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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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학생을 짝사랑하는 순진한 남학생이 있었대. 별명이 낙수장이었어. (중략) 사랑하는 여자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울고 있는데 가슴 안 아플 놈은 없거든. 낙수장은 용기를 내서 여학생을 위로해 주기로 마음 먹었어. 그때껏 제대로 말 한번 붙여보지 못한 낙수장은 일단 축 처진 네 어깨를 보니 내 가슴이 아프다······고 말해야지 생각하며 속으로 수없이 연습을 했어. 이 정도면 됐다 싶었을 때 드디어 여학생 앞으로 나아갔어. 울고 있던 여학생이 무슨 일예요? 쏴붙이며 낙수장을 빤히 쳐다봤지. 낙수장이 얼른 대답한다고 한 말이 이랬어. 축쳐진 네 가슴을 보니 내 어깨가 아프다······-97쪽

우리는 지금 깊고 어두운 강을 건너는 중입니다. 엄청난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강물이 목 위로 차올라 가라앉아 버리고 싶을 때마다 생각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짊어진 무게만큼 그만한 무게의 세계를 우리가 발로 딛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불행히도 지상의 인간은 가볍게 이 세상의 중력으로부터 해방되어 비상하듯 살 수는 없습니다. 인생은 매순간 우리에게 無의 허공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무게와 부피와 질감을 지닌 실존하는 것들의 관계망을 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 있는 것들이 끝없이 변하는 한 우리의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살았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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