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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2 - 7月-9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지금은 1Q84년, 몸의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하는 리틀 피플의 몽롱한 테러로 1권이 끝났었다.
아오마메의 실루엣이던 제1권과 대비되는 덴고의 실루엣으로 장식된 멋진 표지...
무더운 여름, 평소와 달리 노부인을 초췌한 모습으로 만들어 버리고, 프로페셔널 다마루가 입을 다물어 버린 사건... 세이프하우스를 지키던 독일 셰퍼드가 피투성이로 잔인하게 죽고, 연이은 쓰바사의 실종으로 제2권이 시작된다. 1권의 재미가 밋밋했었는데, 2권은 박진감 넘치게 전개 되었다.
아오마메는 고무나무에 마지막으로 물을 주고, 그러고는 플레이어에 냐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얹었다. 가지고 있던 레코드는 모두 처분했지만 그 한 장만은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보헤미아의 넓은 들판을 건너가는 바람을 상상했다. 그런 곳을 덴고와 둘이서 한 없이 걸어갈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제2권 135쪽)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상상하며 야릇함에 빠져드는 대칭적 서른 살 남녀...
쓰바사를 성폭행 했던 선구의 리더를 저쪽 세계로 옮기기 위한 아오마메의 실천을 앞 두고, 노부인과 다마루의 비장한 각오도 돋보인다.
매력적인 게이, 프로페셔널 다마루의 출생에 관한 고백도 흥미롭다. 체호프의 고독이 묻어나는 사할린에서 태어나 한 살도 되기 전에 부산 출신의 조선인이었던 부모와 헤어져 일본인 양부모와 고아원에 내던져 졌던 아픈 과거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공기 번데기나 리틀 피플을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솔직히 덴고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문제는 그에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실재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가장 큰 의미를 가진다. (제2권 146쪽)
독특한 외모의 우시카와가 덴고에게 말한다.
"고전적으로 말하자면, 당신들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제2권 187쪽)
어느 날 예고도 학원으로 찾아온 불청객은 ‘신일본학술예술진흥회 상임이사’라는 명함을 내밀었고, 조건 없는 연간 300만 엔의 파격적인 후원금 제시했다. 은둔 중인 소녀 후카에리와 '공기 번데기'의 진실을 알고 있는 듯한 뉘앙스로 다가와 개운하지 않은 그 제안에 덴고는 절도 있게 거부하는 용기를 보인다. 이어지는 마음을 읽힌듯한 의문의 사건...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집사람은 이미 상실되어 버렸고, 어떠한 형태로든 당신에게는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겁니다. 그게 다예요."(제2권 150쪽)
연상의 걸프렌드 야스다 교코의 남편으로부터 덴고에게 걸려온 개운하지 않은 이 전화는 아유미가 살해사건으로 당황하는 아오마메의 괴로움과 함께 한다. 무선 호출기와 공중전화의 교신이 주류를 이루던 그 시대에 은밀하게 진행되는 그들의 이야기...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압박이 밀려오고 있었다. 20년간 서로 만난적 없는 두 남녀는 각각 긴 팔을 가졌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불필요한 콤플렉스, 수 없이 거론되는 아오마메의 작은 가슴은 소설의 마지막 장까지 지속된다.
제2권은 절반이 넘어가도록 이렇다할 에로틱함이 존재하지 않지만, 후반부에 강렬하고 속 상하게 하는 몇몇 장면들이 튀어 나오기 시작한다. 롤리타적 섹스 판타지는 그 당위성을 위해 포장에 포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소설 속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소설이 잘 요약된 내용과 함께 존재한다.
덴고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머무는 바닷가 요양소로 찾아가는 열차 안에서 읽은 단편 소설 '고양이 마을'(제2권 193쪽~198쪽)이 그렇고, 선구의 리더를 다른 세계로 보낸 뒤에 은둔하는 아오마메가 읽은 '공기 번데기'(제2권 471쪽~495쪽)가 그렇다. 두 소설은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소녀가 남기고 온 도터는 아마도 리틀 피플을 위한 통로가 되어 그들을 리더인 소녀의 아버지에게로 인도했고, 그 남자를 리시버(받아들이는 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불필요한 존재가 된 ’여명‘을 피비린내 나는 자멸로 몰아 넣고, 그 뒤에 남겨진 ’선구’를 명민하고도 첨예한, 그리고 배타적인 종교단체로 변모시켜갔다. 그것이 리틀피플에게는 가장 쾌적하고 편리한 환경이었던 것이리라. 후카에리의 도터는 마더 없이 무사히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까. 마더 없이 도터가 오래도록 살아남는 건 어렵다고 리틀 피플은 말했다. 그리고 마더도 그렇다. 마음의 그림자를 잃은 채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일까. (제2권 497쪽)
덴고와 아오마메의 12단계 대칭적 관계는 일종의 난해한 데칼코마니다. 완벽한 24장의 균형...
두 권의 대비되는 표지에서부터, 영원히 대비되는 두 남녀의 러브라인...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구성을 염두에 두었다고 밝혔듯이... 리드미컬한 박자와 엇박자의 질주가 마치 10월과 11월,12월을 예고하는 듯 긴 여운을 남기며 끝이 아닌 끝을 맺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죽음은 죽음이 아니고, 슬픔은 슬픔이 아닌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