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영화관은 경로 할인이 아니라 경로 추가요금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아래는 그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준 영화관람기다. 

지금 여기는 영화관인가 경로당인가 싶을 정도로 상영관을 가득 메운 사람의 8할은 노인이다. 마침내(영화<헤어질 결심>패러디), 시네마테크는 경로당이 되어버렸다. 상영관을 가득 메운 노인들을 보자마자, 그냥 영화 보지 말까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스쳤다. 영화 시작 전에 나는 세 번 놀랐는데, 172분짜리 다큐 형식의 에드바르트 뭉크의 전기 영화에 관객이 많다는 것에 우선 놀랐고, 그 대부분이 노인이라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리고 172분짜리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노인들의 체력(허리 건강)에 마지막으로 놀랐다. 역시 무직 앞에서는 장사 없는 건가. 

예상했지만 내 왼쪽, 오른쪽 두 노인은 수시로 휴대폰을 열어 봤다. 참았다. 영화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왼쪽 옆 옆 노인은 코 골면서 계속 잤다. 참았다. 하지만 참았던 마음이 폭발해버려서, 좋은 내 자리를 포기하고 앞 쪽 빈자리로 옮겼다.  옮긴 자리의 내 옆에는 노인 커플이 있었다. 하... 할머니는 계속 손가방의 지퍼를 연다. 뽀시락 뽀시락 뽀시락. 비닐봉지 소리. 할머니는 남친으로 추정되는 할아버지에게 물 챙겨 주고 간식 챙겨주고, 할배는 쩝쩝 거리고. 아 시발시발시발. 상영관이 카페라도 되는 듯이 대화를 하더니 마침내(영화<헤어질 결심>패러디), 둘은 나갔다. 

그렇게 끝났나 했는데 5분 후쯤 할머니 컴백. 앉자마자 손가방 지퍼를 연다. 휴대폰 꺼내고 당당히 전화를 건다. 통화연결음이 내 귀에까지 들렸다. 안 받는다. 다시 전화를 건다. 받는다. 남친 할배와 간단히 통화한다. 몇 분후 할배 돌아옴. 이후 반복. 쩝쩝대고, 물 마시고, 간식 봉지 꺼내고 뽀시락 다시 넣고 뽀시락. 영화 지겹다 블라블라. 영화를 보러 온 노인 커플이나 노인 부부의 공통점. 물부터 간식까지 전부 할매가 챙겨주고, 할배는 얻어 쳐 먹기만 함. 또한 지겹네 어쩌네 나자가고 하는 것도 전부 할배들임. 할매들은 어쩔 수 없이 영화 중간에 같이 나감.

더 이상 옮길 자리도 없다. 남은 자리는 앞에서 두 번째, 첫 번째 자리뿐. 내가 남느냐, 영화가 남느냐, 선택은 이것 둘뿐. 자리를 옮기는 선택지는 이제 없다 ㅜㅜㅜㅜㅜ

오슬로에 갔을 때 하루 시간을 내어, 뭉크 미술관에 갔었다. 오슬로 국립 뮤지엄에서는 한차례 도난 사건 후 금고(ㅋㅋㅋ) 처리된 뭉크의 절규도 봤다(뭉크는 절규를 여러 가지 버전으로 작품화했다. 판화 포함. 왜냐하면 대량 자기 복제로 그림을 싸게 많이 팔아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 국립 박물관에 전시된 절규가 가장 우수한(?) 절규로 인정받는 작품임) 내 첫 맥북 이름도 뭉크. 그 정도로 나는 절망 오브 절망의 화가 뭉크를 좋아했었다. 뭉크의 <마돈나>와 <질투>는 실물로 보고 반해버렸다. 뭐라 이루 말할 수 없이 우울했지만 그 속에는 뭔가 병적 의지, 존버의 의지가 보여서 좋았다. 실제로 에드바르트 뭉크는 존버했다. 80세에 죽었고, 작품 활동을 계속 함. 그래서 이 영화를 보기로 한 건데, 이 영화의 감독 피터 왓킨슨(영국)도 나처럼 뭉크 미술관에서 뭉크의 수없이 많은 작품을 보고 매료당했고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시발.... 참자, 참자, 경로자(=약자) 존중, 나도 곧(??) 노인 된다, 참자, 노인이 얼마나 힘든지 나는 모르니까, 여하튼 힘들 거라고 생각하고 참자 참자, 귀가 안 들려서 뽀스락 거리는 소리를 못 듣는 거겠지, 노인이니까 휴대폰 보고 싶은 것 못 참는 거겠지, 영화관에서 본인이 코를 골면서 자는 것에 대한 인식조차도 없겠지, 시발... 시발... 영화를 보러 온 건지, 단돈 4천 원(경로 할인가)으로 두 서너 시간 때울 곳을 찾아온 것인지 모를 노인들 때문에 영화 보는 것보다 영화 감상을 방해하는 주변 노인들을 인내하는 것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게 되었다는 것에 빡이 쳤다! 
이것은 노르웨이의 우울을 체험하는 영화다. 
4D 노노 이 정도면 6D다!!!!!!!!!!!!!!!! 
이것은 절규 그 차체다!!


시네마테크는 고전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니 어쩌면 시네마테크에 노인이 많은 것은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옛날 영화를 보면서 추억에 잠기고 싶은 노인들은 <군체>보다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는 고전 영화가 더 재미있을지도 모를 일. 같은 이유로 요즘 10대 20대들은 <군체>보다는 넷플릭스의 <기리고>나 <참교육> 혹은 <김부장>이 더 재미있을 것이고(경계선 지능 정도로도 몰입해서 볼 수 있을 정도로 자극적이고 단순한). 그래서일까 요즘 영화관에는 20대가 거의 없다. 내가 20대였을 때와는 정반대의 풍경이다. 얼마 전에 신민아 주연의 <눈동자>(흠... 팟빵 크라임 한 편을 듣는 것이 더 낫다. 신민아는 왜 이런 영화에 주연을 했는지... 여하튼 내 예상과 달리 흥행 중)를 보러 갔을 때도 30대 연인, 부부와 자녀로 보이는 관객 정도가 전부였다. 토요일 오후였는데도 상영관에는 관객이 거의 없었다.  내가 20대였을 때는 영화관의 주요 관객은 20대(가장 큰 이유는 통신사의 청소년 대학생 할인 프로모션 때문이겠지만, 예를 들면 TTL 영화 할인!)였고, 60대 이상의 노인은 거의 없었다. 시네마테크의 얼마 없는 관객도 주로 20대였다. 

영화는 확실히 늙어버렸다! 영화의 (고속)노화를 내 눈으로 목도한 것은 최근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디스클로저 데이>다. 영화가 노인 문화가 되어버렸다는 걸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준 영화였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창시자(1974년작 <죠스>)라는 수식어가 붙는 1946년생 유.대.인. 영화감독의 아마도 마지막 작품일 듯한 이 영화가 영화의 노화(노쇠)를 몸소 보여주었다. 김혜리 영화 기자는 <디스클로저 데이>가 (추격) 영화의 정석이라고 약간의 동정을 담은 호평을 했지만, 그것이 영화의 정석이라면 영화도 이제 끝물이라는 것!! <디스클로저 데이>에서 자동차에서 기차로 갈아타는 씬은 정석이라기보단 얀 드봉의 <스피드>(1994년, 주연 키아누 리브스, 산드라 블럭!)만 생각났음(총 맞은 버스 운전사를 구급차로 갈아타게 하는 장면과 똑같던데!). 1990년대의 미덕은 아무리 잘난 영화라도 2, 3편에서 멈출 줄 안다는 것이다. 박수 칠 때 떠나야 한다는 걸 안다는 것이다. 반면 더 이상의 아이디어가 없는 2000년대 이후의 (특히 미국) 영화들은 자기 복제를 멈추지 못한다. 디즈니+픽사만 봐도 1990년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토이스토리 5>가 웬 말인가!! 어이 상실. <모아나> 실사라니..(<모아나 2>도 별로 였는데, <모아나 1>은 완벽!!). 개충격. 애니 실사를 만드는 이유는 도대체 뭔데? 제발 그만해, 그만!!!! 10년 만의 속편인 <주토피아 2>도 그저 그랬고, 일루미네이션은 언제까지 <슈퍼배드>를 우려먹을 것인가. 이번 여름에 또 미니언즈 개봉함. <슈퍼배드>의 오랜 팬으로서 이게 이렇게까지 우려먹을 일인가 싶어서 씁쓸하다. 도대체 20년 만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를 만드는 이유가 도대체 뭔데? 영화가 이렇게 늙었다, 우리가 이렇게 고리타분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얼마 전에 시네마테크 기획전에서 대만 뉴웨이브를 했는데, <타이페이 스토리>(에드워드 양, 1985년), <공포분자>(에드워드 양, 1986년)을 봤는데 충격적으로 새로웠다. 충격적이었던 건 그런 결말인 줄 몰랐기 때문인 이유가 크지만. 왜 뉴웨이브라고 라벨링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작년에 고다르의 <주말>(1967년 작)을 봤을 때도 '아 이래서 누벨바그라고 했구나.' 했는데, 요즘 영화들을 보면(특히 미국 영화) '늙었네, 늙었어.' 하는 생각 말고는 딱히 들지 않는다. 

상영관에는 노인들만 가득하고, 영화들은 자기 복제만 계속하고 있고, 다 늙은 감독이 자신이 젊었을 때 영화 복제해서 영화 찍고(<디스클로저 데이>), 시니어 배우들이 젊은 시절 자기 복제로 영화 찍고(<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새로운 것은 CG, 3D, 입체 음향 같은 신기술뿐. 신기술을 체험하려고 영화를 보려는 건 아니잖아?!!! 현재의 거장 영화감독들은 집단 황동만병 걸렸는지, 드라마 <작은 아씨들> 1화의 대사 "사람은 자기랑 비슷한 처지의 사람한테만 공감을 느끼는 거니까."가 진리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마티 슈프림>에 찬사를 보내고 있고(영화감독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황동만 한 명 정도는 숨기고 있다는 듯이). 뭔가 처참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마티 슈프림> 마지막 장면은 생각할수록 기분 나쁜데, 뭐가 감동적이라는 거야! 마티 마우저라는 주인공이 너무 쓰레기(이런 인물이 요즘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의 정석일지도)라서 처참한 것도 있었다.

지난 4월에는 <크라임 101>(관객 수 2만 명 중에 1인이 나 ㅠ ㅠ )을 봤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주연 크리스 햄스워스, 마크 러팔로, 조연으로 할리 베리. 출연진이 이러니 믿고 봤는데, 와 놔 진짜 재미없었다. 어쩌면 미국 영화만 홀로 고속 노화해버린 건지도. B급 영국 영화 <콜드 미트>(관객 수 786명 중 1인이 나 ㅋㅋㅋㅋ)보다 재미없었음. 


p.s. 뭉크는 80세까지 살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기 때문에 뭉크 미술관은 모든 뭉크의 작품을 전시할 수 없어서 창고에 다수의 작품을 보관하면서 주기적으로 테마를 만들어 작품을 전시한다. 그래서 모든 뭉크의 작품을 보려면 오슬로에 살면서 주기적으로 뭉크 미술관을 방문할 수밖에. 지하철(U) 내려서 뭉크 미술관까지 가는 지하도에 뭉크 작품이 장식되어 있다. 지하철 내려서 뭉크 미술관까지 걸어가는 그 길의 설렘을 잊고 있었다가 영화 보면서 다시 느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뭉크는 요절하지 않았고, 잠시 정신 병원에 자진 입원하긴 했지만, 원하는 작품활동 하면서 장수했다. 나름 잘 산 듯. 물론 최근 작고한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영화를 누린 건 아니지만.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부와 명예, 장수까지 다 누린 호크니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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