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設, 첫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서재 한 구석에 구입 해두고 읽지 않은 책들을 뒤지다 발견한 책이다.
서문을 보면 이책은 원고를 취합하여 찾아 온 출판사 사장(박광성)의 강권에 의해 세상에 나오게 된 책이라 한다.
출판사 사장의 판단은 아주 좋았다고 생각한다. 아들에게 보내는 단문들을 보면서 시작하는 김훈의 냉철한 시선이 아주 좋았다.


이 세상에는 돈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국면이 반드시 있을 것다. 그런데, 얘야, 돈이 없다면 돈보다 큰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부(否)라!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놓은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그것은 인간 삶의 적이다. 돈 없이도 혼자서 고상하게 잘난 척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아라. 추악하고 안쓰럽고 남세스럽다.
(14쪽)

학교측과 학생측이 따로 노는 오로지 사진만 찍어대는 혼란스런 당시의 대학졸업식 풍경을 그리는 것도 매력적이고...
이영자의 다이어트 건으로 진실공방을 펼치는 천박한 대중문화도 날카롭게 비판하는 등 글맛이 참으로 좋고, 하나하나가 짧아서 읽기도 편하다.

국가인권위원회 출범 과정,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의 시각으로 비판하고, 동강댐 건설계획 검토 과정, 전직 대통령들과의 만찬 등 글 쓰던 당시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 대통령을 가혹하게 비판하는 다수의 글들도 볼 수 있지만 결코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강력한 의견을 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소신을 읽을 수 있다. 출판사 편집부는 단문들의 코멘트들에 작가의 의도와 달리 좋은 결과로 끝나는 일들에 대한 언급 또한 빠트리지 않았다.

화장하는 여자, 여자의 하이힐, 신혼여행지에서 만난 새색시의 콤팩트에 빠진 모습들을 바라보면 느낀 점을 다각도로 정리한 것도 독자로선 즐겁다.

내가 나이 먹어서 심수봉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했더니, 내 주변의 젊고 사나운 첨단 여성들은 나를 늙고 진부하고 성적 이기심에 가득찬 남성주의자의 추몰이라고 비난했다. 요즘 배운 여자들은 대개 이렇다. 심수봉의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그 여자의 결핍의 애절함에 의해 남자인 나 자신의 결핍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결핍이 슬픔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심수봉 노래의 음악적 수준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260쪽)

글 하나하나가 예술이고 설득력 있는 문장들로 가득한데 발췌하기마저도 벅차다.

왕복 4시간 거리의 멀리 장례식장 다녀오던 길에 따분하지 않은 독서를 할 수 있었고 기분이 좋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작년에 출판사(생각의 나무)가 부도난 뒤로 이 멋진 책이 절판되었다는 것...
새로운 출판사를 만나 이 책이 다시 많은 이들에게 읽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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