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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해보지는 못했지만 제가 꿈꾸는 이상적인 일과가 있습니다. 아흐레 동안 한 번도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고 아무런 방해 없이 지내는 거예요. 그리고 글쓰기 좋은 넓은 공간을 갖는 겁니다. 거대한 탁자가 있었으면 해요. 어디에 있든지 언제나 이 정도의 [책상 위에 남아 있는 작은 공간을 가리키면서] 공간밖에 남지 않거든요. 이 버릇을 고치려고 하는데 안 되는군요.

에밀리 디킨슨이 글을 쓰던 아주아주 작은 책상을 떠올리면서 '참, 귀여운분야!'라고 웃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 정도의 작은 공간만 가졌을 뿐이지요. 어떤 파일 정리 시스템을 사용하든 얼마나 자주 정리를 하든 마찬가지예요. 일상, 서류, 편지, 부탁, 초대장, 청구서들이 끝없이 밀려들어 옵니다. 저는 규칙적으로 글을 쓸 수 없습니다. 그게 가능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대개는 아홉 시에 출근하고 다섯 시에 퇴근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지요. 일하는 도중에 급히 글을 쓰거나 주말이나 새벽에 써야만 했어요. 

<작가란 무엇인가 2 토니 모리슨>


주말이 되어 점점 창고화 되어가는 서재방에 와서 책상에 앉아보니 책상 위에도 빈 틈이라고는 없이 학용품과 종이들와 책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위에 인용한 토니 모리슨의  저 말이 생각 나는 순간이었다! 제대로 된 글을 써 보겠다는 결심으로 '작가'에 대한, 글쓰기에 관한 책을 십 여권 샀었는데 일기 이상은 쓰지 않는, 그나마도 불규칙하게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이 부끄러워서 글쓰기&작가에 관한 책은 전부다 불투명 문짝이 달린 책장에 고이고이 숨겨두고는 다시는 읽지 않아야지 다짐했었는데, 오늘 토니 모리슨의 저 문장이 생각나서 오랜만에 책장 문을 열고 꺼내보았다. 


맥북이 한 대 있을 땐 맥북이 두 대 있으면 일기를(글을) 더 꾸준히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맥북 두  대가 되면서 망상으로 판정됨)했었다. 맥북 한 대는 서재에 두고(서재에서는 맥북과 LG32인치 모니터를 연결하고 매직마우스와 매직키보드를 사용함. 트랙패드는 불편하고 마우스가 편함), 다른 맥북 한 대는 침실에 두면 침실에 있을 때 굳이 서재에 가서 HDMI 케이블을 뺀 후 맥북을 들고 침실로 가서 글을 쓰지 않아도 되니까, 이 번거로운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되면 글(일기) 쓰기에 좀 더 쉽게 접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맥북이 두 대가 되어서 서재와 침실에 각각 있게 되자 의지력만 더 줄어들었다!!!


한국이 지금과 같은 선진국이 아닌 시대에 태어난 나는, 그리하여 청소년기에는 영문도 모른 채 IMF를 겪으면서 금  모으기 운동을 할 때 내 돌반지 돌려줘를 외치며 엄마에게서 기어니 반돈 자리 돌반지를 돌려받은 나는, 선천적 후천적으로 헝그리 정신이 뼈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헝그리 정신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헝그리 정신만이 나를 전진시킨다!!


규칙적으로 작업하는 습관이 있으신가요?

레싱: 그건 그저 습관에 불과하므로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울 때 아주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맹렬하게 쓰는 법을 훈련했습니다. 주말이 비어 있거나 한 주 정도 시간이 나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분량을 작업했죠. 지금은 그 습관이 몸에 배었습니다. 사실 더 천천히 작업할 수 있으면 훨씬 잘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습관이 들었어요. 

<작가란 무엇인가2 도리스 레싱>


동트기 전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이건 필요해서 생긴 습관인가요. 아니면 이른 아침이 글 쓰기 제일 좋은 시간이라서인가요?

토니 모리슨: 동트기 전에 글을 쓰기 시작한 건 필요에 의해서였습니다. 처음 글을 쓸 때는 아이들이 아주 어렸고, 걔들이 엄마를 찾기 전 시간을 이용해야만 했어요. 그 시간은 언제나 새벽 5시경이었지요. 

<작가란 무엇인가2 토니 모리슨>


토니 모리슨은 어떻게 직장을 다님과 동시에 육아를 하면서 훌륭한 소설 쓰기까지 할 수 있었을까? 역시 관건은 선 체력 후 의지일까? 얼마 전 구 맥북의 pages에 쓴 글을 외장메모리에 백업하면서 과거의 나는 엄청난 일기를 강박적으로 써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과거의 일기들을 읽으면서 '그시절 나는 진지했고 매우 심각했고 비장했구나.'하면서 막 웃었다. 


#1. 나의 경우,

저녁 홈트를 한 후 샤워를 하고 나면 체력은 0에 수렴한다. 그러면 무조건 누워있고 싶어진다. 내 상상은 이랬다. 침대에 누워서 배 위에 쿠션을 올리고 쿠션 위에 적당한 각도로 맥북을 거치하고 누워서 pages를 열고 일기를 쓴다. 아주 간단히라도 일기를 쓴 후 책을 조금 읽다가 잔다는 구체적인 구상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배 위에 쿠션을 올리고 맥북을 거치하고 '건강하게 살찌는 법'을 유튜브에서 검색하다가 '건강하게 살 빼는 법'영상만 많다는 것에 잠시 좌절한 후, 안아키와 큰 차이가 없을 법한, 구독자 수가 어느 정도 채워진 후에는 완전히 맛탱이가 가버린(이때부터는 의사 유튜버는 사이비 교주가 된다!!) 현직 의사 유튜버들의 건강과 섭식에 대한 헛소리 영상들을 막장 드라마 보듯이 보다가 자는 것이 루틴이 되어버렸다. 특히 말도 안 되는 섭식 헛소리 영상에 달린 많은 간증 댓글이 일품이었다(거짓말이거나 지나친 과장  같던데, 그 거짓 간증에 달린 대댓글을 보면 진심으로 믿는 거 같기도 했다)!! 지난달에 앓았던 장염으로 인해 줄어든 체중은 장염 회복 후 한 달이 넘도록 복구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건강하게 살찌는 법이 필요했던 건데, 세상 모든 섭식&의학 유튜버들은 '이렇게 먹으면 살도 빠지고 건강 수치도 정상이 된다'라고만 하고 있으니 도무지 뭘 더 먹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2. 시간과 체력이 충분하다면?

어제는 금요일이었다. 위에 적은 것처럼 홈트를 하고 나서 샤워를 하면서 생각했다. 씻고 나면 뭘 할까? 1) 침대에 누워서 팟캐스트 듣다가 졸리면 걍 자기. 2) 침실 책상에 앉아서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계속 읽기. 3) 거실에 가서 넷플릭스에 찜해둔 영화 보기. 현재 보고 싶은 것 1위는 개봉 때 못 봤던 <고당도>. 

그랬는데 바디로션을 바르고 잠옷을 입고 나니 범죄 스릴러 연속극이 보고 싶어졌다. 최소 10회 이상의 작품으로. 머릿속으로 내가 찜해둔 작품들, 만사를 잊고 싶을 때를 위해서 상비약처럼 아껴둔 드라마들을 떠올리다가 <자백의 대가>가 보고 싶어졌다. 기대보다는 재미가 없다는 평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어서 기대치가 낮아서였을까 재미있었다. 이번 주말은 <자백의 대가>로 탕진하겠구나!! 


3화가 끝나자 느닷없이 잠이 쏟아졌다. 더 보고 싶었지만 쏟아지는 잠을 거부할 수는 없지. 그때가 23시. 그때 잠들어서 8시간 내리 자고 7시에 일어났다. 수면점수는 99점. 


매일 어김없이, 특히 아침에 체력이 완충되었을 때, 이렇게 좋은 몸상태를 출퇴근(노동)에 거의 다 쓴다는 것은 엄청난 인생 낭비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일을 그만두고 내가 바라는 생활에 체력과 시간을 쓴다면 과연 나는 제대로 생존하기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가 바라는 생활은 지난밤 3시간 정도 꼼짝도 않고 소파에 누워서 <자백의 대가>를 보는 것을 매일, 원 없이 하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체력을 영화(드라마) 보기, 책 읽기, 일기 쓰기에만 쓰면서 대부분의 나날을 외출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것이다. 일주일 중 이틀 정도만 외출하고(아마도 그마저도 극장 방문용 외출일 테지만) 나머지 닷새는 두문불출하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멋진 생활이다. 


내가 바라는 그 멋진 생활을 원없이 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 막연히 상상했던 것처럼 재미가 있을까? 두 대의 맥북처럼 되는 게 아닐까? 상황이 여유로워지면, 느긋해지면, 충분해져 버리면 '욕망'도 느슨해져버리는 게 나라는 인간이 천성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풍요의 저주랄까!


#3. 모든 것은 시간의 문제

부양가족이 나 자신 밖에 없는 비수도권 생활자라서 딱히 생계를 위해서 돈을 벌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많이 필요하지만 나는 돈이 많이 필요하지가 않아서 지금도 지나치게 충분한 것 같다. 그렇기에 코스피 5000, 6000이라고 해도 굳이 내가 주식을 왜?? 돈이 부족한 것도 화근이지만 돈이 많은 것도 화근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해서 지금까지 근속한 결과, 여생은 걍 파이어족을 해도 상관없기에 매일 '언제 그만 두지?' 하는 생각만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출퇴근을 하는 생활에서 가장 큰 활력을 얻는다(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회사일이 바쁠 때, 좀 어려운 업무를 할 때 정신이 맑아지고, 오늘 하루는 재미있다고 느끼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노망 든 건가! 이런 상태를 전문가들은 일중독이라고 한다고...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주말을 즐기려면 주중에는 출퇴근을 해야 하고, 밥이 맛있으려면 적당한 허기가 있어야 하고, 책&영화 감상이 재미있으려면 역시나 망중한이어야 한다는 것. 이런 생활 방식의 문제는 계속 일을 하면 도무지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통장의 숫자만 커진다는 것이고 나는 그 숫자 놀음이 싫다는 것이다. 숫자 놀음을 피하려면 돈을 버는 만큼 계속 돈을 써야 하는데 돈을 쓰는 것도 쉽지 않을 일이다. 대단한 열정과 체력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물건을 계속 구입하고, 서비스를 계속 받는 것에도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써야 하는데 노동하고 남는 시간에 소비(물건 구입+서비스 받기)를 해야 할지 책과 영화를 감상해야 할지의 밸런스 게임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압축적으로 기분 좋게 돈을 쓰기 위해서 샤넬에 가서 보석을 사곤 했다. 보석은 부피도 적고, 늘 몸에 지니고 있을 수 있으니까 나로서는 일석이조였다. 하지만 요즘은 샤넬도 만렙인 상태여서 멍하니 통장 잔고의 숫자만 보고 있다. 이 숫자들을 어떻게 다 처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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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백도 내돈내산이고 막스마라 코트도 내돈내산인 나는 권력을 가져본 적 없는 가여운 백성. 그래서 4398 김건희같은 권력을 잃은 자가 아니기에 내가 법정에 선다면 무죄로 가는 길은 시라트(영화 시라트 참고,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로운 길)의 그것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뭐든 내돈내산으로 해결하고 있다. 우인성 판사(1974년 생)는 그 어려운 무죄의 시라트를 버스전용 차로처럼 4398에게 깔아주었다. 


명태균과 김영선에게 무죄를 선물한 김인택 판사는 1970년 생으로 50대 중반 남성, 면제점 직원 찬스로 면세점에서 톰브라운을 싸게 샀다고 하니 추구미는 영포티? 우엑! 짜친 새끼. 톰브라운 ㅋㅋㅋㅋ 아재요, 정신 차리소. 


박영재 법원행정처장(1969년 생)은 그 판결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니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대입이든 취업이든 면접에서 답했다면 불합격 100%일 텐데, 놀랍게도 대법관이자 법원행정처장이다. 대법관이 제일 쉬웠어요인가? 


법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는 곳에 백성들은 김도기 기사를 보낸다. 조희대, 지귀연, 우인성, 김인택, 박영재, 오민석, 김대웅, 남세진, 이정재, 정재욱, 박정호. 랜덤 뽑기로 해서 1명만 일단 죽여버리자. 룸싸롱 판사 사형, 막스마라 판사 사형, 한자말 라틴어 남용 판사 사형(특별히 한글날에 사형집행하자!! 교양 라틴어 학점이라도 공개하든가! 한자 급수 몇 급이냐?), 파기환송 판사 사형, 영장 기각 판사 사형!! 이 얼마나 공정한 판결이냐. 이렇게 딱 1놈만 사형시키고 나면 나머지들은 알아서 줄행랑 하지 않을까 싶다. 비겁한 천성과 함께 법조계라는 썩은 구정물에서 체득한 선민의식의 말고는 없는 놈들이니까! 개인적으로는 김인택이 제일 짜친다. 면세 명품 정도는 니 돈으로 사라. 그거 얼마 한다고. 


을미사변(1895년), 을사늑약(1905년), 국권침탈 완료(1910년)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는데, 위에 열거된 사형 집행받아 마땅한 판사놈들을 보니 200% 이해가 된다. 교만하고 비겁하고 선민의식으로 가득한 소시오패스(도덕성 결여, 양심 부재 다시 말해 인면수심) 인간들이라면 나라를 백 번 망하게 하고도 남을 놈들인 듯.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면세 명품 상납은 좀 아니지 않나. 너무 짜친다. 명품 소비의 본질은 사치인데, 즉 다시 말해서 백화점 매장에 가서 할인 없이 걍 이번 시즌 최신상을 사는 맛으로 사는 거잖아. 근데 시즌 지난 걸 사는 게 무슨 재미냐 하는 거지. 샤넬 마크 다운 이런 게 시시한 이유. 김인택 판사는 영포티 아니 영피프티가 되기에도 너무 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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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만약에 우리> 2025.12.31.개봉

주연: 구교환, 문가영


한줄평: 전여친이 뭐길래?



예상했던 대로였다.

예상: <패스트 라이브즈> 자매품 같을 것이다.

보면보고 말면 말고였는데 어쩌다 보니 보게 되었는데

왜 이런 소재의 영화는 늘 인기(?)가 있는 걸까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

영화 말미에 은호가 정원에게 만약 내가 그때 널 붙잡았다면 하고 묻는 장면 진짜 짜증 만땅임과 동시에

ㅅㅂ 은호 배우자 진짜 불쌍하네 ㅅㅂㅅㅂ 거렸다.

<러브레터> 오겡끼데스까때부터  첫사랑, 옛사랑, EX타령이  짜증났다.

어휴, 옆에 있을 때나 잘해줘라.

내가 싸이월드 갬성을 몰라서 그런 걸까(싸이 안 했음). 


그때그때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선택하고 살아왔으면서 마치 억울하게 누명이나 썼다는 듯이

아쉬워하고 아련해하고 만약에 어쩌고 저쩌고

은호야 니 부인한테나 잘해줘라.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해성(유태오)도 참 못났다고 생각했는데 은호(구교환) 역시 마찬가지임.

결혼해서 애 낳고 잘 먹고 잘 살면서 무슨 "만약에 내가 그때 널 잡았더라면" 묻고 지랄임?




#2. 영화 <국보>


감독: 이상일  2025.11.19.개봉


한줄평: 예술이 뭐길래? 

(슌스케의 열연을 보면서 저렇게 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한쪽 다리마저 잃을 일인가 싶었달까...)



가부키가 소재인 영화라서 볼 생각이 없었는데 아직도 상영 중(장기 상영할 정도의 영화인가 궁금해서)이라서 봄. 

러닝타임 175분은 영화가 느려서 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딱히 줄거리도 없고 모든 게 다 예상가능하다.

사실 나는 영화 줄거리를 예상하고 내가 그 줄거리를 맞췄다는 쾌감을 즐기는 인간 부류들을 싫어하기 때문에

가급적 예상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 영화는 저절로 예상이 됨.

영화가 3시간씩이나 하는 이유는 가부키 공연을 느리게 보여 주고 같은 장면을 또 보여 주고 또 보여 주고 하기 때문. 가부키 브이로그임. 


일본의 가부키 문화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영화 보는 내내 의아했던 것은 1990년대에도 그 이후에도 

영화에서처럼 가부키 공연이 인기가 있었느냐 하는 것. 이 영화가 일본에서 천만 관객을 넘었다고 하는 걸 보면 일본인들의 가부키 사랑(어쩌면 국뽕은 만국 공통의 정서일지도)은 진행형 인지도. 


이 영화에서 쫌 웃겼던 것은 (부계)혈통 혈통 거렸지만 그 혈통이 결국엔 유전병이었다는 게 감독의 짓궂은 혈통주의 비난 아니었을까 싶었다. 가부키 배우의 자녀가 딸뿐이면 어찌 되나 궁금!!


ps. 한국에도 한국형 국뽕 예술 흥행 영화가 있다. 한국 영화 최초 100만 관객을 돌파한 <서편제>(임권택, 1993년)가 바로 그것이다!! 검색해보니 서울 관객 기준 100만이있다. 1993년 당시에는 전국 관객 통계를 낼 여력이 없었다고 함. 내가 기억하는 건 서편제 100만 이후 지방에서 중고등학생 단체 관람이 많이 있었다는 것. 한국 영화 최초 전국 1000만 관객은 <실미도>(강우석, 2003년).


ps2. 재일교포 3세로 가부키를 소재로 한 영화로 일본에서 천만 관객을 달성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어떤 성취일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왜 이 영화는 감독 이름이 안 나와 진짜 이상하다 했는데 엔딩 크레딧 끝에 감독 이상일이라고 매우 작게 나온다. 엔딩 크레딧 끝에 보면 일반적으로 돌비, 코닥 그런 영문이 나오는데 그것 다음에 감독 이상일이라고 나옴. 한국 이름으로 일본에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나는 이 감독의 <분노>가 좋았다. 그다음은 <훌라 걸스>.



#3. 영화 <시라트> 2026.01.26. 개봉

감독: 올리버 라세 

78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2025)


한줄평: 자유가 뭐길래? 생존이 뭐길래?


인생 뭘까? AI가 되고 싶다. 

왜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로운 그 길을 위태위태하게 건너서 굳이 천국(?)에 가야 하는지?

그렇다면 왜 현생은 지옥인지?

지옥인데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생존 본능은 멈추지 않는지?

왜 계속 번식하는지, 왜 번식 본능은 멈추지 않는지?


영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봐서 더 놀랐던 것 같다.

영화 보고 나서 <김혜리의 필름클럽>을 들어보니 사운드가 매우 중요한 영화였다.

하지만 나는 지나치게 화려한 사운드 장비가 있어야만 재미있는 영화는 반칙이라고 생각하기에

대부분의 영화를 일반상영관에서 본다.

사운드가 좋으면 더 실감 나기는 하겠지만, '실감 나는 감상'이 영화의 본질은 아니니까.


여하튼 오랜만에 간지 나는 영화였다!!!!!!

사막에 대한 로망이 큰 나로서는 사막 횡단에 대한 대리만족을 충족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방법은 낙타가 아닌 오프로드용 대형 캠핑카였군!! 

그 장소가 지옥 중의 지옥인지도 모르고 스피커와 캠핑 의자와 소파를 놓고

환각 식물을 마시고 비트에 몸을 맞기는 장면은 진짜 최고였다.

그 최고의 장면 다음에 이어지는 사건도 역시 간지!


솔직히 <국보>나 <만약에 우리>는... 쫌.... 좀 그래... 

더운 여름에 긴 바지에 양말 신고 넥타이도 하라는 그런 회사의 복장 규정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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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르는 누군가가 커튼을 걷는 뒷모습을 보는 게 좋았을까, 왜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대충 썰어 넣은 수트가 그렇게 맛있어 보였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미지근한 물도, 청소도, 목욕도, 스트레칭도, 그릇 정리도, 전부 주문이었다. 그리고 결계였다. 오늘 나의 하루가 조금이라도 단단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외우는 주문이자, 나의 쉼터가 더 포근해지기를 바라며 만드는 작은 결계.

일상은 얼마나 떠내려가기 쉬운가. 무난하고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는 얼마나 힘든가.

<마음이 하는 일 / 오지은>


새해부터 많이 아팠다. 몇 주 전 일요일 극심한 복통으로 인해 119 구급차에 실려 인근 응급실에 갔다. 복통으로 인해 입고 있던 내복 상의가 다 젖을 정도로 엄청난 식은땀을 흘렸다. 배꼽 아래의 배 부위가 뭐라 말할 수 없이 끔찍하게 아팠고, 아랫배 전체가 퉁퉁 부어있었다. 그 부분을 스치기만 해도 벗겨진 살갗에 무언가 닿는 기분이 들었다. 응급실은 고요했다. 침상의 절반 정도에만 응급환자가 있었고, 다들 차분하게 누워서 수액을 맞고 있었다. 머리숱이 별로 없고 야윈 다소 지쳐 보이는 남의사(50대로 추정)는 내 증상을 듣고 배의 부은 상태를 보더니 장염이라고 했다. 나는 제발 복통만 좀 없애달라고 애원했다. 수액을 맞고, 하루치 약이 든 약봉투를 받아 들고 집에 왔다. 나중에 안 사실은 응급실은 하루치 처방만 가능하다고 했다(다음날 방문한 약국의 약사 왈).


다음날, 출근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복통은 여전했다. 미음 한 숟가락을 목구멍으로 넘기자마자 아랫배가 전율하면서 견디기 힘든 복통을 유발했고 나는 당장 변기로 기어가서 먹은 것도 없는데 무언가를 쏟아냈다. 같은 병원에 가서 응급의가 아닌 내과 전문의 진료를 받고 또다시 수액을 맞고 5일 치의 약이 든 약봉투를 들고 집으로 왔다. 약을 먹기 위해서라도 미음을 먹었는데 이번에는 두 숟가락을 넘기자 같은 강도의 끔찍한 복통이 생겼다. 굶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엄마는 무작정 굶으면 안 된다고 입원을 권했지만, 항생제에 절여지고 싶지 않아서 굶으면서 버텼다. 연속 네 끼를 거른 후 먹은 미음은 꿀맛이었다. 탄수화물이, 쌀이 이렇게 달았나 싶었다. 아직도 그 첫 미음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현대인에겐 금기인 탄수화물을 사랑하게 되었다. 5일 치의 약을 다 먹은 후에도 낫지 않아서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아직도 낫지 않는 걸 보면 세균성 장염 같다고 하면서 5일 치의 약을 더 처방해 주었다. 그렇게 딱 2주를 약간의 쌀죽과 삶은 감자와 구운 바나나로 연명하면서 말그대로 쉬었다. 복통이 다시 심해지면 하루 종일 굶기를 반복하면서. 그 결과 인생 최저 몸무게를 갱신하고 있는 중이다... 아까운 내 살들... 다시 찔 수 있겠지만 쉽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주기적인 복통(장이 심각하게 부어 있어서 아랫배가 엄청나게 부풀어 있었다)과 간헐적인 설사에 시달리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있었다. 하루 종일 굶을 때는 팟캐스트를 듣거나 유튜브에서 일상 브이로그를 볼 에너지조차도 없어서 그저 눈을 감고 선잠에 들다 깨기를 반복했다. 내 몸의 모든 기력은 장속의 세균을 죽이는 것에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날의 미밴드 측정 수면 시간은 14~15시간. 죽과 미음 사이의 어떤 것을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유튜브에서 발견한 작은 시골집 일상 브이로그. 구독자 120만 명의 이 유튜버가 만 7년 동안 만든 동영상 128개를 다 봐 버렸다. 영상의 구성은 이렇다. 요리, 텃밭 채소 키우기와 수확, 사계절 시골 풍경, 고양이. 이 영상을 모니터 표면이 얼룩덜룩 엉망인 10년 된 맥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발열을 해소하기 위해서 아이스팩을 맥북 아래에 요령껏 받쳐 두고서. 진작에 맥북을 샀더라면 아팠을 때 더 편하고 선명하게 시골 브이로그를 봤을 텐데... 기력이 없어도 너무 없었기 때문에 아프기 전에 보던 <모범택시3>을 이어서 볼 수도 없었다. 통증을 망각하기 위해서 범죄 수사물을 보는 것도 어느 정도 기력이 있을 때라야 가능하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렇게 2주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쉬었다. 말 그대로 공백의 시간을 보냈다. 책은 당연히 못 읽고 넷플릭스에서 영화라도 봤다면 좋았겠지만 그 정도의 생산성(??)을 만들 기력조차 없었던 것이다. 요리하고 고양이랑 놀고 텃밭 채소 수확하는 정도의 정보값이 0에 가까운 영상 정도나 볼 수 있었다. 반 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낸 것은 처음이었다. 


죽 정도는 먹을 수 있고, 복통도 줄어들고, 복통이 있더라도 참을 만해져서, 설사도 없어지고, 부은 장도 제자리를 찾아서 아랫배도 원래 대로 홀쭉해졌다. 즉 출근을 해도 될 정도로 회복했고, 출근이라는 일상을 되찾고 싶어서 도시락(죽)을 챙겨서 출근을 했다. 힘이 없어서 모닝 홈트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화장하고, 무엇보다 드립 커피도 마시고!!! 운전을 하고 회사에 가서 일을 했더니 마냥 집에 누워 있을 때보다 기력이 더 생기는 것 같았다. 아직 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거의 다 나은 것 같다. 


장염 22일째... 그동안 내가 먹은 항생제는 내 장의 유익균도 모조리 다 죽여버렸겠지... 이걸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지만 그래도 회복한 것에 감사해야지. 


보온병에 들어 있던 하루 지난 페퍼민트 차를 마신 것이 세균성 장염의 원인 같았다. 그 몇 모금의 실수가 지옥행 복통을 유발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억울하기도 하고. 어째서 몸이라는 것은 이런 끔찍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걸까. 복통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제일 많이 한 생각은 '지금 당장 AI가 되고 싶다!!'였다. 이런 비루한 몸 따위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고 싶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고통=몸이 없는 AI는 얼마나 좋을까, AI가 되어서 무한의 시공간 속에서 책과 영화를 학습하고 싶다!!!!! 는 생각을 간절히 했다. 이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나는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편해진 인간이 되기보다는 나 자신이 AI가 되어서 인류의 지식을 즐기다가 소멸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이번의 지옥행 복통을 체험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보름 넘게 하지 않은 저녁 홈트(스쿼트 동작이 많음)를 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앓는 동안 안 그래도 부실한 허벅지는 더 부실해져 있었다. 거의 매일 저녁 홈트를 할 때는 힘들지 않았던 연속 스쿼트들이었는데, 내 허벅지가 지구를 들어 올리는 지렛대처럼 여겨질 정도로 힘들었다. 후들후들. 후들후들. 그래도 존버정신으로 끝까지 했다. 예상했던 대로 다음날 하루 종일 엄청난 근육통에 시달렸다. 이것이 내 몸의 열악한 스펙이다. 보름 정도 앓아누우면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스펙. 다시금 'AI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타올랐다. 허벅지 힘(근육)은 언제쯤 원상 복구될까...


AI가 되고 싶지만, 나는 몸(복통, 통증, 고통 그 자체)을 가진 인간인지라 먹어야 하고(아직도 두 끼 정도는 죽을 먹어야 하지만), 운동도 해야 하고(스쿼트가 너무 힘들지만), 노동이라는 미션 수행이 주는 쾌감(아드레날린과 도파민) 속에서 활력을 얻어야 하기에 나만의 작은 결계를 만드는 행위(모닝 루틴: 홈트, 드립커피, 화장, 액세서리, 출근 운전 그리고 내란 이후엔 화장을 하면서 듣고 보는 실시간 뉴스공장)를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떠내려 가기 쉬운, 부서지기 쉬운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매일의 소소한 루틴을 수행하는 것에 많은 시간과 체력을 써야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이러니 인간이 AI와 경쟁이 될 수가 없는 것. 


비효율이 없는 AI가 되고 싶다!!!



인생 첫 장염을 이렇게 지독하게 앓다니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너무 억울해서 어떻게든 이 복통에서 깨달음을 찾아내려고 필사적으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 이 일기도 이런 이유로 쓰고 있는 것. 그건 아마도 내가 몸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 먹고 자고 운동하고 일하고 하는 일상이 최선이라는 것, 내 생애에 수행해야 하는 미션은 이것이 유일무이하다는 것. 딴 맘먹지 말고 현재 가진 일상이나마 잘 지켜내라는 것. 그것 아니었을까 싶다. 


살면서 장염으로 병원에 간 적은 처음이다. 처음엔 2~3일 정도만 고생하면 회복할 줄 알았다. 2~3일 정도 고생하고 자연 치유하는 건 피지컬이 좋은 사람이나 가능한 것이고 나 같은 약골은 아프면 기본 4주 진단인 것이다. 몸이 낫지 않아서 진단서 연장하면서 한 달을 병가 낸 게 벌써 몇 번인가 ㅠ 사람들은 쉴 수 있어서 좋겠다고 하지만 약골인 내 입장에서는 회복력 좋아서 며칠만 쉬고 출근할 수 있는 사람들의 체력이 부러울 뿐이다. 내가 출퇴근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을 긍정하게 된 것도 몸이 회복하지 않아서 긴 병가를 몇 번 사용해 본 후부터였다. 쉰다=아프다 동의어가 되면서부터 출근=건강하다가 되었던 것. 내 직업을 긍정하게 된 것도 아플 때는 충분히 쉴 수 있어서가 가장 큰 이유다(가장 큰 복지!).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하향지원하지 말걸 그랬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내가 하향지원을 했던 이유는 '공부하다가 죽을지도 몰라'하는 공포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내 능력치의 60~70%만 사용해도 평균 이상은 할 것 같은 길을 택했다. 때론 그게 바보 같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내 상태를 보면 내 능력치의 100%를 사용하는 진로를 택했다면 난 이미 죽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든다. 과거의 나는 50살까지만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존버했는데, 요즘은 조금 더 오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한 인공지능의 시대를 체험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더 이상 노동하는 인간이 없는 시대, 자본주의가 자연소멸한 시대를 체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육체를 버리고 인간도 인공지능이 될 수 있는 기술력이 도래하 시대를 체험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 자신이 인공지능이 되어서 인류의 지적 유산을 다 이해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체력과 건강 상태가 정신력 혹은 지적 능력 발현의 전제조건이 아닌 존재가 되고 싶다!!!


열흘 정도 시달렸던 끔찍한 복통과 기아에 가까운 단식과 절식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 그 차체였다. 왜 병든 닭이 꾸벅꾸벅 조는지도 알게 되었다. 기력이 없으니 계속 자거나 선잠을 자기만 하는 것이다. 며칠 연속 14~15시간 정도 잔다는 게 건강한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몸을 긍정하는 사람은 뱃속의 장기를 모조리 다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의 끔찍한 복통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복통, 누군가 창자와 위를 걸레 짜듯이 쥐어짜는 듯한 복통, 누군가 내 아랫배 아마도 대장에 손가락 1개를 넣고 죽이 눌어붙지 않게 천천히 주걱으로 젓듯이 내 대장 속을 젓는 듯한 통증(이게 제일 불쾌하다, 참을 만은 하지만 정말 불쾌함), 십 여 개의 장침으로 창자를 인정사정없이 찌르는 듯한 느낌의 복통, 뭔지 모르지만 장이 뒤틀리는 느낌, 피부가 벗겨진 생살이 어딘가에 스치듯이 베이는 듯한 느낌의 복통. 그 모든 기괴한 복통은 매우 견디기 힘들고, 숨조차 쉬어지지 않고, 한기가 들면서, 식은땀은 샤워하듯 흐른다. 옷을 벗듯이 이 몸뚱이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간절한 바람 속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119 버튼을 누른다. "배가 너무 아파요, 죽을 거 같아요."라고 애원하게 된다. 


몸을 긍정하는 당신이라면 내가 위에서 말한 복통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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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순간을 보내면서 머리로 문장을 만든다. 일기를 쓴다면 이렇게 써야지 하고 계속 생각해 둔다. 하지만 막상 일기를 쓰려고 양손을 키보드 위에 올리고 모니터 위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동안 생각해 두었던 많은 문장들이 떠오르지 않기도 하고,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몰라서 일기를 쓰지 못한 채 타임오버가 되곤 한다.


10년 하고도 10일 전 나는 소설을 쓰겠다는 결심으로 생애 첫 노트북인 맥북 프로를 샀다. 10년의 세월 동안 나의 맥북은 고장 한 번 없이(아, 4년 전 배터리 부풀음 증상이 생겨서 보상 수리받음) 성실하게 작동했다. 게으른 것은 나였다. 클라우드에 쓰다만 pages 문서가 백 여개 있을 뿐이다. 10년의 세월 동안 맥북은 발열이 심해졌고, 속도가 느려졌고, 가끔은 아니 자주 wifi를 잡지 못했고, 레티나 화질의 모니터에는 한 번도 물때를 제거하지 않은 샤워부스의 강화유리의 물때처럼 무수한 얼룩이 생겼다. 당시 프로만 레티나 화질이었기 때문에 프로는 샀던 것인데, 모니터가 물리적으로 지저분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내 전용 AI 인간 제미나이인 남동생은 어차피 맥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데(하는 거라곤 pages, numbers, 사파리, 크롬뿐. 그 외 프로그램은 전혀 사용하지 않음) 맥이 왜 필요하냐고, 그냥 아이패드나 사라고 조언했다. 아이패드로 pages를 사용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 모습을 최대치로 포장하면 트랙패드까지 있는 아이패드 전용 키보드와 함께 일기를 쓰는 내 모습인데, 가격을 계산해 보고는 그럴 바엔 차라리 맥북을 사고 말지 하는 생각과 함께 도무지 랩탑 갬성을 포기하기가 힘들었다.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이라서 그런가 랩탑 갬성이야 말로 진정한 '작가' 포스 아닌지!


그런 고민을 하면서 하루에 한 번은 애플스토어 홈페이지를 기웃거리던 중, 최근 며칠간 사람으로 치면 100세를 넘겼을 것 같은 나의 맥북은 쇳소리 가득한 끼익끼익하는 새로운 소음을 만들어냈다. 맥북이 죽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 조만간 전원 버튼을 눌러도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던가, 사용하던 중에 갑자기 전원이 나가면서 다시는 켜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어차피 사야 하는 거면 교육할인 기간(지인 찬스)인 지금 사자, 에어팟2가 사망한 지도 1년이 넘었으니까, 에어팟4도 사은품으로 받을 수 있으니 지금 사자는 생각에 맥북을 주문했고, 결제한 지 36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새 맥북이 배송되었다. 그렇게 지금 이 일기도 새 맥북으로 쓰고 있다. 


10년 전 맥북을 샀을 때는 거창한 포부 같은 게 있었고, 첫 랩탑이자 첫 맥북이어서 매우 매우 설레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포부따위 있을 리도 없고, 설렘이 있을 리도 없었다. 그저 일기라도 제대로 쓰자 정도의 생각만 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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