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30년 - 우리가 사랑한 300권의 책 이야기
한기호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전에 네이버에 이 책의 바탕이 된 원고도 연재 됐었으니 책이 나오면 소장용으로 하되 특별히 깊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읽다보니 한 쪽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읽고 또 읽게 되었다. 교보문고 30주년을 기념하여 1981년부터 2010년까지 해마다 베스트셀러 10권을 골라 모두 300권의 책을 순차적으로 그 뒷얘기와 함께 기록한 단순한 독후감이 아닌 해마다의 사회적 현상과 주요 사건이 출판계에 미친 영향, 출판물이 사회에 미친 영향들을 읽노라면 참을 수 없는 집중 본능에 스스로가 놀랐다.

1985년 베스트셀러였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 대한 부분을 예로 들면 이 책의 형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 살의 꼬마 악동 '제제'를 통해 사랑의 문제, 인간 비극의 원초적 조건, 인간과 사물과의 교감, 그리고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우정을 슬프고 아름답게 그린 성장 소설이다. 1978년 광민사에서 처음 출간되었지만, 광민사 대표 이태복(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전민련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출판사가 문을 닫았다. 이태복의 동생 이건복은 1982년 어렵게 출판사 등록을 구해서 동녘을 시작했고 광민사의 자산을 인수했다. 그리고 이 소설을 재번역해 출간했다. 이 소설은 브라질의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 당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렸는데 당시 우리 현실과 매우 유사했다. 처음에는 교사들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다가 1985년 무렵 대학생과 중·고생의 필독서가 되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50여 개 이상의 출판사에서 중복 출판했다. (65쪽)

책 표지 이미지와 작가, 번역자, 출판사, 출간연도를 기본으로 소개 하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이는 식이다. 다른 책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글이라 전문을 옮겨 보았다. 이렇게 책의 주제와 핵심 내용을 소개 하면서 당시 우리 사회상과 출판인 및 출판사의 뒷얘기까지 흥미롭게 소개하는 것이다. 그해 12월1일부터 단행 본 역사상 최초로 텔레비전에 광고가 실리기 시작해서 출판계의 충격을 준 고려원의 소설 손자병법이 1986년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이야기는 사료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광고 카피까지 그대로 기록해 주고 있다. 1991년 김영사에 의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에릭 시걸의 '닥터스'는 책의 라디오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고, 도서출판 사계절은 2년 뒤에 독창적인 홍보 방법으로 광고비 보다 저렴한 가격에 훨씬 많은 효과를 보았는데, 본문에 나타난 각각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980년대 초만 해도 5단 5cm 크기의 광고가 많았으나 85년부터는 5단 통광고(37cm)로 크기가 바뀌었다. 고려원의 경우 10cm 미만의 크기로 '탈불황선언, 소설 손자병법에 그 길이 있다'는 헤드카피와 '소설 손자병법은 합리적인 기업경영, 원만한 인간관계, 그리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세상사의 철리를 터득해 성공의 지름길을 찾고자 하는 당신이 읽으셔야 할 현대인의 성전입니다.'라는 카피로 광고를 계속 했다. (71쪽)

'여자와의 잠자리에서도 300개의 근육, 250개의 혈관, 208개의 뼈를 더듬고 암기하는 하버드 의대생들, 포르말린 냄새나는 딱딱한 학문에 갖히기 보다는 사랑의 격류에 휘말리기를 원하는 의대생들의 학문의 길, 사랑의 길, 인간의 길' (153쪽)

사계절은 1993년 5월 전국의 대도시 중·고등학교 국어교사 7,000여 명에게 거래 서점을 통해 '반갑다, 논리야' 시리즈를 한 질씩 증정했다. 사실 2만 부가 넘는 이 책의 제작비는 당시 일간신문 5단 광고비도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169쪽)

중간중간 저자의 노하우가 농축된 글이 많은데, 특히 111쪽부터 121쪽에 수록된 '밀리언셀러를 만드는 아홉 가지 법칙' 은 출판 관계자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할 주옥같은 글이다. 독자들은 전통적인 읽는 사람(reader)에서 사용자(user)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다시 수집가(collector)로 변신했다는 촌철살인으로 '제4법칙 제목장사가 절반'이란 글을 이야기 할 때는 본능적으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제8법칙 밀리언셀러를 터트리면 망한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 중에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왜 사람의 삼대불행 중에서 첫번 째인 '조기성공'을 생각하게 하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 아닐 수 없다. 그밖에 256쪽부터 260쪽까지 수록된 '21세기 한국 밀리언셀러의 여섯 가지 유형'도 멋진 이야기이다.

1990년 최고의 베스트셀러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그 책에 대한 반박으로 박노해 시인의 글을 보면 이미 오래 전에 신자유주의의 도래와 대우그룹의 붕괴를 예견하는 듯한 생각까지 미치게 된다.

박노해는 먼저 '간명하고 매끈한 문체, 가슴을 파고드는 교훈과 명언들, 구체적인 현실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설득력, 성취한 자의 자신감이 주는 묵직한 권위, 해박한 상식의 구사와 적절한 독서구절의 인용 등이 수많은 독자대중을 감동으로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라고 칭찬부터 한다. 그러고는 곧바로 '구구절절이 인간보편적인 진리와 교훈과 좋은 말씀들만이 주옥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 옳은 듯한 한 구절 한 구절마다에 숨어 있는 저 섬뜩하게 시퍼런 칼날, 힘과 위안을 주는 듯한 가운데 찔러대는 저 날카로운 마취의 주사바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으니 함께 가자'고 잡는 당신의 손바닥에 철썩 붙은 저 잔인한 자본가의 흡혈판을 나는 몸서리치게 바라봅니다. 이처럼 당신의 이 책에는 철저한 '자본의 철학, 착취의 논리'가 숨겨져 있습니다.'라고 맹렬한 비판을 쏟아 놓는다. (137쪽)

베스트셀러의 꿈을 안고 출판사 수는 급증 하였지만 200평 넘는 서점이 100개도 되지 않는 당시의 취약한 유통구조 현실 속에서 밀리언셀러를 펴냈던 출판사들이 시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산한 이야기도 명료하다.

1993년 말부터 우후죽순 들어서던 도서대여점이 전국에 6,000곳을 넘었다. 책의 시장성을 키워 놓으면 대여점이 흡수해버리는 바람에 밀리언셀러가 실종되기 시작했다.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책의 판매량이 예전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대형광고를 한 책들의 피해가 커지면서 밀리언셀러를 펴냈던 출판사들이 도산하기 시작했다. (191쪽)

베스트셀러는 '평상시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읽는 책'이라는 명언도 1996년 베스트셀러 '뇌내혁명'을 소개하면서 나오는데, IMF 후폭풍이 몰아친 1998년에는 위안을 주는 따뜻한 도서들의 약진을 소개하며, 1990년대 들어 처음으로 밀리언셀러가 실종된 아픈 시절을 추억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이책을 읽노라면 파노라마처럼 세월이 흘러가는 매력이 있다. 모두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2001년11월의 MBC <느낌표>에 대한 평도 나름대로 깊은 성찰의 힘을 보여 준다.

그중 한 코너인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는 매달 1~2종의 선정 도서를 발표해 모두 25종의 책을 각각 수십만 부 이상 팔리게 한 역사상 최대의 출판 이벤트였다. (중략) 독서 시장을 왜곡해 출판사의 기획력만으로는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기 힘들어졌으며 (중략) 30% 이상의 할인을 통해 과당할인경쟁을 해가며 매출확대를 꾀하던 온라인서점의 안정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서 출판유통시장을 왜곡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오프라인 서점의 쇠락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265쪽)

냉정한 비판 뒤에 자칫 일회성으로 끝날 수 있는 이벤트가 '기적의 도서관' 사업으로 확장되어 사회적 각성과 함께 구조적 변화를 추구 했다는 긍정적 평가까지 책과 관련된 사회 현상의 장단점을 적절하게 버무린 멋진 분석서가 아닐 수 없다. 2001년 베스트셀러에 오른 바다출판사의 'The Blue Day Book'에 대해서도 '책을 보기만 하고 사지 않을 독자의 구매 욕구를 이끌어내기 위해 저가로 제작하고, 티셔츠를 만들고, 책 속의 사진을 확대해 서점 순회 동물사진전을 열면서 대형동물 사진을 증정하는 등의 이벤트를 벌였다." (294쪽)는 것으로 대한민국 출판사에 중요한 포인트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힘이 느껴지는 책이다.

출판인의 아집에 관한 기록도 있다. '창가의 (토)(토)'의 경우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 소개되었으나 이렇다할 성공을 못하다가 일본어 공부하는 이들 사이에 인기가 있음을 확인한 일인출판사 프로메테우스가 리메이크하여 성공한 좋은 예가 되겠다. 이념 탓인지 출판사는 온라인서점 알라딘에만 책을 공급하는 아집을 피우는 것이다. 그러나 아집도 때론 통하는 법... 독자서평을 보고 동아일보 정은령 기자가 출판사를 수소문해 이 책을 크게 소개 했고, 다른 신문에서 먼저 소개한 책은 다루지 않는다는 관례를 깨고 조선일보도 대서 특필하였다고 기록(300쪽)한다.

2005년 화제작은 단연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를 위시한 해리포토가 아닐 수 없다. 한기호 소장은 이 현상에 대해서도 "해리포터의 상품성이 커진 반면 책의 다양성이 저하되어 책 시장이 황폐화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354쪽)고 적고 있다. 불황에는 불륜소설이 뜬다는 에필로그는 일본의 베스트셀러 '불륜이 경제를 살린다'를 인용한 멋진 마무리가 아닐 수 없는데, 이 책이 청소년 관람불가가 아닐까 하는 재미를 줄만큼 성인적 시각을 피하지 않는다. '20세기 말, 미국에서 이뤄진 한 조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1위는 <성경>이다. 다음으로 <스포크 박사의 육아전서>와 <바람과 함꼐 사라지다>가 그 뒤를 잇는다."(434쪽) 단지 한국의 베스트셀러 30년 300권을 논하는 것을 넘어 전세계적인 출판계의 베스트셀러와 사회 현상을 언급한 것이 마치 하나의 책 박물관을 찾은 느낌이다. 450쪽을 훌쩍 넘는 이 책의 지면 하나하나가 아깝지 않은 독서 시간을 장식했다.

아, 한국 사회사를 담은 300권 모두를 소장하고 싶은 이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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