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4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정동섭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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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저자가 자신을 죽이러 왔을 때
그를 "가엾은 파스쿠알."이라 부르며 미소 지었던
명문가 귀족 토레메히아 백작,
돈 헤수스 곤살레스 델 라 리바를 추모하며.-23쪽

내가 요즈음 슬픔과 고뇌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한다면 안믿으실지도 모르겠군요. 분명히 말하는데 내 회개는 그 어느 성자의 것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나에 대해 알고 있을 사실과 지금 나에 대한 평판이 너무나도 안좋은 것들이라서 내 말을 안 믿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선생님께 이야기 하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내 말을 이해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 명예를 걸지 않아도ㅡ내 명예를 걸어봐야 별 볼 일 없으니까요.ㅡ 선생님께 맹세한 것을믿어 주실 거라는 생각을 머릿 속에서 떨칠 수가 없어서 말예요. 심장이 피 대신 쓰디쓴 액체를 만들어 내는지 목구멍까지 쓴맛이 치밀어 오르더군요. 그것은 내 가슴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입천장에 쓴 뒷맛을 남기고, 그 향으로 혀를 적시며, 묘 구덩이의 공기처럼 괴롭고 사악한 공기로 내 오장육부를 말려 죽이려는 듯합니다.-70쪽

조금 더 지나 길 중간쯤에 이르니 오솔길 오른편에 묘지가 보였습니다. 내가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바로 그 자리에, 여전히 거무스름한 벽돌담에 둘러싸여서 말입니다. 전혀 변한게 없는 높은 사이프러스 나뭇가지 사이에서 부엉이 한 마리가 울고 있었죠. 그 묘지에서 내 아버지는 울분을, 마리오는 천진함을, 내 마누라는 방종을, 그리고 싸가지는 오만함을 묻어 두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또 유산된 아기와 꼬마 파스쿠알, 내 두 아이들의 유해가 썩어 가는 곳이기도 했지요. 꼬마 파스쿠알이 살아 있던 열한 달 동안 그 애는 내게 태양과도 같았는데······.-157쪽

그는 영혼의 과제를 침착하고 차분하게 처리해 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정도였고, 사형장에 끌려가는 순간에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해 그렇게나 온순하게 교화된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악마가 그의 마지막 순간을 빼엇어 가 버린 것이 안타깝군요! 그러지 않았다면 그의 죽음은 분명 성스러운 것이 되었을 것이기 떄문입니다.-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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