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는 헝가리 출신으로 프랑스에 망명했다. 세 단어를 초과하는 문장이 거의 없는 걸 보면, 확실히 불어가 서툰 모양이다(중권과 하권에서는 문장이 길어진다. 불어가 많이 늘었으리라). 저자 스스로의 언어적 단점을 하도 잘 이용해서, 오히려 이 소설의 장점이 됐다. 감정에 대한 묘사나 서술을 했다면 「비밀 노트」는 동화가 됐을 거다. 잔혹 엽기 동화쯤 되려나. 문체와 구성과 인물 모두 동화인데, 서사가 극단적이다. 이런 역설적 배합이 이 소설을 충격적이게 한다. 대부분의 충격은 낯섦과 극단, 역설에서 온다.

<우리의 공부>라는 챕터에서 밝히듯, 감정을 생략하고 행동만 극히 짧게 묘사했다. 작가의 감정 서술 생략으로, 인물들이 기계처럼 보인다. 감정만큼 주관적인 게 있을까. 눈에 선연한 행동이야 말로 객관지향적이다. 그것은 곧 리얼리즘의 덕목이다. 극사실적 리얼리즘 묘사가, 극단적 서사를 뒷받침하는 힘이다.

(사족이다; 나는 리얼리즘을 믿지 않는다. 다만 편의상 리얼리즘이란 낱말을 쓴다. 모든 글쓰기는 선택적 행위이며, 경험과 상상력의 편집이고, 소위 리얼리즘 소설은 반쪽; 경험의 편집일 뿐, 그 배면엔 그것만을 취택하여 쓰는 글쓴이의 의도가 숨어 있다.)

이 소설의 큰 주제는 허구와 리얼리즘이다. 소설인데 리얼리즘이라니, 기표와 기의가 어긋나지 않은가? 소설=허구 아닌가? 모든 것을 기록하겠다는 쌍둥이의 비밀 노트도, 삭제되고 또 삭제되어 지들 좋은 것만 남게 된다. 리얼리즘인가? 퇴고/편집 행위가 이미 허구의 영역이다. 중권에서 이 문제(다섯 권의 비밀 노트)를 놓고 루카스와 페테르가 논쟁을 벌이고, 하권에서는 클라우스와 루카스 모두 이 문제(마찬가지, 비밀 노트)로 인해 존재의 진위를 부정 당한다. 진짜도 위조도 아니고 그저 허구다. 그도 그럴것이 클라우스-루카스는 (난해한) 시를 쓴다. 노트를 입수한 후 그것을 골격으로 상상력을 첨가해 시를 쓴다. 수많은 선각자들이 그러했듯 그들에게도, 현실(노트 기록)이 문학(시)이 된다. 문학은 현실의 표절 행위이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더러 생겨난다. 그러나 이 소설을 현실에서 모방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러니 과연 리얼리즘인가? 그래서 소설 속 심문자들은 허구라고 단정 짓는 건가.)

이 소설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들도 그러했겠지만, 나는 상권을 읽으며, 이 지독한 (아고타 크리스토프) 할망구! 라고 연신 뇌까렸다. 그러나 중권과 하권부터는 인물들의 감정 서술/묘사가 후폭풍처럼 몰아 닥친다. 인물들의 극단적 감정들은 내 주관과 어울릴 수 없었다. 극단적 통속의 감정들이었다. (안타깝게도 감정의 범위는 행동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좁다.) 미혼모는 왜 그리 자주 등장해대는지, 작가의 트라우마를 짐작케 했다. 중권과 하권에는 쓸데없이 등장인물이 많고, 상권과는 달리 개성이 없다. 불필요한 행위 묘사가 너무 많다. 작가는 고독을 주제 삼았겠지만, 내겐 인물들의 권태만 보였다. 그러나 상권을 읽는다면 중권과 하권을 안 읽을 수 없다. 그러니 일단 상권만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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