이 리상호의 번역에 대해서 曰可曰否 하신 것은 분명 인터뷰를 준비한 기자들이나 신문의 편집자들이 오해하신 것일겁니다. 분명 번역자는 리상호의 책 "이 부분은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는가" 하는 역자의 심정이 편집을 통해 삭제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한 말씀 올려보았습니다.
평소 김혈조의 내공이 그런 말을 쉽게 할 분이 아니라는 것을 변호하고 싶습니다.

쎈연필 2009-10-02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사 전공하시나봐요. 해박하시네요~^^
말씀은 김혈조 선생이 했는데, 신문기자들의 곡해나 편집으로 나온 말이라고 해석한다면 안 될 말이죠.
비판이나 지적을, 할 때는 쉽게 하고, 받을 때는 쉽게 못 받는 경우가 있는데...
그럼 정말~ 얘기가 안 되죠. 물론 역자 본인이 아니라 김창영님께서 변호라며 말씀하셨지만요. ^^
저도 새책을 구경도 않은 채로 개인적인 감상찌끼만 늘어놓은 거니까, 긴 논의는 무리인 것 같네요.
창영님의 전공분야에 대한 애정이 아름답습니다.

추석 잘 보내시구요, 간간이 님의 블로그에 놀러가서 공부할게요~^-^*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최병수.김진송 지음 / 현실문화 / 2006년 4월
장바구니담기


난 이해가 안 됐어. 내가 보기에 거기 걸린 그림들은 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모습만 그려놓았지. 내가 아는 노동자들은 착하고 정직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또 반면에 뺀질이들이 많지. 백구두 신고 다니는 놈들도 많았지. 그런데 그림들은 전부 다 고통 받는 모습만 나오니까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거야. 몇 년 뒤에 그림을 그렸던 화가들한테 물어봤어. "당신들 노동일을 한 경험은 있냐?" 그랬더니, 있다는 거야. 자신 있게 얘기하더라고. 그래서 얼마나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보통은 일주일 정도 해봤고 보름 동안 일해 본 사람은 좀 드물게 있고 한 달은 몇 명 있다고 그러더군.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 나는 그들이 노동자를 고통스럽게 그리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지. 몇 년씩 일한 사람도 한 달 쉬다가 일하면 참 힘들거든. 그런데 일주일이나 보름 일하면 얼마나 힘들었겠어. 아르바이트로 공사판에 나가 질통을 지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거지. 결국 자기들 모습을 그려놓고선 그걸 노동자라고 그린 거였지. 그러니 내가 이해가 안 됐던 거라고. -52쪽

우리 현실이 그렇잖아? 마치 들판에 먹이가 놓여있다고 하면 그걸 힘센 놈이 도끼로 찍어서 먼저 먹어버리 듯이 자본을 향해 힘센 자들이 달려드는 이 현실이 나는 원시적이라고 생각했어. 이걸 현실이라고 말하는 세상이 얼마나 나쁜 건지. 이건 대항해서 싸워야 할 현실이거든. -88쪽

자본주의의 모순을 이야기하며 사업을 설명하는데 내가 얘기를 그럴듯하게 잘했던 것 같아.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했어. 나는 사업하는 것보다도 대화하는 걸 더 좋아했지. 굉장히 재미있었고 마치 내가 신부가 된 것 같았어. 사람들이 마치 고해성사 하듯이 다 나한테 말해 주었거든. 그들 자신이 어떻게 고생하고 살았는지, 자기들이 어떻게 고통 받았는지를 다 얘기하는데 깜짝 놀랐어.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삶이 있다는 걸 알았지. 나는 사람들의 꿈이 어떻게 파괴되고 좌절되는지를 도표를 그려가면서 조사를 하기도 했어. 그리고 그걸 복사해서 사람들한테 돌리기도 했지. 그걸 가지고 책도 내고 그림도 그려보고 싶었어.-150쪽

그는 몸을 연장처럼 다뤘다. 아니 그의 손은 연필이나 조각도 혹은 도구를 다루는 몸의 일부가 아니라 연장 그 자체였다. 그는 메모를 할 때조차 종이를 찾지 못하면 손바닥이나 팔뚝에 사인펜으로 직직 그어댔다. -190쪽

사패산 터널을 정부나 건설회사 측에서는 왜 그렇게 강행하려는 거지?

북한산 관통도로 공사가 얼마나 많은 이권이 걸려 있는 줄 사람들은 잘 모를 거야. 북한산 관통도로 공사로 인해 얻어지는 화강암이 양질이어서 그 값어치가 엄청나다는 것이었지. 민자유치로 인해 거둬들일 수 있는 도로세와 교통세는 이보다 훨씬 더 많지. 이런 사실들은 건설사가 전방위 로비를 해서 언론에 잘 나지도 않았어.-222쪽

그는 개인적으로 받아들인 현상과 사회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을 너무 쉽게 일치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그와의 대화가 난감했던 부분이다. 이를테면 개인의 처지를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설명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인간의 문명 자체를 부정하는 시각으로 옮아가는 단순한 도식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는 지식이나 이론 혹은 논리적인 영역들을 자신이 벼리고 다듬은 칼로 싹둘 베어놓곤 했다. 때로 나는 그의 말이 던지는 단순함에 대해서는 이의를 걸고 싶어졌다. 때로 신념은 아집으로 둔갑하고 확신은 독선으로 돌변하는 것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에게는 상투적인 논리로 가늠할 수 없는 그만의 어법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의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그의 작품이 그걸 더 잘 말해 준다. -245쪽

17째 줄 : 한참을 사진만 그렇데 -> 한참을 사진만 그렇게-265쪽

조급하다고? 종말의 설계도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어. 북극이 녹고 남극의 빙하가 떨어져 나가고 극지방의 기온이 올라가 모기가 극성을 부리고 또 순록들은 모기를 피해 먹이 없는 곳에서 굶어 죽고 있지. 그런데도 이 문명의 천재들은 소수의 권력이나 부를 위한 곳에 집중되어 있어. 기껏 오락거기를 만들어내거나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는 기술에 매달려 있지. -27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구판절판


그의 어머니는 드레스덴 공습 때 화재 폭풍에 타 죽었다. 그렇게 가는 거지-11쪽

이 재향군인은 지하실로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 문을 닫고는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결혼반지가 그 요란한 장식에 걸리고 말았다. 엘리베이터 바닥이 내려가자 그는 공중에 매달리게 되었고 천장에 짓눌려 으깨지고 말았다. 그렇게 가는 거지.
그래서 내가 이 이야기를 전화로 불러 주자, 등사 원판을 뜰 그 여자가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그 사람 아내는 뭐라고 했죠?"
"부인은 아직 몰라요." 내가 말했다. "이제 막 일어난 일이니까."
"그 여자에게 전화해서 뭐라는지 알아봐요."
"뭐라고요?"
"경찰서의 핀 경위라고 하면서 안 좋은 소식이 있다고 말해요. 그러고는 그 소식을 전하고 그 여자가 뭐라는지 들어보는 거예요."
나는 그렇게 했다. 그 여자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말을 했다. 아기가 있다. 기타 등등.
내가 사무실에 돌아왔을 때, 그 여자 서기는 순전히 사적인 호기심에서 내게 물었다. 그 으깨진 남자가 어떤 꼴이더냐고.-18쪽

나는 모텔 방에서 기드온 성서를 뒤져 대규모 파괴 이야기들을 찾아보았다.

롯이 소알에 들어가자 대지 위로 해가 솟았다. 그때 주께서 손수 하늘에서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퍼부으시어 그 도시들과 모든 들과 도시의 모든 주민과 땅에 돋아난 푸성귀까지 모조리 엎어 멸하셨다.

그렇게 가는 거지.
다 알다시피, 두 도시의 주민들은 사악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없어지자 세상은 더 나아졌다.
물론, 롯의 아내는 그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집이 있는 곳을 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보았고, 나는 그 때문에 그녀가 마음에 든다. 얼마나 인간적인 행동인가.
그리하여 그녀는 소금기둥이 되었다. 그렇게 가는 거지.-34쪽

트랄파마도어 인은 시체를 볼 때, 그 죽은 사람이 바로 그 순간에는 나쁜 상태지만 다른 많은 순간들에는 아주 양호하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지금은 나도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깨만 한번 들썩 하고는 트랄파마도어 인들이 죽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을 할 뿐입니다. '그렇게 가는 거지.'-40쪽

"그놈을 사막에 있는 개미탑으로 데려가는 거야, 알아? 하늘을 향해 뉘여 놓고는 놈의 쌍방울하고 작대기에 꿀을 흠씬 바르고 놈의 눈꺼풀을 잘라내서 죽을 때까지 태양을 쳐다보게 만드는 거지."
그렇게 가는 거지.-51쪽

그래서 빌리는 양손 엄지로 병의 코르크 마개를 땄다. 펑 소리는 나지 않았다. 샴페인은 죽어 있었다. 그렇게 가는 거지.-91쪽

문학평론가들인 그들은 빌리도 문학평론가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소설이 죽었는지를 놓고 토론을 벌일 예정이었다. 그렇게 가는 거지.-239쪽

내가 일 년 내내 사는 집에서 12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여름 별장을 둔 로버트 케네디가 이틀 전 밤에 총에 맞았다. 그는 어젯밤에 죽었다. 그렇게 가는 거지.
마틴 루터 킹이 한 달 전에 총에 맞았다. 그도 죽었다. 그렇게 가는 거지.
그리고 우리 정부는 매일 베트남에서 군사학에 의해 만들어진 시체의 수를 알려 준다. 그렇게 가는 거지.
그리고 내 아버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자연사였다. 그렇게 가는 거지.-244쪽

그는 트랄파마도어 인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지구인은 찰스 다윈이라고 말한다. 죽는 사람은 죽기로 되어 있어서 죽는 것이고, 시체는 진보의 증거라고 가르친 것이 그들 마음에 든 것이다. 그렇게 가는 거지.-245쪽

평균 324,000명의 신생아가 매일 세상에 태어난다. 같은 날, 평균 10,000명이 굶주림이나 영양실조로 죽는다. 그렇게 가는 거지. 또 123,000명이 다른 이유로 죽는다. 그렇게 가는 거지.-247쪽

그 영국군이 생존에 대해 한 말은 이랬다.
"여러분이 외모에 대한 자부심을 잃는다면, 금방 죽을 것이다."
그는 몇 사람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죽는 것을 보았노라고 말했다.
"그 사람들은 똑바로 서는 것을 그만두더니, 면도하거나 몸을 씻는 것도 그만두고, 이어서 침대에서 나오는 것도 그만두고, 그 다음에는 말하기를 그만두더니, 결국 죽었다. 그렇게 죽는 것에 대해 이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쉽고 고통 없이 가는 방법이다."
그렇게 가는 거지.-171쪽

수백 개의 시체 광산이 가동되었다. 광산들은 처음에는 냄새가 심하지 않아 마치 밀랍 인형 박물관 같았다. 그러나 곧 시체들이 썩어 문드러졌고, 그 고약한 냄새는 장미와 겨자탄을 섞어 놓은 듯했다.
그렇게 가는 거지.
빌리와 함께 작업하던 마오리 사람은 명령을 받고 그 고약한 냄새가 나는 곳에 내려가 작업을 한 뒤로 심하게 헛구역질을 하다 죽었다. 그는 토하고 또 토하면서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렇게 가는 거지.
그래서 새로운 기술이 고안되었다. 이제 더는 시체들을 꺼내지 않아도 되었다. 화염방사기를 든 병사들이 시체들을 있는 자리에서 그대로 화장했다. 병사들은 그 대피소 밖에 선 채로 그냥 화염만 안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고 있을 때쯤, 고등학교 선생 출신의 가엾은 노병 에드가 더비가 카타콤에서 찻주전자 하나를 드록 나오다 현장에서 붙잡혔다. 그는 약탈죄로 체포되었다. 그는 재판을 받고 총살당했다.
그렇게 가는 거지.-249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optrash 2005-08-11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아해요. 와 또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그렇게 가는거지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는 헝가리 출신으로 프랑스에 망명했다. 세 단어를 초과하는 문장이 거의 없는 걸 보면, 확실히 불어가 서툰 모양이다(중권과 하권에서는 문장이 길어진다. 불어가 많이 늘었으리라). 저자 스스로의 언어적 단점을 하도 잘 이용해서, 오히려 이 소설의 장점이 됐다. 감정에 대한 묘사나 서술을 했다면 「비밀 노트」는 동화가 됐을 거다. 잔혹 엽기 동화쯤 되려나. 문체와 구성과 인물 모두 동화인데, 서사가 극단적이다. 이런 역설적 배합이 이 소설을 충격적이게 한다. 대부분의 충격은 낯섦과 극단, 역설에서 온다.

<우리의 공부>라는 챕터에서 밝히듯, 감정을 생략하고 행동만 극히 짧게 묘사했다. 작가의 감정 서술 생략으로, 인물들이 기계처럼 보인다. 감정만큼 주관적인 게 있을까. 눈에 선연한 행동이야 말로 객관지향적이다. 그것은 곧 리얼리즘의 덕목이다. 극사실적 리얼리즘 묘사가, 극단적 서사를 뒷받침하는 힘이다.

(사족이다; 나는 리얼리즘을 믿지 않는다. 다만 편의상 리얼리즘이란 낱말을 쓴다. 모든 글쓰기는 선택적 행위이며, 경험과 상상력의 편집이고, 소위 리얼리즘 소설은 반쪽; 경험의 편집일 뿐, 그 배면엔 그것만을 취택하여 쓰는 글쓴이의 의도가 숨어 있다.)

이 소설의 큰 주제는 허구와 리얼리즘이다. 소설인데 리얼리즘이라니, 기표와 기의가 어긋나지 않은가? 소설=허구 아닌가? 모든 것을 기록하겠다는 쌍둥이의 비밀 노트도, 삭제되고 또 삭제되어 지들 좋은 것만 남게 된다. 리얼리즘인가? 퇴고/편집 행위가 이미 허구의 영역이다. 중권에서 이 문제(다섯 권의 비밀 노트)를 놓고 루카스와 페테르가 논쟁을 벌이고, 하권에서는 클라우스와 루카스 모두 이 문제(마찬가지, 비밀 노트)로 인해 존재의 진위를 부정 당한다. 진짜도 위조도 아니고 그저 허구다. 그도 그럴것이 클라우스-루카스는 (난해한) 시를 쓴다. 노트를 입수한 후 그것을 골격으로 상상력을 첨가해 시를 쓴다. 수많은 선각자들이 그러했듯 그들에게도, 현실(노트 기록)이 문학(시)이 된다. 문학은 현실의 표절 행위이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더러 생겨난다. 그러나 이 소설을 현실에서 모방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러니 과연 리얼리즘인가? 그래서 소설 속 심문자들은 허구라고 단정 짓는 건가.)

이 소설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들도 그러했겠지만, 나는 상권을 읽으며, 이 지독한 (아고타 크리스토프) 할망구! 라고 연신 뇌까렸다. 그러나 중권과 하권부터는 인물들의 감정 서술/묘사가 후폭풍처럼 몰아 닥친다. 인물들의 극단적 감정들은 내 주관과 어울릴 수 없었다. 극단적 통속의 감정들이었다. (안타깝게도 감정의 범위는 행동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좁다.) 미혼모는 왜 그리 자주 등장해대는지, 작가의 트라우마를 짐작케 했다. 중권과 하권에는 쓸데없이 등장인물이 많고, 상권과는 달리 개성이 없다. 불필요한 행위 묘사가 너무 많다. 작가는 고독을 주제 삼았겠지만, 내겐 인물들의 권태만 보였다. 그러나 상권을 읽는다면 중권과 하권을 안 읽을 수 없다. 그러니 일단 상권만 읽으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