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충 사육 준수 사항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48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괴물 같은 상상력과 서스펜스 속에서도 끝내 현실의 청년과 사회 구조를 날카롭게 겨누는 소설, 김혜영 작가의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을 읽었다. 갓 구운 소금빵 맛이 나는 기괴한 식용 곤충 ‘빵충’이라는 기발한 소재 뒤편에는,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휘청이는 한 청년의 지독한 방황과 뒤늦은 성장의 서사가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1. "나는 자격이 없다"라는 편리한 도망: 자의식 과잉과 회피의 궤적


주인공 정한은 인생을 걸고 트럼펫을 불었지만, 정작 치열하게 자신의 자리를 쟁취해내지 못하는 인물이다. 재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유명해질 정도는 아니다"라며 일찌감치 스스로에게 한계선을 그어버린다. 밴드 내에서 포지션이 겹쳤을 때, 호기롭게 자리를 넘겨주고 뒤로 물러선 것은 사실 양보나 대범함이 아니라 비겁한 회피였다. 대마를 키우며 밴드의 뒷바라지를 자처하고, 연인 유진을 떠나보낼 때조차 "네 곁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말로 스스로를 규정하며 관계에서 발을 뺀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먼저 깎아내리고 도망치는, 자의식 과잉 청년의 전형적인 방어기제다.

그의 귀농 또한 주체적인 결단이 아니었다. 유진이 보내준 링크 하나를 붙잡고 흘러들어간 시골에서, 그는 딸기 농사에 실패하고 빚더미에 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 순간 성실했다. 다만 '청년이 처음부터 얼마나 노련하겠는가'라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실패를 통해 장년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이 사회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정한의 유일한 바람이었던 "그저 평범하고 제대로 살고 싶다"는 소망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도달하기 힘든 이상이 되어버린다.


2. 달콤한 빵충 열풍과 가혹한 구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의 덫


그런 정한에게 찾아온 '빵충' 사육은 인생 역전의 동아줄처럼 보였다. 하지만 소설은 개인의 노력을 비웃듯 잔인한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블루오션이라며 모두가 뛰어들자 곧이어 풍작과 공급 과잉이 이어지고, 가격 폭락으로 농가는 무너진다. 품종을 선점한 이들은 로열티를 챙겨가며 농가의 수익을 갉아먹지만, 누구도 이 파국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이 구조적 착취와 위기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도한 변칙과 규칙 위반은 결국 통제 불능의 끔찍한 재앙을 낳는다.

노력해서 성실히 살면 제대로 살 수 있어야 마땅한 사회에서, 청년들은 왜 자꾸만 나락으로 떠밀리는가.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이 블랙코미디로 시작해 서늘한 크리처 스릴러로 질주하는 이유는, 빵충이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이 곧 이윤만을 좇다 청년과 약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우리 사회의 기형적인 구조와 정확히 닮아있기 때문이다.


3. 돌고 돌아 다시 쥔 트럼펫: '책임'을 선택하며 비로소 어른이 되다


파국 속에서 정한이 최종적으로 내린 선택은 놀랍게도 그가 버려두었던 '트럼펫'이자, 피하고만 싶었던 '책임'이었다. 끊임없이 변주하고 소리를 내야만 통제 불능의 빵충들을 이끌 수 있었던 순간, 그가 꺼내 든 트럼펫은 한때 실패라 규정했던 자신의 과거이자 끝내 버릴 수 없었던 고유한 정체성이었다.

우리는 늘 선택의 순간에서 책임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회피 대신 그 끔찍한 결과와 책임을 온몸으로 떠안기로 결심했을 때, 정한은 비로소 정체성을 찾고 진짜 '어른'의 문턱을 넘는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치밀하게 설계된 이야기 장치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정점을 향해 폭주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누구 하나 온전히 완벽하거나 깨끗하지 않지만, 각자의 사정과 결핍이 얽히며 마지막 순간에는 그 누구도 단순한 소모품으로 버려지지 않는다. 나락으로 떨어진 이들에게서 끝내 안쓰러움과 작은 구원의 빛을 길어 올리는 인물 구성의 힘이야말로, 이 기괴하고도 흥미진진한 소설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이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