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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였다 ㅣ 내가 죽였다
정해연 지음 / 반타 / 2026년 6월
평점 :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전개 과정에서 대략적인 결말이나 범인의 윤곽이 일찌감치 짐작되는 순간이 있다. 보통 이럴 때 책을 덮어버리게 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결말의 방향이 뻔히 보이는데도 끝까지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작품이 있다. 소설 『내가 죽였다』는 후자에 속하는 책이었다. 잘 짜인 수사 드라마 한 편을 단숨에 몰아본 듯한 몰입감을 준다고 할까.
1. 자백에서 시작되는 미스터리, '아는 맛'이 주는 흡인력
이야기의 출발점은 이렇다. 7년 전 발생해 이미 단순 사고사로 종결되었던 사건에 대해, 한 건물주 노인이 "사실은 내가 죽였다"라며 불쑥 자백을 던진다. 가만히만 있어도 법적 처벌 없이 평온하게 여생을 누릴 수 있었을 노인이(물론, 긴 시간이 남은 건 아니지만) 스스로 살인을 고백한 것이다.
진짜 미스터리는 그 자백 직후부터 고개를 든다. 사건의 진상을 다시 파헤치려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협박과 의문의 죽음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대체 누가, 왜 그토록 오래된 사건을 필사적으로 감추려 하는 걸까. 노인이 실수로 목숨을 앗아갔다는 그 청년은 과연 누구이며, 허점투성이였던 살인이 어떻게 감쪽같이 사고사로 덮일 수 있었을까. 이 소설은 독자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드는 기막힌 반전으로 승부수를 띄우기보다는, 범위를 좁혀가며 서사의 밀도를 채우는 은근한 '아는 맛'으로 읽는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2. 티키타카 콤비플레이와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결말
자칫 전형적인 장르물의 문법처럼 느껴질 수 있는 빈틈을 메우는 것은 바로 두 주인공의 케미스트리다. 외모보다 올곧은 정의감이 먼저 빛나는 형사 신여주와, 겉으로는 돈만 밝히는 속물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날카로운 기지를 발휘하는 변호사 김무일의 조합이 무척 매력적이다. (그래서 드라마같은 것이, 실제로 만들면 매우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가 탄생할 것 같기 때문이다. ^^;)
상극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주고받는 유치하면서도 차지게 오가는 티키타카는 읽는 내내 피식거리며 웃게 만드는 강력한 활력소가 된다. 위기 속에서 김무일의 기지가 언제 어디서 발휘될지 기대하게 되고, 사건을 헤쳐나가며 서로 의지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결말에 이르면 책은 다음 장을 기대하도록 만드는데, 나는 이미 다음 권이 나온 다음에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왠지 큰 그림같기도 하고 그랬다. 노련한 콤비로 거듭난 두 사람이 마주할 다음 무대에서는 과연 법과 제도의 한계를 넘어 진짜 정의가 온전히 구현될 수 있을지, 다음 권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